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결단은 위험한 선택
  • 한종호 기자 ()
  • 승인 2006.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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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 3월12일 중앙인민위원회 제9기 7차회의에서 핵확산금지조약(NPT·이하 핵금조약)을 탈퇴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정식 통고함으로써 일어난 국제적 긴장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로써 그동안 북한핵을 둘러싸고 복잡하게 얽혀 있던 대립 구도는 이제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 대 ??북한??으로 확연히 재편됐다. 핵금조약 규정상 탈퇴선언을 한 후 3개월 동안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수용할 의무가 남아 있지만, 유엔 안보리가 이 문제에 대한 논의에 착수한 만큼 이제 무대는 유엔으로 넘어간 셈이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국제원자력기구의 외교적 노력과는 무관하게 동맹국들과 대북한 제재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남북관계 개선 돌파구 될 수도

한편 이번 사태는 핵문제를 남북한이 자주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핵금조약을 탈퇴함으로써 북한은 핵의혹을 해소할 수 있는 국제적 통로는 완전히 사라졌으며, 유일하게 남은 대화통로는 남북 상호사찰 협상뿐이기 때문이다. 북한도 거부할 의사를 명시하지 않았고 남북 양측이 조심스럽게 대화를 재개하고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이번 사태가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돌파구로 반전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핵금조약에서 탈퇴한 것은 이례적이기는 하되 국제법에 위배된 행동은 아니다. 핵금조약 10조 1항은 “이 조약의 내용과 관련된 예외적 사건들이 국가의 최고 이익을 위태롭게 한다고 판단할 경우 조약을 탈퇴할 권리를 갖는다??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국제사회의 첫 반응도 북한으로 하여금 탈퇴결정을 철회하도록 ??촉구??하는 쪽으로 모아졌다. 그렇다고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핵무기확산 저지를 최우선 외교 과제로 내걸고 있는 미국 정부가 북한의 행동을 ??세계평화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하고 유엔을 통한 각종 제재조처를 동원하려 할 것임은 누구나 예견할 수 있다.

미국은 국제사찰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왔다. 한국 정부의 핵정책을 입안하는 한 당국자는 “미국은 비밀거래 가능성 때문에 남북한간 핵협상을 신뢰하지 않는다. 심지어 국제 원자력기구 사찰팀의 능력도 한심한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 북한이 국제사찰을 원천적으로 거부한 것은 미국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북한은 미국이 강도 높은 제재수단을 동원하리라고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핵금조약 탈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김영남 북한 외교부장이 유엔 안보리 의장인 테렌스 크리스토퍼 오브라이언 뉴질랜드 대사에게 전달한 공식서한을 보면, 북한이 탈퇴한 이유는 미국이 △팀스피리트 훈련을 재개했고 △국제원자력기구를 부추겨 군사기지를 개방토록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핵금조약 탈퇴를 선언한 ‘조선정부 성명??에서도 북한은 팀스피리트 훈련을 ??공화국 북반부에 핵 선제공격을 가하기 위한 핵공격 연습??으로,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 요구는 이같은 미국의 ??핵위협??에 가세한 것으로 규정하여 미국을 주된 표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것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금조약 탈퇴를 결정케 한 1차적 계기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이것은 표면적 계기일 뿐이며 북한의 속셈을 좀더 미시적으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북한 대외정책의 일부 수정으로 보는 해석이다. 북한은 지난 85년 핵금조약에 가입한 이래 92년 4월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수용할 때까지 핵문제를 강력한 외교·안보 정책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그러나 눈에 드러나는 성과를 얻지 못한 채 오히려 궁지에 몰리게 되자 이번 기화에 팀스피리트와 한데 엮어 더이상 얻을 게 없는 핵외교쪽 문을 아예 닫으려 한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해석은, 국제원자력기구가 제기한 의혹(13쪽 상자 기사 참조)에 대해 더 이상 방어할 수 없게 된 북한이 쟁점을 ‘핵사찰??에서 ??조약 탈퇴??쪽으로 옮겨 본질을 희석하려는 게 아니냐 하는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의 특별사찰을 거부할 경우 어차피 유엔의 제재가 뒤따를 것이기 때문에 국제여론이 더 악화되기 전에 선제 행동으로 맞부딪쳐 보자는 계산을 했으리라는 분석이다.

북한의 결정이 팀스피리트 훈련과 국제원자력기구의 특별사찰 압력에 대항하는 일시적인 조처인지, 아니면 본격적인 핵무기 개발에 돌입하기 위한 전략적 조처인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핵금조약을 탈퇴하는 것이 북한으로서는 유일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클린턴 행정부의 핵정책이 부시 정부에 비해 훨씬 강력하고 구체적인 것임을 확인한 북한으로서는 앉아서 무장해제를 당하는 것보다는 아예 판을 깨는 방식으로 상황을 타개하려 했을 것이다.

이번 사태를 북한 내에 강경파가 득세한 탓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강·온파는 체제유지라는 동일한 목표를 놓고 그 수단과 방법을 달리할 뿐이므로 핵금조약 탈퇴를 놓고 한 목소리를 냈을 것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통일원의 한 당국자도 “북한이 보수파와 개방파 간에 대립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장된 것??이라며 북한의 일관된 입장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 정치를 연구하는 한 소장 학자는 ??1세대 빨치산을 중심으로 한 북한 보수강경파의 입지와 논리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북한은 지금까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강경파가 주도하여 상황을 정면돌파하려 해왔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번 결정도 강경파의 갑작스런 득세 때문이라기보다는 북한의 일관된 위기대응 양식의 사례로 파악해야 할 것 같다.

무력충돌·탈퇴 번복 가능성 희박

북한이 이처럼 배수진을 치고 나선 만큼 앞으로의 상황을 예측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미국이 이라크 때처럼 유엔 군복으로 갈아입고 군사력까지 동원한 강제사찰을 실시할 경우, 그리고 북한이 이에 대항하여 ‘자위적 수단??을 동원함으로써 양측간 혹은 남한을 포함한 3자 간에 무력충돌이 일어나는 상황을 예상할 수 있다. 이른바 최악의 시나리오, 혹은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의 서곡이다. 그러나 현실화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이 시나리오의 문제점은 첫째 유엔 안보리에서의 강제사찰 결의가 중국 등의 반대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 둘째는 한반도에서의 전쟁상황을 한국 정부가 강력히 반대한다는 점, 셋째는 최종적으로 군사적 공격을 감행해야 할 만큼 한반도에 미국의 국익이 크게 걸려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등이다.

두번째 시나리오는 북한이 약간의 소득을 얻는 조건으로 핵금조약 탈퇴를 철회하고 국제사찰을 수용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이 역시 현실화할 가능성이 낮다. 북한은 탈퇴 성명에서 △미국이 우리에 대한 핵위협을 중지하고 △국제원자력기구 서기국이 독자성과 공정성의 원칙으로 돌아설 때까지 입장을 바꾸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 두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될 가능성은, 북한이 자진해서 핵시설을 개방할 가능성보다 훨씬 낮다. 많은 나라들이 겉으로는 북한에 대해 이같은 ‘워낭 회복??을 요구한다. 이러한 태도는 얼핏 합리적인 듯하면서도 이율배반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적어도 한?미?일 당국자들은 이번 상황이 ??원상 회복??보다는 북한의 ??변화??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내심 바란다. 따라서 서방측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하게 사태는 다음의 세번째 유형으로 전개될 공산이 크다.

세 번째로 상정해볼 수 있는 상황의 핵심은 (북한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 가운데) 미국이 봉쇄정책을 쓰는 것이다. 유엔의 결의 아래 미국이 동맹국들의 협조를 얻어 북한에 대한 모든 경제적 인도적 군사적 지원 및 교역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준수하지 않는 국가를 제재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북한의 팔을 비트는 방식이다. 이같은 정책은 특별한 정치적 부담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미국이 채택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라크의 경우에서 보았듯 서방측의 공조체제라는 것이 허술하고 삐걱거리기 일쑤여서 그 실효성이 완벽하게 보장되리라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주의깊게 지켜봐야 할 것은 미국의 봉쇄정책이 제대로 먹혀들어갈 경우이다. 이미 확인된 바와 같이 북한의 식량·에너지 상황은 선례가 없을 만큼 심각한 지경에 빠져 있다(6~9쪽 기사 참조). 이같은 식량·에너지 위기상황이 더욱 악화될 경우 어떤 정치적 급변 상황이 발생할 것인지 예측하기 대단히 힘들다는 뜻이다. <아사히신문>은 극동문제연구소 강인덕 소장의 말을 인용해 “북한이 현상유지를 하는 데는 연간 3억달러 정도 필요하다. 이는 해외교포의 헌금으로 조달이 가능하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극도의 내핍을 견뎌내며 체제를 유지해날갈지, 아니면 주민 봉기와 군대의 대오 이탈을 계기로 심각한 정치적 혼란에 빠질지 확언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같은 급변 상황이 발생할 개연성은 맨 처음 살펴본 ??최악의 시나리오??보다는 높다(16~17쪽 일본 안전보장협의회 가세 히데아키 이사장 기고문 참조).

이번 사태로 가장 곤경에 빠진 쪽은 한국 정부이다. 북한핵 문제의 핵심 당사자여야 할 한국 정부는 91년 12월의 비핵선언으로 모든 핵능력을 스스로 포기해버렸기 때문에 북한핵 문제를 놓고 협상을 벌일 수 있는 아무런 정책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 북한이 핵금조약 탈퇴를 선언한 후로 한국 정부의 대북한 정보 수집능력 부족과 정책수단 부재를 개탄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유일하게 고수하고 있는 것이 상호 핵사찰과 남북경협의 ‘연계정책??이지만, 이는 남북관계의 진전과 통일이라는 국가목표 자체를 볼모로 삼고 있다고 비판받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금조약 탈퇴로 국제기구를 통한 핵문제 해결이 사실상 불가능해짐에 따라 남은 유일한 통로인 남북 핵협상의 위상은 크게 높아지게 됐다. 정부의 몇몇 당국자들은 “이번 사태는 한국이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독자적 핵정책을 활용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정부가 무조건 국제여론에 따르기보다는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일 ‘남북 대타협??우려

이런 맥락에서 일본의 북한 전문가들은 벌써부터 북한과 남한의 직거래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연합통신 보도에 따르면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게이오대·국제정치학)는 “북한이 핵문제를 남북한 간의 흥정거리로 들고 나서려 한다??면서, 북한은 ??최악의 상황을 원치 않으면서도 북한과 쉽게 타협할 수 없는 한국의 약점을 노리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또 이즈미 하즈메 교수(시즈오카대?국제관계론)는 북한이 핵문제를 국제문제에서 민족내부 문제로 전환시키려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북한이 핵금조약을 탈퇴한 후 핵문제의 유일한 창구가 될 남북핵통제공동위에서 상호 핵사찰에 대한 모종이 타협을 노릴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정부의 한 당국자는 ??그것이 바로 미국이 우려하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정부가 미?일 등 우방과의 외교적 마찰을 감수하면서까지 북한과 대타협을 시도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가지 눈여겨볼 것은 한국 정부가 이인모씨 송환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실무접촉을 제의한 데 대해 3월13일 북한이 이를 수락하고 나선 점이다. 아직은 모든 게 불명확한 상황이지만 이씨 송환 문제 협의는 남북이 어떻게 사태를 풀어가려 하는지를 판별케 하는 시금석이 될 것 같다.

“팀스피리트 훈련은 공화국 자주권에 대한 침해이고 내정간섭이며, 우리 사회주의를 압살하려는 적대행위다. 핵금조약에서의 탈퇴는 우리 공화국에 대한 미국의 핵전쟁 책동과 국제원자력기구 사무국 일부 계층의 부당한 처사에 대한 응당한 자위적 조치이다.??

<조선정부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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