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후 공개 조항도 있어야
  • 김상현 기자 ()
  • 승인 2006.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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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행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주요 공직자들의 재산등록 사항은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10조). 재산등록 서류는 밀봉된 채 단지 보관만 할 뿐이다. 따라서 고위 공직자나 국회의원들이 범죄수사·비위조사 따위에 관련되지 않는 한 국민은 자기 ‘공복’들이 공직에 있으면서 어떤 방법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지 알 수 없다.

 현행법에 따른다면 ‘자진’형식을 빌린 지금의 강요성 재산공개 방식을 ‘초법적인’ 조처라고 할 수 있다. 金令鐘 교수(숭실대·행정학)는 “재산 공개를 뒷받침할 만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거나 현행법의 허점을 보완하는 일이 선행됐어야 한다. 법적·제도적 근거 없이 의욕만 앞세워서는 공직자들의 재산 공개가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고 말했다. 허술한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면서 모양새만 내는 속빈 강정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공직자윤리법은 81년에 제정됐다. 이 법에 따라 해당 공직자는 등록의무자가 된 날로부터 한달 이내에 자신을 포함한 직계존비속의 재산을 등록해야 한다. 등록하도록 규정돼 있는 재산에는 부동산·광업권·어업권 등과 1천만원 이상의 현금·예금·유가증권, 5백만원 이상의 보석·골동품·예술품이 포함된다.

 

“독립된 조사기관 설치해야”

 총무처의 한 관계자는 “발송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해외 주재원 말고는 모든 공직자가 정해진 기일 안에 재산등록을 마친다”고 말했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도 “재산 등록은 1백% 지켜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재산 등록의 형식이 아니라 내용의 ‘진실성’이다. 이 법 제8조 1항에는 “등록기관의장이 등록된 사항을 심사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심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총무처의 한 관계자는 “매년 1월에 4천3백여건의 재산 변동신고를 받아 3월부터 심사에 들어가는데 보통 5~6개월이 걸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심사에 참여하는 실무자는 고작 4명뿐이다. “등록 서류를 제대로 갖추었는지 확인하기에도 숨이찬다”는 게 한 실무자의 말이다. 다른 등록 기관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국회 사무처의 한 관계자는 “등록 재산에 대해 한번도 심사·조사 작업을 벌인 적이 없다. 국회의원의 양식을 믿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라고 반문했다. 이와 관련해 김석준 교수(이화여대·행정학)는 “현행법을 보면 자기 재산을 ‘스스로 알아서’ 심사하고 조사하라는 식이다. 심사 차원을 넘어 등록 재산을 철저히 실사할 수 있는 독립된 조사기관을 설치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재산 등록의 진실성이 검증되지 않으니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백만원 이하의 벌금’(23조)이라는 처벌규정조차 유명무실하다.

 별도의 실사 기관을 설치한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부동산의 경우 전산화가 끝나 그 규모나 내역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지만, 가격을 매기는 방법이 시가·공시지가·감정가격 등 여러가지여서 무엇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실제 가격이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

 민자당은 공개한 재산을 실사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설령 실사하려고 해도 금융실명제가 돼 있지 않아 가명·차명을 사용한 금융자산의 분산·은폐가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3월10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정치자금의 투명화·공개화를 통한 깨끗한 정치의 실현을 위해 무엇보다도 금융실명제가 즉각 실시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석준 교수는 “무엇보다도 공직자윤리법의 재산 ‘등록’ 조항을 개정해 주요 공직자가 재산 변동 사항을 국민 앞에 떳떳하게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취임 때는 물론 퇴임 후에도 일정 기간 재산 등록을 하게 해서 공직에 있는 동안 재산을 얼마나 모았는지 변동사항을 알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법에는 퇴임 후의 재산등록 의무 조항이 없다.

 사회 부패를 방지하자는 ‘외침’은 과거에도 있어 왔다. 그러나 그 운동은 예외없이 체육관의 일회성 궐기대회에 머물렀고 역대 정권들은 권력형 부패의 악순환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김영종 교수는 “제도와 정책으로 뒷받침되지 않고 한때의 분위기만으로 개혁을 추진하려 했기 때문이다. 공직자에게 ‘윤리’만 강요하던 때는 지났다. 강력한 정책의지로 법적·제도적 장치를 먼저 마련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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