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는 재산공개 ‘성역’인가
  • 문정우 기자 ()
  • 승인 2006.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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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법관 정보선점·특혜로 축재…“조기 공개로 검은 뿌리 뽑자”



 사법부가 엉뚱한 때에 독립심을 발휘하고 있다. 국회의원과 장?차관들이 모두 재산을 공개하고 여론의 심판을 받고 있는 마당에 사법부 판사들만은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재산 공개를 늦추고 있다. 즉 “3권이 엄연히 분리돼 있는데 정치권의 움직임에 덩달아 휘말릴 필요가 없다??거나 ??법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원행정처의 공식 입장은 ??아직 어떤 결정도 내린 바 없다??이지만 사법부 상층부의 의견은 재산 공개를 공직자윤리법 개정 이후로 미루는 쪽으로 정리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사법부가 재산 공개를 미루는 것을 ‘외풍에 굴하지 않는 초연한 태도??라고 봐주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봐주기는커녕 ??사법부가 언제부터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되었는가??라는 비아냥과 ??사법부의 권위를 자기들의 치부를 가리는 데 이용한다??는 따가운 비판이 많다.

 마침 서울 서초동 법조 주변에서는 부동산 매몰이 쏟아져나오고 있어, 재산 공개를 늦추는 사법부의 이런 저런 명분이 단순히 재산을 은폐할 시간벌기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세간의 의혹이 따른다.

 사법부가 재산 공개를 미루는 데 대해서는 사법부 안에서도 거친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한 판사는 이렇게 말한다.

 “사법부의 권위를 지킬 때는 따로 있는 것이다. 정치 권력이 법의 정신을 어기라고 주문할 때 지켜야 하는 것이지 국민에게 부패척결 의지를 보이자고 할 때 들이댈 성질의 것은 아니다. 현재 사법부는 곪을 대로 곪아 있다. 재산이 공개되면 그러한 사법부의 치부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일 것이다. 사법부의 상층부가 곤혹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 차관급(고등법원 부장판사) 이상 고위 법관은 모두 1백3명이다. 지난번 김재철 사법연수원장이 차관급 이상 재산 공개 전에 지레 사표를 냈지만, 고위 법관 중에는 재산가가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열린 법학회에 참석했던 한 교수는 “그 자리에 모였던 법조인들 사이에서는 사법부 상층부 중에는 재산 문제로 곤혹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점에서는 사법부 수장을 비롯한 최고위급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는 말들이 오갔다??라고 전했다.

 소장파 판사들로부터 지탄받는 재산가 판사들의 축재 방식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 가장 고전적인 방식은 ‘좋은 정보??를 미리 빼내 부동산을 사두는 것이다. 업무 성격상 정보가 빠를 수밖에 없는 검사나 다른 기관장들의 귀뜸을 받아 개발 예정지를 미리 사들이는 것이다.

 

“법원 이전??소리 듣고 땅 사들여

 심지어는 법원 청사 이전을 축재의 호기로 이용하기도 했다. 예컨대 법원을 어느 지역으로 이전한다는 계획이 서면 잽싸게 그 지역의 땅을 헐값에 사들이는 것이다. 서울 서초동 비닐 하우스를 철거할 때 그 지역 지주의 상당수가 법조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화재가 되었는데. 지방의 경우도 법원 주변 땅은 대부분 법조인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말이 떠돌고 있다. 업무상 알게 된 정보를 축재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는 공직자의 윤리와 금기는 사법부에서조차도 이미 깨진 지 오래다.

 판사들은 부도 난 회사에 대한 법정관리에 들어갈 때도 마음만 먹으면 큰 돈을 만질 수 있다고 한다. 막대한 이권이 걸린 회사의 경영권을 따내기 위해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로비를 벌이는데 그때 칼자루를 쥐는 것은 판사이기 때문이다. 드물게는 골프장이 법정관리로 넘어오는 수도 있는데 그럴 때 골프장 회원권 몇장쯤 손에 넣기란 쉬운 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법부내에서도 행정부처럼 어느 지역 어느 법원은 ‘알짜??라는 애기가 나도는 형편이다.

 어두운 구석이 많은 정부투자기관에서도 판사들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치다. 6공 시절 신도시 개발을 할 때 토지개발공사에서는 “공무원의 복지를 향상시킨다??는 명목으로 주요 국가 기관에 땅을 특별분양해주곤 했는데 사법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87년 경기도의 한 도시에서 법관 생활을 시작한 어떤 판사는 ??그때 땅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많아 법원 내부에서도 추첨을 한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고 회고하며 ??정작 가난한 젊은 판사들은 땅을 살 엄두도 못내고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만 땅을 사 덕을 봤다??고 얘기했다.

 지난 90년 판?검사들이 폭력배들과 호화판 술판을 벌인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빚은 바 있지만. 검사나 변호사, 그리고 지역 유지들과 지나치게 밀착된 관계를 유지하는 일부 판사들도 지탄 대상이다. 젊은 판사들은 “그들이 지역 유지로부터는 각종 회원권과 향응을 제공받고 검사들에게는 골프장 부킹을 전담시키면서 호화판 사생활을 즐긴다??라고 비판한다.

 젊은 판사들이 재산 공개 문제에 대해 목청을 높이는 이유는 단순히 지탄받는 몇몇 판사가 물러나는 것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재산 공개가 사법부의 내부 모순을 정리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정부 수립 이후 사법부 내에서는 개혁다운 개혁이 이루어진 적이 아직 한번도 없다. 특히 유신 이후 법 정신으로 보나 상식으로 보나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판례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책임을 지고 물러난 사람은 없다. 반면 부당한 정치적 압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어김없이 옷을 벗어야 했다. 인권변호사인 ㅂ씨는 “현재 사법부 상층부는 법률가인지 정치가인지 분간이 안되는 사람들이 상당히 차 있다??는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현 대법원장인 김덕주씨도 90년 12월 취임할 당시 전력 때문에 법조계에서 말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김대법원장은 지난 79년 서울민사지법원장 재직 시절 당시 김영삼 신민당 총재에 대한 총재직무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으며, 80년에는 국보위입법위원으로 참여한 바도 있다. 또 대법원 판사이던 90년 10월에는 2심에서 법정구속까지 됐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처남 이창석씨를 보석으로 풀어주기도 했다. 사실심리가 아니라 법리검토를 주로 하는 대법원이 보석을 결정한 것은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다.

 3공 이후 정치적 기류에 영합해 판결을 내린 사례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유신시설 굵직한 시국사건의 경우 권력 기관으로부터 형량까지 정해져 내려왔다는 것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5공, 6?29, 공안 통치, 3당 통합 등 정치적 고비를 거칠 때마다 법원은 마치 곡예를 하는 듯한 판결을 해왔다. 대표적인 경우가 부천서 성고문 사건이다. 서울고등법원에서는 재정신청을 기각했는데 6?29선언이 있자 갑자기 대법원이 문귀동에게 유죄판결을 내려 구속하기도 했었다.

 또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부동산 투기범에게 관대한 판결을 내려 빈축을 사기도 했다. 단적인 예가 90년 산부인과 의사인 목영자씨의 투기 사건이다. 목씨는 당시 부동산ㅇㄹ 73억원어치 매입하면서 수십억원의 양도차액을 챙긴 협의로 구속됐는데 당시 이 사건을 맡은 서울지법 남부지원은 구속 2개월 만에 목씨를 집행유예로 풀어주었다. 그 때문에 이번에 공직자들의 재산 공개를 계기로 부동산 투기가 문제되자 법조인들 사이에서는 “사회 지도층의 투기를 조장한 것은 사법부??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이다.

 권력의 압력에 저항하며 소신을 지킨 판사들이 옷을 벗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당한 것도 사법부 내부 모순의 한 단면이다. 시국 관련 사건 피의자에게 중형을 선고하는 법원장의 지시를 어겼다가 지방으로 좌천된 사례가 많으며, 그같은 인사의 부당성을 지적했다가 마찬가지로 불이익을 당한 판사도 적지 않다. 또 자기 사람을 따지는 그릇된 풍토 때문에 인사에서 난맥상이 연출되는 것도 불만의 불씨이다. 특히 고위 법관의 아들이나 사위가 서울 근교의 요지로 발령나는 인사비리가 많다는 게 사실로 알려지고 있다.

 

시국 사건에는 칼, 이권 재판에는 솜방망이

 젊은 판사들이, 재산 공개가 이같이 얽히고 설킨 사법부의 내부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라고 믿는 까닭은, 재산형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법관으로서의 전력에도 흠집이 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시국 사건에서 터무니없이 중형을 때리는 사람은 대개 이권이 걸린 재판에서는 관대한 판결을 내린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또 재산 공개가 이루어지면 사법부 개혁 문제가 자연스럽게 거론되리란 기대도 갖고 있다.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의 한 판사는 “사법부에 대한 일반 국민의 불신은 일면 옳고 일면 그르다. 대부분의 판사들은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직업의 고결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경력 10년 이하 판사의 절반 가량은 집이 없을 정도로 어려운 생활을 한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씻기 위해서도 재산 공개는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사법부 고위 법관의 재산이 공개되고, 나아가 그동안 상식과 배치되는 괴이한 판결을 내렸던 판사들이 어떤 식으로든 책임지기를 바라는 것은 젊은 판사들뿐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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