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경제대국 향해 ‘큰 걸음’내디딘 중국
  • 북경·박승호 통신원 ()
  • 승인 2006.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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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대 8기 1차회의 / 시장경제 초점 맞춰 체제 칼질



 중국의 시장경제 체제를 법적으로 명문화한 전국인민대표대회(이하 전인대)가 3월말 막을 내렸다. 전인대는 5년을 한 기로 하는데 이번 대회는 제8기 1차 회의였다. 주요 의제는 앞으로 5년 간의 국가발전 전략을 비롯하여 국가주석단.국무원 총리 및 부장급.중앙군사위원회 주석단 등 정부 고위 인사 개편, 그리고 헌법수정안 처리 등이었다.

 이번 회의는 지난해 제14차 전국공산당 대표대회에서 설정한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설계도안을 토대로 하여 구체적인 시공 방안을 작성한 셈인데, 이를 헌법으로 조문화했다는 점에서 중국 체제의 전환을 실감케 한다.

 1천4백여 내외 기자가 취재경재을 벌이는 가운데 이붕 총리의 ‘정부사업보고’로 시작한 이번 회의의 가장 큼 특징은, 중국 정부가 과거 어느 때보다 체제 개혁에 대한 자신감에 넘치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정책의 추진 방향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비효율과 낭비로 점철된 옛 체제의 틀을 칼질하는 데 전력을 집중했다.

 이붕 총리는, 명실상부한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수립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앞으로 8차 5개년계획 기간(91~95년)의 성장목표를 당초 연평균 6%에서 8~9%로 상향조정하고, 본래 2000년까지로 정했던 국민총생산액 4배 증가 계획(80년 대비)을 3년 앞당겨 실현하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중국 경제력, 21세기 초엔 미국. EC능가”

 전인대에 제출한 국무원의 기구개혁 방안은 더욱 과감했다. 주요 내용은 국무원 직속기구 44개 중 26개, 비상설기구 85개중 59개를 폐지한다는 것이다. 또 국무원의 부급 조직 42개 중 에너지부. 기계전자공업부. 항공항천공업부. 경공업부. 방직공업부. 상업부. 물자부 등 7개 부를 폐지하며, 국가경제무역위원회. 전력공업부. 석탄공업부. 기계공업부. 전자공업부. 국내무역부 등 6개 부를 신설해 총 41개 부로 개편하고, 3년 안에 각급 정부 관리 25%를 감원한다는 것이다.

 이번의 기구개혁 방안은 그동안 위인설관 식으로 방만하게 운용하던 정부 조직을 정비한다는 의미와 함께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정부기능의 질적 전환과 수요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즉 그동안 정부가 기업을 지도해온 방식인 1대 1식의 미시적인 정부규제를 없애고 거시적인 통제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부기능을 바꾸는데 필요한 1차적인 형식을 갖춘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같은 조처는 경제 사정이 좋은 지금이야말로 개혁의 적기라고 판단한 결과이다. 등소평이 올해초 상해를 시찰하면서 “좋은 기회를 놓지지 말고 큰 일을 위해 작은 착오를 근심하지 말라”고 한 격려가 새삼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제 중국 정부는 6.4 천안문 사건의 후유증을 청산하는 것은 물론, 옛 소련과 동유럽 공산당 붕괴 이후 집중되는서방의 압력에 적절히 대쳐하면서 사상 유례없는 번영의 새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추가화 부총리 겸 계획위원회 주임은 전인대에서 행한 ‘국민경제보고’에서 “89년에 4%로 내려갔던 경제성장률이 91년에는 7%,92년에는 12.8%로 급속히 상승기류를 타고 있고, 대외무역과 외자도입은 개방 이래 최대의 붐을 맞고 있다”라고 밝혔다.

 중국의 최근 대외무역 수지는 3년 연속 흑자로 누계 2백12억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다.지난해의 총무역액은 1천6백56억달러로 세계 11위 무역 국가로 발돋움하였으며 금년에는 10위권내 진입을 바라본다. 이처럼 급신장하는 대외무역 추세에 발맞추어 중국 정부는 올해 안에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가입한다는 목표 아래 환율 조정과 관세 인하 등 수입제도를 개혁해 나가면서 시장 개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외자도입은 그동안 화교 자본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관광 또는 실험적 투자 자본에 그쳤으나, 최근 미국. 일본 등의 세계 굴지 대기업들이 적극성을 띠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직접투자 유치는 지난해 4만7천건으로 개방 이래 12년 동안의 총누계를 앞질렀다. 유치한 금액도 협의 기준 6백74억6천만달러, 실행 기준 1백12억달러라는 신기록을 보여주었다. 외채는 5백25억달러(92년 6월 현재)에 달하지만 외환보유고가 5백억달러에 육박하고 있고 차관도입도 순조로운 상황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현 단계의 중국 경제가 한국의 70년대 중반과 일본의 50년대 말과 비슷한 경제 도약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중국 경제가 지금과 같은 발전을 지속할 경우 21세기 초에는 경제력에서 미국이나 유럽공동체(EC)를 능가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그러나 중국 경제가 당면한 문제도 만만치 않다. 일찍이 등소평은 90년대에 중국이 진면할 최대 난제는 농촌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계혹되는 풍작으로 곡물을 저장하기가 어려워 낭비와 손실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다가 곡물의 환금성마저 낮다. 정부 수매과정에서 각급 지방 정부가 ‘바이티아오’라고 부르는 약식 차용증서를 발급하는 횡포가 관례처럼 되어 있는 데다가, 갖가지 부담금이 농민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요컨대 농민은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 데는 걱정이 없지만 수중에 돈을 쥐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나서는 농민이 갈수록 늘고 있다. 사천성의 경우 이같은 농민 수가 5백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당국은 추산한다. 이번 회의에서 강택민 총서기를 비롯한 정부 지도자들은 각 지역 대표들로부터 이같은 농촌문제의 심각성을 귀가 따갑게 들어야만 했다. 주용기 부총리는 이에 대해 ‘바이티아오’를 근절하고 각종 부담금 징수를 즉각 중지하지 않으면 농민의 지지를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농.빈부 격차 등 난제 수두룩

 농촌문제 말고도 오늘날 중국이 경제건설을 하는 데 가로놓인 장애 요인은 허다하다.특히 지방 정부의 지역이기주의(山頭主義)가 수많은 병폐를 낳고 있는데, 지역 간의 균형 발전을 위해 중앙 정부가 지방 정부를 설득하거나 조정에 나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로 인해 중복 투자와 시장 분할을 서슴지 않는 풍조가 연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고, 지방 정부는 늘 중앙의 통제를 벗어나는 요령에 익숙하다. “중앙 정부의 정책은 백번 옳다. 다만 우리 지역 사정은 매우 특수한 상황이므로 별도로 고려해야 한다”라는 식이다.

 소득 수준 향상과 함께 소비풍조가 만연하면서 빈부 격채가 커지는 점은 사회주의 이념을 무색케 한다. 정확한 공식통계는 아니지만 체제개혁위원회의 연구원은 “전국적으로 볼 때 연간수입 5만元 이상의 소득자가 6백만~7백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옳다”라고 전한다. 최근 문을 연 고급 백화점에서 한국돈으로 40만~50만원대의 한국제 고급 의류가 잘 팔리는 현상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번 전인대에서 상해 사회과학원의 張仲禮 원장은 가짜 상품 유통의 심각성을 제기했다.오늘날 중국은 ‘마오타이’ ‘우량에’등 고급 술과 ‘말보로’‘中草’ 등 고급 담배를 비롯하여 상상을 뛰어넘는 각종 가짜 상품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시장경제로 개혁해 가는 데 대한 과제도 산적해 있다. 경제개혁의 관건으로 지칭되던 가격개혁은 전체 상품의 80%가 시장가격화되어 일단 한 고비를 넘겼고, 현재는 국유 기업을 개혁하는 일이 최대 난제로 떠오른 상태다. 국유 기업의 생산성은 계속 낮은 수준이며, 사실상 적자를 내는 기업이 전체 국유기업의 3분의 2를 차지해 정부 재정을 악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를 수호하면서 시장경제로 진입해야 하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쫓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그러나 전인대 8기 1차 회의는 등소평 이후의 노선 정립과 인사 개편을 마무리짓고 ‘21세기 경제대국’을 향한 새 시대를 연는 기초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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