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가법의 피해자 보호
  • 김당 기자 ()
  • 승인 1991.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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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강력범죄 가중처벌에 관한 특례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피해자 및 신고자의 인적사항를 보도하지 못한다는 규정을 놓고 ‘인권보호’란 주장과 ‘언론탄압’이란 비판이 맞서 있다.

찬성 / 송광수 법무부 검찰국 검찰 2과장

● 특가법에 제8조 ‘출판물 등으로부터의 피해자 보호’ 규정을 추가한 입법 취지는 무엇인가.

 특가법은 정부가 직접 제안한 것이 아니고 의원입법으로 제정된 것이다. 그러나 제안자인 민자당 윤재기 의원이 검찰국에 자문을 구했고 입법 과정에서 상의한 적도 있으므로 입법 취지는 크게 두가지로 말할 수 있다.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지만 공권력만으로 범죄를 퇴치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피해자나 목격자의 신고?고발이 절실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제보자들은 만에 하나라도 인적사항이 보도될 경우 보복을 당할 것이 두려워 제보를 꺼리게 된다. 이 보복을 방지하려는 것이 첫 번째 취지이다. 두 번째는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해 ‘두번 죽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예를 들어 한 가정주부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집단강간을 당했을 때 “ㄱ아파트 ㄷ동” 하는 식으로 보도한다 해도 그 아파트 사람들은 다 알게 된다. 그럴 경우 그 피해자는 두 번 죽는 셈이다.

● 특가법에서 규정한 대로 법을 적용한다면 현실적으로 ‘모든 사건기사 보도는 위법’이 될 판이다. 앞으로 사건기자들은 기사 대신 소설을 써야 할 형편인데 법 적용에 문제는 없는가.

 피해자나 신고자의 인적사항을 제외한 모든 범죄사실은 다 실을 수 있다. 범죄사실 자체를 보도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고 본다. 언론이 사건을 구체적으로 상세히 보도할 권리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상세한 보도로 인해 피해자?신고자 등이 처하게 될지도 모르는 위험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범죄사실을 제외한 인적사항은 가명 가직장 가주소 가연령 등으로 보도할 필요가 있다.

● 특가법 피해자 보호규정은 “피해자임을 미루어 알 수 있는 정도의 사실이나 사진을 보도하지 못한다”고 돼 있다. 만약 민자당 김영삼 대표최고위원니 범죄조직에 의해 테러를 당하거나 현대의 정주영 명예회장이 강도에게 물방울 다이어를 털린다고 할 경우 가직장을 쓸 수도 없으니 “김씨 성을 가진 여당의 한 최고위급 인사”라거나 “정씨 성을 가진 재계인사”라는 식으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보도를 낼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낳지 않겠나.

 김영삼씨나 정주영씨 같은, 사회적 위치로 보아 중요한 인사와 평범한 가정주부는 구별해서 취급해야 한다고 본다. 고인은 한마디로 사생활이 없는 사람이다. 다만 그 경우에도 범죄이 성격에 따라 법적용이 달라져야 한다. 예를 들어 정주영 회장이 강도를 당한 경우는 인적사항을 보도해도 본인의 명예와는 무관하지만 김영삼 최고위원이 범죄조직에 의해 테러를 당한 경우는 다시 보복을 당할 위험이 있으므로 상세한 보도는 곤란하다. 그러므로 피해자의 사회적 위치, 신고내용 등에 따라 사건마다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 피해자의 인적사항 보도가 피해자에게 주는 정신적 물질적 피해가 법을 재정해야 할 만큰 심각한가.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1월 떠들썩했던 샛별 룸살롱 살인사건이다. 수원 세류동에 방을 얻어 은신해 있던 주범 김태화가 방을 소개한 복덕방 주인의 신고로 붙잡혔을 때 세세한 내용이 다 신문에 보도되었다. 그 며칠 뒤에 조경수가 잡혔는데 조사과정에서 실토하기를, 신문보도를 보고 김태화를 신고한 복덕방 주인을 죽이려고 복덕방까지 갔다가 사람들과 함께 있어 죽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마침 그전에 잡혔기에 망정이지 만약 복덕방 주인이 죽었다면 누가 책임지겠는가.

● 피해자 보호규정은 처음 의도와 달리 “처벌조항이 삭제됨으로써 선언적 규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던데…

 그렇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선언적이나마 그 규정이 있음으로 해서 피해자가 보상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된다고 보는 게 검찰의 견해이다. 형법상 출판물 등으로 인한 명예회손죄를 적용하는 데 판단 자료가 되고, 또 예를 들어 보도로 인해 피해자각 보복을 당해 상해를 입을 경우, 피해자가 민사소송을 제기했을 때도 법적 근거가 될 것이다.

● “범죄와의 전쟁을 계기로 ‘흉악범은 가중처벌해야 한다’는 국민의 법감정에 편승, 흉악범죄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업고 언론자유를 제한하려는 것”이라는 비판의 소리가 높다.

 언론자유를 제한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다만 인적사항 보도를 자제해달라는 것이다. 소년법이나 가사심판법에는 더 엄격한 피해자 보호규정은 물론 처벌규정까지 있다. 그렇지만 언론자유와 관련, 위헌소송이 제기된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반대 / 한국연 기독교방송 프로듀서, 언론노련 사무처장
● 특가법에 피해자 보호규정을 새로 추가한 배경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그 입법 취지가 왜 문제가 되는가.

 입법 취지가 문제가 되는 까닭은 그 법을 개정한 배경이 과연 독자나 시청자의 요구에서 비롯된 것인지, 즉 피해자 인권보호를 위한 인도적 차원의 입법 취지인지 아니면 수사?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가려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독자?시청자의 요구로 제기된 것이라면 입법 취지를 문제삼을 까닭이 없다. 그러나 여론을 수렴한다거나 공청회를 연다거나 하는 과정없이 검찰 출신의 한 여당의원에 의해, 그것도 국회 심의과정에서 날치기식으로 ‘수정안’이라는 방법으로 통과된 조항이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 배경이 피해자를 보호하자는 인도적 차원이 아닌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나왔다는 것은 함께 들고나온 처벌조항에서 확인된다. 여론에 눌려 철회하긴 했지만, 피해자 보호를 빌미로 언론인을 형사처벌하겠다는 것은 ‘언론을 제한해도 된다’는 매우 위험한 관 위주의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 최근 언론이 흉악범죄를 너무 상세하게 보도하여 청소년들의 모방범죄를 부추긴다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얼마 전에는 국교생이 자살사건 보도를 본 국교생이 충동적으로 목을 매 자살한 일도 있었다. 이런 불행한 사건이 계속되지 않으려면 언론이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것을 스스로 자제해야 하는데 언론의 속성상 그러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는 비판적 견해에 대해 어찌 생각하나.

 남의 불행을 흥미나 눈요기거리로 다루는 선정적 보도 태도는 언론의 정도가 아니다. 그런 잘못된 보도를 국민이 외면함으로써 언론이 걷는 환경이 마련되는 것이다. 언론의 성숙된 보도 자세는 국민의 비판적 감시기능에 의해 가능한 것이지 ‘범죄와의 전쟁’ 같은 정부의 구호나 강제적 법조항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상품으로서의 언론에 대한 소비자보호 운동 등이 활발히 전개되고 운동 역량이 커짐으로써 ‘상품의 질’이 개선되는 것이다.

● 언론이 개인의 신분을 노출함으로써 불이익을 입힐 경우,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는 등 기종의 구제 절차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개인이 ‘막강한 언론’을 상대로 싸우기도 힘들거니와 언론 중재위에 제소해도 이기기가 어렵다는 인식 때문에 아ㅖ 포기하고 피해를 감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 경우가 있을 거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여당이 법을 날치기 삽입하지 않고 입법예고 ‘찬반토론’ 공청회 등 충분한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쳤더라면 지금쯤 토론 열기가 드높았을 것이다. 그런데 심의과정에서 슬며시 처벌조항이 빠짐으로써 반대 열기가 일과성에 그치고 말았다. 공개적인 토론 과정을 거침으로써 독자?시청자의 소비자 운동, 권익 보호 운동 등이 비판적 감시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피해를 감수하는 소극적 자세에서 탈피해 국민이 적극적으로 언론을 비판, 감시해야 정도를 걷는 언론을 만들 수 있고, 또 그런 언론이 국민의 비판적 감시환경을 강화하는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 선언적 규정에 지나지 않으므로 언론자유가 침해되지도 않거니와 보도하는 데 실제 제약을 받지도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

 처벌조항이 없어졌어도 문제는 남아 있다. 특정강력범죄 이른바 흉악범죄를 가중처벌하는 특례법에 언론의 의무규정을 삽입한 것이 문제다. 다른 법안에 규정해야 마땅한 언론의 의무조항을 엉뚱한 곳에 끼워넣음으로써 일선 경찰이 이를 빌미로 정보공개 여부를 자의적으로 판단하거나 아예 정보 접근을 차단해 취재를 방해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범죄와 수사에 관한 정보는 언론 및 국민의 감시기능 밖에 놓이게 되어 다시 예전처럼 밀실수사가 판칠 가능성이 커진다. 만에 하나라도 일선 경찰이 이를 정보 접근을 방해하려는 빌미로 삼지 않기를 바란다.

● 법안이 이미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버려 이제는 ‘버스 떠난 뒤에 손 들기’ 형국이 돼버렸다. 앞으로 어떤 절차, 어떤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나.

 처벌조항이 폐지됨으로써 당초의 입법 의도는 무산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정부 여당의 언론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이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언론도 국민이 선의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동시에 국민도 언론에 대해서 자기 권익과 권리를 요구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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