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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초에 부대낀 ‘개혁 물살’ 더 거세진다

김재일 정치부 차장 ㅣ 승인 2006.05.09(Tue)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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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은 조각한 지 10일 만에 부분 개각을 단행함으로써 자신의 인사가 잘못됐음을 인정했다. 김대통령의 개혁 추진에 제동을 건 암초는 바로 개혁 인사 안에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청와대측은 처음에는 이같은 시각 자체를 부인했다. 인사 파동에 대한 청와대측 인식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바뀌었는가.

박희태 전 법무부장관은 경질되기 5일 전인 3월3일 저녁 고등검사장 회의를 마친 뒤 고위 검찰 간부들과 ‘송별?? 모임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는 폭탄주까지 오갔다. 그 날은 <동아일보>가 박장관 딸이 미국 국적으로 이화여대에 특례 입학했다는 사실을 보도한 다음 날이다. 바로 그 시간 청와대에서는 박관용 비서실장ㆍ김영수 민정수석ㆍ이경재 공보수석이 박장관 문제와 함께 그린벨트 불법 형질변경으로 문제가 된 김상철 서울시장의 거취를 논의하고 있었다. 그들은 의견을 모아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김시장은 위법 사실이 확실하므로 경질하고, 박장관은 편법이긴 하되 위법을 저지른 것은 아니므로 구제하자는 내용이었다.

청와대 참모 세 사람은 박장관의 옷을 벗길 경우 다른 각료들까지 줄줄이 해임해야 할지도 모를 파급 현상을 우려했다. 그들은 인사 파동을 언론과의 힘겨루기로 파악했다. 전병민 전 정책수석 경질에 이어 김시장, 그리고 박장관 해임으로까지 이어지면 계속 밀릴 수밖에 없으므로 그쯤에서 쐐기를 박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언론에 더이상 밀리면 권위상실과 통치권 누수로 기강이 무너지고, 개혁추진이 어렵다는 데 합의한 것이다.

4일 오전 김대통령은 김시장을 해임 조처한 후 출입기자들과 점심식사를 같이 하며 간담회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김대통령은 “정치자금을 한푼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또 권위주의의 상징인 ??안가??를 폐쇄해 공원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는 충격적이고 참신한 결단으로 여론의 반전을 꾀했다. 그러나 각료들에 대한 언론의 ??흠집 찾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5일 저녁 MBC 텔레비전이 박양실 보사부장관의 부동산 투기 현황을 보도한 것이다. 상승작용을 하는 여론의 추이에 청와대측은 당혹해 했다. 현실을 다소 안이하게 인식했던 청와대 비서실은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6일 청와대측은 문제가 된 각료를 포함한 고위직 인사에 대해 정밀 조사를 실시할 것을 결정했다. 이틀 뒤 김대통령은 법무부·보사부·건설부 장관, 그리고 공석인 서울시장에 대한 개각을 단행했다. 언론에 밀려서 개혁 추진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인사 자체에 문제가 있었음을 처음으로 시인한 셈이다.

‘정권의 정통성와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한 개혁??을 밀어붙이던 김영삼 정부는 출범 초장부터 뜻밖의 복병을 만나 휘청거렸다. 개혁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수구 세력이 각료들의 비위 사실을 언론사에 제보했다는 시각도 있다. 박관용 비서실장도 ??기득권층의 조직적 저항이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움직임이 사실이든 아니든 말썽이 된 각료들은 공직을 맡기에는 너무나 문제가 많았다. 인사 파동은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은 김대통령의 ??밀실?? 인사 방식 때문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철저한 보안과 전격적인 인선으로 신선한 충격 효과를 노린 김대통령이 멋을 부리다가 정작 내용을 그르쳐 버렸다는 지적인 것이다.

“차남의 인선 자료에 너무 집착한 듯??

한 소식통은 김대통령이 차남 현철씨가 인선한 자료에 너무 집착한 듯하다고 전한다. 선거와 관련한 논공행상 성격이 강했던 점과, 인선 대상자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점이 인사 파동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김대통령은 “내 인선은 내가 한다??며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는 체질이라고 한다. 이는 집권에 대한 그의 인식과도 일맥 상통한다. 김대통령은 집권당 대통령후보를 쟁취했고, 선거는 기득권 세력의 도움으로 이긴 것이 아니라 혼자 해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한 관측통은 ??득표율 42%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다 자충수를 둔 것 같다??고 말한다. 새 정부 조각에 대한 각종 여론조사 결과 ??각료 인선이 잘됐다??는 반응이 65∼75%였다. 그러나 몇몇 각료에게 명백한 험이 있음이 밝혀지면서 국민은 실망의 빛을 감추지 못했다.

언론사나 야당에는 문제가 불거진 사람 외에 다른 각료들에 대해서도 부적격성을 지적하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한 장관의 경우 고위 인사로부터 정부 예산 중에서 거액의 특별 지원금을 받았는데, 이 장권은 그 고위 인사가 세상을 떠난 후 지출 명세를 제출하지 않았다. 그 자금의 행방은 지금껏 묘연하다. 그는 정부 투자기관에 근무할 때도 돈 씀씀이가 석연치 않았다고 한다. 그는 아파트 두 채를 터서 하나로 합쳤고 주말농장을 소유하는 등 호화생활을 한다. 또 골프 매너가 나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 장관은 한때 방만했던 사생활이 문제가 되고 있다. 언론사에는 보석 모으는 취미를 가진 그에 대한 투서가 여기 저기서 들어 왔다. 그뿐만 아니라 아들에게 외제차를 사주는 등 호화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이해구 내무부장관은 ‘용팔이 사건?? 즉,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받는다.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사법처리됨으로써 당시 안기부 제1차장이었던 그의 결백이 증명될지 관심거리다. 그는 또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은폐 관련설에도 올랐다. 김 덕 안기부장의 경우 부인의 땅투기 혐의로 곤혹스러워한다. 한 청와대 고위 인사는 가족 중 한 사람의 월북설로 파문이 확산될까 봐 전전긍긍한다.

한 야당 인사는 “인사가 만사라더니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해도 어려울 정도로 말썽투성이의 사람들만 모아 놓은 것 같다??고 김대통령의 인선을 혹평했다. ??신한국??의 얼굴로 적합지 못한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한 헌법학자는 박희태 전 장관이 여론에 밀려 결국 사퇴했지만, 그를 법무부장관으로 기용한 것은 애초부터 적절치 않았다고 지적한다. 박 전장관은 야당의 표적이 됐던 집권당 대변인이었고 지역구 의원을 겸직했는데, 앞으로 있을 보궐선거에서 공정성이 보장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박 전장관의 경우를 확대 해석하면 ??위헌적인 인사였다??라고 말한다. 그가 입법부의원, 행정부 장관, 그리고 준사법 기능을 가진 법무부 수장으로서 3부를 통할하는 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애기다.

개혁 성패 좌우할 재산 공개

8일 단행된 부분 개각으로 인사 파동이 잠잠해질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적지 않은 사람이 고위 공직자 등용과 관련해 미국식 인사 청문회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 청문회 제도를 도입하기란 현실적으로 무리라고 말한다. 내각을 구성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현 단계에서는 사정기관을 통해 인선 대상자에 대한 검증 절차를 밟는 외에 달리 뾰죽한 수가 없다는 것이다.

김영삼 정부가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만난 첫번째 암초가 부적절한 인선이었다면, 두번째 암초는 여당 의원과 공직자의 재산 공개 문제일 것이다. 정계 기득권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재산가 의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강행할 경우 민정계 중진급 실세들이 수세에 몰릴 가능성이 있다. 재산 공개를 제대로 했느니 안했느니 시비가 이는 것은 물론 언론사와 사정기관에 투서와 제보가 잇따를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정치 생명에 치명상을 입을 수 있고, 이에 따라 당내 세력 판도가 크게 바뀔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조처는 민주계를 중심으로 한 개혁 추진 세력이 판세를 재편하기 위해 벌이는 권력투쟁의 하나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한 민주계 의원은 “입장이 난처한 것은 다음 문제다. 어차피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다. 의원 재산 공개와 함께 정치에 혁명적인 상황이 올 수도 있다??라고 말한다. 적지 않은 관측통들이 이 조처와 관련해 정계가 재편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개혁 조처로 인해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이는 민정계 일부가 민자당을 탈당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되면 정계가 기존의 여야 형태가 아니라 김영삼 정부의 개혁 프로그램을 지지하는 그룹과 반대하는 그룹으로 나뉠 수 있다. 정부의 개혁을 지지하는 재야?시민단체?야당 일부 세력이 여당에 동참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국회의원과 공직자의 재산 공개가 실현될 것인가, 아니면 불발로 그칠 것인가는 김영삼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김대통령이 취임한 뒤 지금까지 취한 조처들은 거의 대부분 분위기를 잡기 위한 ‘선언적 개혁??이었지 구체적인 실천 제시는 아니었다. 재산 공개는 실천적인 개혁의 시작일 수 있다. 재산 공개 단계를 거쳐야 금융실명제?강화된 토지공개념?안기부법 개폐?국가보안법 폐지?정치자금법 개정 등 본질적인 개혁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다.

한 여당 민주계 의원은 “김영삼 대통령이 ??6개월 내 개혁??에 승부수를 던진 것 같다??고 말하고 ??민주계 실세를 전면에 내세워 공세를 취하는데, 만약 잘못되면 우리 민주계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개혁을 하느냐 마느냐는 한 정파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 전체의 문제다. 처음에 장관 몇 사람을 잘못 썼다고 개혁 프로그램 전체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김대통령은 안팎의 장애물을 정면 돌파하려고 할 것이다. 그는 더욱 강공으로 개혁을 몰아붙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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