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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내음 물씬 풍기는 선전 영화?

99년 베니스 영화제 그랑프리, 장이모우 감독의 <내 책상 서랍속의 동화>

노순동 기자 ㅣ soon@sisapress.com | 승인 1999.11.11(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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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예술가가 정치와 인간을 대립항으로 놓기 시작하면, 그 생각을 당해내기가 쉽지 않다. 만약 그가 만든 작품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면‘인간이 먼저’라는(보통은 저의가 의심스럽지만)대전제를 외면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올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내 책상 서랍속의 동화>(연출 장이모우)는, 천진함의 힘으로 인간 제일주의를 밀고 나간다.

 장이모우의 변모에는 의아한 구석이 있다. <붉은 수수밭> <홍등> <국두>등 그의 전작은 서양의 이국취미에 영합한다는 혐의를 받아왔다. 중국의 평론가 서린은 영화 <홍등>을 예로 들어‘동서양 사람에게 서로의 진부함을 이처럼 상호 감상토록한 예는 드물다’고 혹평했다(<인문학의 위기> 재인용). 즉 새로워 보이는 형식(서양에서는 이미 진부한)과 진부한 이야기(서양인의 눈에는 신기한)를 뒤범벅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내 책상 서랍… >에 대해서 서양인이 혹독한 평을 내놓아 눈길을 끈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은 이 작품을‘정부의 선전영화’라고 일축했다. 실제 장이모우는 영화 끝자락에‘미래의 동량이 가난에 쫓겨 교실을 떠나지 않도록 하자’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세련된 새마을운동 홍보 영화쯤 될 텐데, 기교가 보통이 아니다.

 배경은 시골의 외진 학교. 한 명뿐인 교사가 학교를 비워야 하는 상황에서‘한 달 때우기’ 대리 교사가 등장한다. 교사 웨이는 겨우 초등학교를 마친 열세살 소녀. 돈을 벌 요량으로 아이들을 비끄러매려 하지만, 그의 교실은 도통 경쟁력이 없다. 그러던 중 유난히 말썽을 부리던 한 아이가 돈을 벌러 도시로 떠나자 웨이는 학생을 되찾아 오겠다는 일념으로 그 뒤를 따른다. 두 아이는 걷고, 굶고, 헤맨 끝에 극적으로 만난다.

 하지만 이 작품은 병아리처럼 삐약대는 학생들과, 고작해야 큰 병아리일 뿐인 선생의 눈물 겨운‘교실 지키기’만은 아니다. 무대를 도시로 옮겨 놓아 사회의 변모상이 생생하게 잡힌 것이다. 도시는‘돈’과‘증’이 없으면 진입하기조차 불가능한 성(城) 이고, 역전은 그 벽에 가로막힌 유민으로 넘쳐난다. 그곳에서 웨이는 밤새 벽보를 쓰지만‘전호나 삐삐 번호도 없는 벽보를 누가 거들떠 보겠는냐’고 구박을 받는다. 해결사는 텔레비전. 대중 매체가 유난히 미담을 좋아한다는 점까지 낱낱이 드러낸다. 장이모우 감독은‘직시하되, 낙관하는’태도로 따뜻하고 세련된 설교를 들려준다.                                 
魯順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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