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골에 활짝 핀 地域지기 ‘촛불’
  • 허광준 기자 ()
  • 승인 2006.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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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시민, YMCA 중심으로 활발한 지역운동 동별 ‘등대’ 조직해 생활협동?市 議政 감시


지난해 7월 27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청사 안에 있는 부천시의회 회의실에서는 난데없는 박수 소리가 터졌다. 송철흠 시의회 의장이 담배자동판매기 설치를 금지하는 조례가 통과되었음을 발표하면서 의사봉을 힘차게 두드린 직후였다. 숨을 죽이며 회의과정을 지켜보던 ‘담배자판기 철거 및 설치금지 조례 제정을 위한 학부모 모임?? 회원들이 손뼉을 치며 환호한 것이다. 91년 11월부터 시작된 담배자판기 설치 금지 조례 제정 운동이 승리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부천시 전역에서 담배자판기를 추방하는 조례를 제정케 한 이 운동은 시민이 참여하여 지역 운동을 성공으로 이끈 사례로서 큰 관심을 끌었다. 이 단체 회원들은 학교 주변에 있는 담배자판기의 수를 조사하고 실제 청소년이 이를 이용하는 행태를 알아내기 위해 밤샘 조사까지 했다. 자판기 고객의 23.6%가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밝혀낸 회원들은 부천에서 담배자판기를 몰아내기 위한 활동에 들어갔다. 시의원들과 만나 조례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가두 캠페인과 서명운동을 벌였다. 여기 소속된 단체는 ‘바른 교육을 위한 어머니모임????청소년의 고민과 아픔을 디딤돌 어머니모임????참여와 자치를 위한 부천 시민연대회의 의정지기단????부천 기독교청년회(YWCA) 생활협동위원회 마을지기단??등이었다.

‘뜨내기??에서 당당한 ??주인??으로

사회운동의 중심축이 시민운동으로 옮겨지면서 이들의 지역내 활동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흔히 지역운동이라 부르는 이러한 활동은 특히 지방자치제를 통한 ‘지방화 시대??가 열리면서 제도적인 통로를 얻게 되었다. 지역내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주민이 스스로 제기하고 해결에 앞장서는 지역 운동을 기초?광역 지방의회와 연결되어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담배자판기 추방 운동에서 볼 수 있듯 다양한 형태로 전개하는 부천의 지역운동은 새롭게 변화한 상황에 적응하는 모범적 활동 사례로 꼽힌다.

부천시는 지난 73년 시로 승격할 당시 6만5천명이던 인구가 현재는 70만명을 넘어섰다. 중동 신도시 사업이 끝나 17만명이 새로 입주하면 1백만명 가까이로 불어난다. 그러나 몸피는 커져가면서도 부천만이 지니는 독특한 도시로서의 개성은 찾기가 어렵다. 주민의 반수 이상이 서울 등 다른 지역에 직장을 갖고 있고 주민의 이동율도 높다. 통계로는 해마다 부천 전체 인구의 30~40%가 전출입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89년에 부천시의 의뢰를 받아 부천시민의 특성을 연구한 이시재 교수(성심여대·사회학)의 조사에 따르면 부천이 시로 승격되기 전부터 계속해서 살아온 시민은 전체의 8%도 되지 않는다.

이처럼 서울의 베드타운 노릇을 하는 위성도시 성격은 시민운동의 측면에서 보면 긍정성과 부정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서울에서 밀려나 항상 ‘특별시민??을 꿈꾸며 대기 상태에 있는 부천 시민들은 그만큼 상대적 박탈 감에 빠져 있으며, 이는 젊고 고학력이라는 특성과 맞물려 사회 운동 활성화의 밑거름이 된다. 물론 지역에 대한 애착심이 부족해 기회가 생기면 언제라도 떠나고자 하는 마음은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부천 시문운동의 구심은 부천YMCA이다. 폭넓은 활동 영역과 든든한 대중 조직을 바탕으로 부천YMCA는 지역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대해 시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이에 대한 공동 해결을 모색하는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담배자판기 추방 운동을 벌였던 모임도 YMCA 관련 단체들이다. 부천YMCA의 황주석 총무는 “80년대 후반부터 나타난 국내외의 변화는 생활인이 사회 변화의 주체로 중심에 서도록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과거의 운동이 참모진과 대중이 긴밀하게 연결되지 못한 모습을 가졌다면 이제는 ??사회운동의 본령은 대중조직??이라는 원칙에 따라야 할 때라는 것이다.

현재 부천YMCA가 가장 주력하는 일은 ‘생활협동운동??이다. 주부들이 중심이 된 이 조직은 무공해 유기 농산물 직거래에서부터 생활 전반에까지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시민운동이다. 이 단체의 한 간부는 ??주부들의 뜻과 희망을 모아 작은 영역에서부터 활기차고 의미있는 삶을 실천하려는 활동??이라고 설명한다. 이 조직은 동별로 5~6명씩 묶어 하나의 ??등대??를 만들고 이 등대를 중심으로 해 지역 활동을 벌인다. 구성원 한명한명에는 ??촛불??이라는 칭호가 붙는다. 이러한 촛불은 현재 1천2백명 가량이다. 담배자판기 추방 운동이나 대통령선거 때 공명선거 활동도 모두 이 ??등대?? 조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부천YMCA의 시민운동은 어떤 단체도 차별을 두지 않고 필요에 따라 다양한 단체들과 연대한다. 공명선거 운동 때는 부천 지역의 재야 단체들과 연대해 활동했으며, 담배자판기 추방 운동 때는 자유총연맹 부천지부나 새마을협의회와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높아진 여성 사회참여의식도 성과

부천 지역운동의 특징은 여성이나 주부가 운동의 중심세력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지역운동에 대해 해당 지역사회의 발전이라는 성과 말고도 여성의 사회참여라는 또다른 성과를 기대할 수 있게 해 준다.

시민들은 지역활동 경험을 통해 부천의 위성 도시적 한계와 자신이 갖고 있는 ‘뜨내기 속성??을 스스로 극복해낸다. 서울 출신으로, 언젠가는 부천을 떠날 것이라고 생각해 활발히 활동하지 않던 한 주부 회원은 어느날 국민학교에 다니는 자녀의 생활기록부 출생지란에 부천시라고 적힌 것을 보고 마음을 달리 먹었다. ??부천은 남의 도시가 아니라 내 자식의 고향이다??라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다. 다른 주부는 대통령선거 때 공명선거 거리 캠페인을 나가는 일이 창피해 소극적이었다가 ??내가 지금 좀 창피해야 우리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었을 때 겪을 고통이 없어진다??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한다.

황총무는 이같은 사례들을 들면서 “기존의 사회 운동이 ??분노의 조직화??였다면 생활의 요구에 근거한 시민운동은 ??꿈과 희망의 조직화??이다??라고 말했다.

부친YMCA의 시민운동은 많은 부분 시의회를 겨냥하고 있다. 대표적인 활동이 ‘의정지기단??이다. 의정지기단은 시민이 의정의 주인으로서 대표를 선출하고 지원하며 정책대안을 제시한다는 뜻과 의정을 감시한다는 뜻을 함께 담고 있다. 91년 4월 발대한 부천 의정지기단은 부천YMCA의 생활협동운동 구성원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하고 있다. 비회기에는 ??의정지기학교??나 정기 학습 모임을 열어 자체 교육을 하고 의정지기 소식지도 낸다. 회기중에는 직접 의회에 나가 방청을 하는데, 의회 점검 기록표에는 불참한 의원과 지각한 의원의 이름, 회의분위기 따위를 적는 난도 있다.

부천시 시의원은 현재 44명이다. 이들은 의정지기단 활동을 처음에는 눈엣가시처럼 여기기도 했으나 지금은 많은 의원들이 이 단체의 취지를 이해하고 이를 의식하면서 의회 활동을 한다. 시의회 최순영 의원은 “뜻있는 의원들이 청원제도?세미나?공청회 등 지역주민과 호흡을 같이하는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의정발전연구회??등 소모임 활동을 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이시재 교수는 “시민의 폭넓은 연대가 있어야 지방자치제가 제 구실을 할 수 있다. 아울러 자치단체장을 주민 직선제로 뽑는 제도를 빨리 도입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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