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혁명, 얻은 것과 잃은 것
  • 박권상 (편집고문) ()
  • 승인 2006.05.1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산 공개는 고위 공직자의 부패 풍토에 경종을 올렸지만 불공정한 여론 재산이 잇따라 법치주의의 퇴보를 가져왔다.??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 공개를 가리켜 ‘무협 혁명??이라 하고 ??명예 혁명??이라고도 한다. 무혈 혁명?명예 혁명은 1688년 영국에서 일어난 것. 제임스 2세가 왕권을 강화하자, 네덜란드의 영주였던 그의 사위 오렌지공이 영국에 상륙해 ??영국의 자유와 신교의 자유를 수호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발발한 혁명이었다.

  오렌지공이 이끄는 군대가 런던에 진격하자, 절대권력을 꿈꾸던 제임스 2세는 저항 없이 망명길에 올랐고, 의회는 오렌지공과 그의 아내(제임스 2세의 딸 매리)를 공동군주로 맞았다. 이 과정에서 왕권은 대폭 제한되고 의회의 힘이 왕권을 능가하게 되었다.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의회민주주의의 기초를 닦은 것이다.

  후세 사람은 이 무혈 혁명을 ‘명예로운 혁명??이라고 부르고 서유럽 민주주의의 기원으로 규정한다. 그것은 피비린내 나는 프랑스 대혁명(1789)과 날카롭게 대조된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정치체제가 바뀌고 시민의식이 바뀌고 가치관이 달라지는 등 체제의 대변혁을 뜻한다.

 국민이 성원한 재산공개, 또 하나의 무혈 혁명

  지난 한달 공직자의 재산 공개 파동을 가리켜 ‘명예 혁명??이라고 말한다. 후세 사람들이 그렇게 평가할는지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성급하다. 그러나 이 나라 정치에 큰 변화인 것은 틀림없고 많은 사람이 박수를 치고 있다. 다만 체제의 대변혁을 의도하고 시작한 것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이것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체제를 훼손한다든가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지 않은가. 다만 30년 간의 군사독재가 구축한 부패 구조를 바로잡자는 것이라고 새기고 싶다.

  이번 파동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얻었고 많은 것을 배웠다. 그것은 이 나라를 주름잡고 있는 고위 공직자와 국회의원 가운데 상상 이상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이 많다는 것과, 상당수가 권력을 남용해 치부한 것이 뻔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대다수 국민이 이번 조처에 박수갈채를 보냈으나 이 과정에서 일부가 ‘여론 재판??으로 정치 생명을 잃은 것도 사실이다.

  이 정치 파동은 긴 눈으로 볼 때, 큰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이다. 적어도 도덕적으로 떳떳지 못한 자가 함부로 공직에 나서는 것과 염치불구하고 엽관운동에 나서는 탐관오리의 정치문화에 강력한 제동이 걸릴 것이 분명하다. 장관직을 가리켜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 얼마나 좋은 자리라는 것을??이라고 말하는, 그런 썩을 대로 썩은 시각은 없어질 것이다.

  이제 이 땅에서도 장관이나 국회의원 자리가 자기 희생과 공공 봉사를 상징하는 자리라는 인식이 태어날 수 있다. 그것은 확실히 ‘변화와 개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졸부들이 겁 없이 뛰어든다든가, 아니면 정치에서 돈을 벌겠다는 부패 심리, 특히 돈도 벌고 권력도 누리고 명예까지 즐기자는 탐욕이 쇠퇴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의식의 ??명예 혁명??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인민 재판식 단죄, 법치주의에 정면 배치

  그러나 잃은 것도 있다. 작용이 있으면 부작용이 있고 기능이 있으면 역기능이 뒤따른다. 불가피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부작용?역기능이 오히려 작용?기능을 압도하는 일이 있다면 명예 혁명은 결코 명예롭지 못하게 된다.

  이 파동의 제일 큰 부작용과 역기능은 법치주의의 빛이 바랬다는 것이다. 전체 정치나 군사 통치를 단호히 거부한 것은 법에 의하지 아니하고 권력자의 자의로 결정하는 것을 규탄한 것이다.

  법은 국민 의사의 표현이다. 국민의 대표가 만들고,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제정되어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되어야 하고, 누구도 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법치주의의 원리다. 반대로 아무리 미운 사람, 아무리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라도 역시 적법 절차를 밟아 처벌되어야 한다. 혁명이란 바로 이런 법 절차를 생략하는 것이다. 옥과 돌을 같이 태워버리는 ‘인민 재판??식 단죄는 법치주의와는 정면으로 대치되는 개념이다.

  법치주의는 물론 누구나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이번 공직자의 재산 공개를 법과 제도에 완전한 장치를 갖춘 후 신중하게 실시했던들 불필요한 잡음이나 여론 재판이나 사회적 긴장을 크게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법 앞에 평등??인데, 여론 재판의 화살이 국민이 선출한 입법부에 집중되어 사실상 국회의 정통성은 박살이 났다. 앞으로 국회가 ??균형과 견제??의 힘으로 국정을 감시할 권능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해괴한 것은, 사법부와 군부는 왜 재산 공개에서 ??성역??으로 남겨두느냐라는 당연한 의구심이 일어난다. 여기에 대한 명쾌한 답변이 없다.

  법치주의의 위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럴수록 공직자의 재산 공개 역시 시일을 두고 법과 제도를 만들어 공정하게 집행했어야 한다는 회한이 뒤따른다. 잃은 것도 많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