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통신
  • 파리 · 양영란 통신원 ()
  • 승인 2006.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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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송사 휘말린 슈츄킨 컬렉션




지난 2월말부터 파리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야수파의 거장 앙리 마티스 회고전이 열러 미술 애호가를 기쁘게 해주고 있다. 미술관이 자리잡고 있는 퐁피두센터 앞에는 연일 전세계에서 몰려온 관람객이 장사진을 이루지만, ‘예술의 도시??파리 시민에게는 흔한 풍경일 뿐이다. 최근 몇해 사이에만 툴루즈 로트렉, 막스 에른스트, 앙드레 마송 등의 굵직굵직한 회고전이 심심치 않게 열렸다.

이번 마티스 회고전은 색다른 의미를 갖는다. 마티스 작품에 대한 소유권과 복제권을 놓고 국제 소송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송은 쟁점이 된 작품 <춤> <대화> <파란 정물> 등이 마티스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데다 미술품의 개인 상속권, 특정 국가의 체제, 그 체제가 미술품의 국제교류에 미치는 영향 등 미묘하고 까다로운 문제가 끼여 있어 세계 미술계의 눈길을 모으고 있다. 소송을 제기한 사람은 제정 러시아의 부호이자 현대미술 애호가였던 세르게이 슈츄킨의 딸 이리나 슈츄킨(77)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마스티가 1904~1917년에 제작한 작품 1백40여점이 걸렸는데 이 가운데 20점 가량이 세르게이 슈츄킨의 소장품으로 사유재산이라는 것이 원고측 주장이다.

러시아의 부유한 섬유업자 슈츄킨은 그의 친구 모소로프와 더불어 당시(19세기말~20세기초)로서는 보기 드문 현대미술 애호가였다. 그는 파리 여행길에 모네의 그림을 한점 구입한 것이 계기가 되어 모네 고갱 고호 드가 등 인상파로부터 마티스 드랭 피카소 등 야수파와 입체파 거장에 이르기까지 작품을 대대적으로 사들였다. 그가 마티스의 그림을 39점이나 구입한 덕분에 마티스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으면서 작업할 수 있었다. 슈츄킨은 일요일마다 자신의 거처인 모스크바 시내 트루베츠코이궁을 일반에게 개방했으므로 시민들은 4백50여점에 달하는 그의 개인 소장품을 통해 당대 유럽 예술의 첨단 사조를 조망할 수 있었다. 뒷날 유명해진 라리오노프, 곤차로바 등 화가도 ‘슈츄킨 일요 미술관??의 단골 손님이었다.

그러나 볼셰비키 혁명 이후 슈츄킨 소장품은 모두 국유화되었다. 그때부터 50년대까지 슈츄킨 소장품의 대다수는 ‘퇴폐 예술??이라는 낙인이 찍혀 일반에게 전시되지 않은 채 사장되었다. 36년 슈츄킨은 파리에서 사망하기에 앞서 작성한 유언장에 부인과 자식들을 그의 상속인으로 지정했는데, 현재 막내딸인 이리나만이 생존해 있다.

이리나는 슈츄킨의 유일한 상속인인 자기의 동의 없이 부친의 소장품을 전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퐁피두센터 관계자는 “슈츄킨의 소장품을 국유화한 법이 악법이었다고는 하나 그 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작품의 소유주는 러시아 정북이므로 러시아 정부의 동의를 얻은 전시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라고 맞서고 있다.

옛 소련이 사유재산권을 인정하지 않던 시절에는 모든 문제가 간단했다. 슈츄킨 소장품을 전시할 경우 주최측이 이리나에게 선전 동의를 요청하고 그는 늘 수락만 하는, 말하자면 요식 행위만 거치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사정은 달라졌다. 지난 2월 이리나는 옐친에게 서한을 보내 “러시아가 서유럽과 같은 법치 국가를 지향한다면 개인의 재능이나 사유재산을 약탈하는 횡포는 재고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리나 슈츄킨이 요구하는 것은 부친의 소장품을 돌려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리나는 부친이 생전에 원했던 것처럼 ‘슈츄킨 컬렉션??이 러시아의 문화 유산으로 보존되기를 원한다. 다만 그는 소장품을 슈츄킨 집안의 자유의사에 따라 떳떳하게 모스크바시에 기증할 수 있도록 부친 의 이름을 복권시켜 줄 것을 요구한다. 그는 부친이 소유했던 모든 그림에 ??슈츄킨 기증??이라는 구절을 새기고 컬렉션 전체를 예전대로 트루베츠코이궁에 보관?전시하라는 등의 조건을 내걸었다.

‘악법??을 방패삼은 러시아 정부가 언제까지고 이리나의 요구를 묵살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처럼 불유쾌한 소송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전시자측은 점차 러시아 미술관 소장품을 전시하기를 꺼릴 것이고, 따라서 이런 미술품의 해외 나들이 길은 막히게 된다. 최악의 재정 위기를 맞고 있는 러시아의 톡톡한 외화 수입원이 봉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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