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는 나라의 기둥’ 대장 김용숙씨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1999.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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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들이 힘 모으면 세상이 달라진다”

‘거짓말쟁이 아줌마’ 몇 명이 온 나라를 들었다 놓았다 하고 있는 11월의 막바지에 이들과는 전혀 대조적인 보통 아줌마 김용숙씨(47세)를 만났다. 돈없고, ‘백’없고, 고급 옷 사러 다닐 시간은 없지만 아줌마의 힘으로 이 나라를 바꿀 수 있다며 이 땅의 아줌마들을 선동하고 있는 그는, 지난 11월18일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이라는 운동 단체를 설립함과 동시에 ‘아줌마 헌장’을 선포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아줌마 운동 단체라니, 세계에 유례가 없는 단체일 듯합니다. 어떻게 이런 단체를 만들 생각을 하셨습니까?
저도 어리둥절할 따름입니다. 지난 여름 제가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이라는 책을 펴낸 일이 있어요. 지구에는 인간 부류가 세 종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죠. 남자, 여자 그리고 아줌마. 이 중에서도 아줌마는 이른바 ‘20세기 마지막 천민’ 이라는데, 웃기지 마라, 그래도 세상은 아줌마가 먹여 살린다라고 막무가내로 밀고 나간 책이었어요. 그 뒤 한 언론사와 출간 기념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묻기에 ‘글쎄, 아줌마 반란 부대를 만들어 두목이나 한번 해 봐야겠다’고 농담 삼아 대답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일면식도 없는 아줌마들이 여기저기서 전화를 걸어 오는 거에요. ‘이거, 사태가 좀 이상하게 돌아간다’싶더라고요. 그냥 한번 만나 보기나 해야겠다 생각하고 9월1일 첫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무려 25명이 모였어요.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모인 인원이 그 정도였다니 대단합니다. 도대체 어떤 분들이셨나요?
재미있는 현상이 있어요. 제가 언론 인터뷰를 할 때 어떤 얘기를 했느냐에 따라 전화를 걸어오는 분들의 색깔이 달라지더라고요. 저도 한때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푼수 아줌마’였어요. 그런데 6년 전 우리집으로 날아온 8천5백만원짜리 세금 고지서가 제 인생을 바꿔 놓았습니다. 열심히 해명했는데도 공무원들은 ‘대한민국에 아줌마처럼 세금 안 내려는 사람이 깔렸다’며 제말을 무시했어요. 억울하고 분해서 나라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죠. 돈이 없어 변호사도 못 사고 저 혼자 3년 동안 세금 전쟁을 벌인 끝에 승소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가 공무원 잡는 깡패 아줌마로 변신한 과정을 신나게 얘기하면 그때부터 며칠 동안은 억울한 사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전화가 줄줄이 이어져요. 반면 제가 아줌마가 바뀌어야 나라가 바뀐다고 ‘아줌마론(論)’을 역설하면 이번에는 평범한 아줌마들의 전화가 빗발쳐요. ‘당신 얘기에 공감한다. 아줌마, 정말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아줌마들이지요.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은 후자 쪽 아줌마들이 주축이 된 단체입니다.

단체를 만들면서 선포하신 ‘아줌마 헌장’이 대단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공짜 문화를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처럼 문구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와 닿던데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혼자 생각하고 메모해 두었던 내용을 어수룩하게 헌장이랍시고 옮겨 놓았을 뿐인데 이렇게 화제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줌마 헌장’을 발표한 뒤 전화만 2백 통 가까이 받았습니다. 한 대학 총장께서는 밤 11시에 전화를 걸어와 ‘너무나 감동했다. 무슨 일이든 돕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우리가 활동할 홈페이지를 공짜로 만들어 주겠다는분, 무료로 공익 광고를 내 주겠다는분, 사무실을 빌려 주겠다는 분,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 홈페이지를 만들어 주겠다는 한별텔레콤의 제의는 받아들였습니다.

과거에도 주부 운동은 있었습니다. 주부 운동과 아줌마 운동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주부 운동은 여성의 지위를 높이려는 운동이었다고 봅니다. ‘우리는 여자니까 여자 편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고나 할까요. 그렇지만 저는 틈나는 대로 아줌마들을 자존심 상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우선 현실을 인정해야 해요. 아줌마 하면 흔히 뻔뻔하고, 무식하고, 자기 가족만 챙기는 이미지를 떠 올리지요? 실제로 아줌마들이 그런 편견을 부추기게끔 행동해요. 당장 저만 해도 전화를 걸어온 아줌마 가운데 30%만 모임에 참석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화를 걸 때는 당장 사생결단을 낼 듯하다가도 막상 모임에 나오라고 권하면 ‘아이가 돌아올 시간이 돼서···’라며 꽁무니를 빼는 것이 아줌마들의 현주소 입니다. 이런 현실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만들어야죠. 자존심을 팍팍 긁어 가슴 속에서부터 오기가 치솟아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모든 책임을 아줌마 집단에만 돌리게 되는 것 아닙니까? 아줌마가 소외될 수 밖에 없는 사회 구조를 무시한 ‘계몽 운동’은 공허한 외침으로 끝날 수도 있을 듯한데요.
아줌마가 이런 대접을 받게 된 것이 남편, 자녀, 나아가 사회 때문이라고 칩시다. 그렇다고 저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그들이 상황을 바꾸려고 노력하겠습니까? 결국 상황을 바꾸는 일은 우리 아줌마들 몫입니다. 현실을 무시한 이론이나 운동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저는 아줌마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아줌마들이 이런 대접을 받게 되었나. 이것을 바꾸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이가’하는 자기 반성과 각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 단기 사업으로 ‘잠깐! 나, 되돌아보기 운동’을 제안하고 있는데, 그 내용 또한 한결같이 현실에 기반을 둔 것입니다. 이를테면 △대중 교통을 이용할 때 내가 서 있는 바로 앞자리가 비었을 때만 앉기 △쇼핑 센터 버스에서 어린아이 내무릎에 앉히기 △마주치는 얼굴과 인사 나누기 같은 것들입니다.

‘옷 로비 파문’ 때문에 애꿎은 아줌마 집단이 또다시 집단으로 매도되는 분위기 입니다.
일부 권력층 부인들의 행태는 비판 받아 마땅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그 아줌마들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보통 아줌마들이 좋은 옷 입고, 호강하고, 권위를 누리는 그들을 부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는 한 권력층 비리는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비리는 ‘나만은 특별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잘못된 권위주의에서부터 싹틉니다. 자기 손발이 멀쩡한데도 기사가 문을 열어주기 전에는 차에서 내리지 않는 사람들. 그런데 소시민은 이것이 부러워 그 사람들처럼 도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악순환의 고리입니다. 제2의 옷 로비 파동이 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보통 아줌마들이 사치병·외제병에 걸린 아줌마를 무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이 설립 1주일 만에 신입 회원이 70명 가까이 늘었다죠? 대단한 상승세인데, 앞으로 무슨 일을 하실 계획입니까?
개인 삼무실화 작업을 먼저 시작하려고 합니다. 아줌마 한 사람 한 사람이 ‘걸어 다니는 사무실’이 되어 시민운동을 일상에서 실천하자는 것이죠. 신입 회원은 사회 부조리를 발견하는 즉시 민원 서류를 쓰는 훈련을 받게 됩니다. 벌써부터 성과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비 모임 때 우리가 민원 서류 쓰기 공동 주제로 잡은 것이 ‘관공서 주차장 민원인에게 개방하기’였습니다. 그 첫 번째 대상이 헌법재판소였는데, 최근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책임자의 구두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서면으로 확답을 받아내기까지 질의서를 계속 보낼 작정입니다. 야간에도 관공서 주차장을 개방하면 동네 주차난을 해소하고, 유명무실한 소방 도로 문제도 해결될 테니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밖에 자기가 살던 집이 도시개발 지역에 포함됐는데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회원, 구청이 도로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멀쩡한 은행나무를 베어내려는데 냉가슴만 앓고 있었다는 회원도 적극적으로 민원 서류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아줌마들 스스로 ‘내공’을 키워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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