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실세 최형우·김덕룡의 역할과 인맥
  • 김재일 정치부 차장 ()
  • 승인 2006.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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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일 오전 민자당 당무회의. 상정된 당헌 개정안을 놓고 몇몇 당무위원 간에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개정안에 따르면, 중앙위원회와 상무위원회를 합친 중앙상무위원회는 명실상부한 전당대회 수임 기구인데 하급 기구인 운영위원회가 중앙상무위원회로부터 위임을 받지 않고 바로 전당대회 수임 기구가 될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문제를 제기한 이치호·신상우 의원, 남재희 당무위원과 당헌 개정 작업에 참여한 백남치 권해옥 강재섭 의원 간에 공방전이 벌어졌다. 한참 듣고 있던 최형우 사무총장은 “당헌 당규에 대해 법률적으로 심의할 수도 있겠지만 정당은 정치집단이므로 정치적으로 다룰 수도 있는 것이다. 전당대회에서 다룰 안건을 운영위원회에 위임하는 결의만 있으면 된다”라고 말했다. 최총장의 한마디는 이문제에 대한 논쟁을 잠재웠다. 김종필 대표는 곧 원안 통과를 선포했다. 이 날의 당무회의 장면은 최총장의 당내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영삼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그는 실세 총장으로서의 위치를 굳히고 있다.

 또 한사람의 실세 김덕룡 정무1장관 역시 전임자들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정무장관실은 행정부와 국회, 그리고 여당인 민자당과 다른 정당과의 협조업무를 담당한다. 그전의 정무장관실은 단순한 업무 연락 창구였으나 지금의 정무장관실은 권한과 위상이 훨씬 강화됐다.

 사람에 따라 영향력이 뚜렷하게 차이가 나는 것이 정무장관실의 속성이라면 김장관의 정무장관실은 막강할 수밖에 없다. 안기부의 ‘내정불관여’ 방침으로 국내 정치 부문을 떠맡았을 뿐 아니라 청와대 정무수석실의 고유 업무였던 재야 부문까지 넘겨받았다. 무엇보다 김장관은 김영삼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프로그램에 가장 깊숙이 관여한다. 재산 공개 소용돌이에서 진퇴 문제를 놓고 머뭇거리던 김재순 전 국회의장은 그를 만난 뒤 기자회견을 통해 의원직 사퇴를 발표했다. 영향력과 관련해 김장관은 노태우 정부 때의 박철언 정무장관과 비교되기도 한다.

 ‘개혁 정국의 총잡이’ 최형우 총장과 김덕룡 장관. 최총장이 ‘김영삼 개혁’ 프로그램을 집행한다면 김장관은 이를 설계한다. 당무회의 때면 최총장이 한자리 건너 앉은 김장관을 수시로 불러 서로 귀엣말을 나누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이렇듯 두 사람은 김영삼 정부의 개혁 작업에 한치의 오차도 나지 않도록 긴밀하게 협조하면서 정국을 주도한다. 저항이 거셌던 민자당 감축과 의원·당무위원 재산공개를 시원스럽게 해치운 최총장은 김대통령과 수시로 독대하며 김종필 대표를 제치고 청와대와 직거래한다. 김장관 역시 대개의 경우 박관용 청와대 비서실장을 거치지 않고 전화로 김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한다. 김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우형우’를 통해 당의 개혁과 더불어 권력 기반을 공고히하고 ‘좌덕룡’을 통해 당과 정부의 개혁 작업을 조율하도록 하고 있다.

 

1년 뒤엔 권력투쟁 가능성

 대통령 취임 전까지만 해도 이들 두 사람이 이 정도로까지 떠오를 줄은 김대통령 말고는 아무도 몰랐다. 그들 자신도 한가닥 불안한 마음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기득권 세력에 업혀 집권에 성공했다는 시각이 우세한 판국에 김대통령이 민주계를 챙겨 줄 것인지 의구심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 뒤 개혁풍은 예상 외로 거셌고 무게 중심은 이들에게로 쏠렸다. 이들의 위상은 곧 개혁풍의 강도와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두 사람의 과거 정치활동은 ‘YS 대통령 만들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들은 유신과 5공의 철권통치 아래서 몇차례씩 구속되는 등 모진 고초를 겪으면서 ‘주군’을 도와 민주화 투쟁에 몸을 던졌다. 3당 합당 후에는 김영삼씨를 집권당 대통령후보로 만들기 위해 ‘피가 마르는’ 세월을 보냈다. 대선 때 최총장은 ‘민주산악회’와 ‘나라사랑실천운동본부’ 등 사조직을 총괄했고, 김장관은 전반적인 선거전략을 주도했다. 이렇듯 두 사람의 지난날은 김영삼씨를 대통령으로 만디는 일에 바쳐졌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김영삼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한 몸이 됐던 두 사람은 다른 점도 많다. 우선 정치인으로서의 출발이 다르다. 최총장은 59년 민주당 경남도당 울산지구당 당원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김영삼 의원에 대한 열렬한 동경은 그와 김영삼씨를 자연스럽게 묶었다. 김장관의 경우 김영삼씨가 70년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후보 경선에 패배한 뒤 그의 비서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래서 김장관은 김대통령의 ‘가신’으로 불린다. 반면 최총장은 독자적으로 정치를 시작했으므로 자기를 가신 범주에 넣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최총장이 지난 30여년간 야전 사령관으로서 5선의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면, 김장관은 제13대 국회의원에 출마할 때까지 김영삼씨의 비서실장을 맡아 그의 밀사역을 담당해 왔다. 두 사람 역할은 행동대장과 기획 총괄로 분담됐던 것이다. 두 사람은 성격 면에서도 대비된다. 최총장이 솔직담백한 성격에 저돌적이라면 김장관은 신중하고 과묵하다.

 숙원이 달성된 지금 이들의 공동 목표는 두말할 나위 없이 ‘김영삼 개혁’을 완성하는 것이다. 앞으로 최총장은 민자당 내에 계파를 없애고 개혁 동참 세력을 확대할 뿐 아니라, 법과 제도 개정을 통한 실질적인 정치 개혁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김장관은 과거 갈등과 대결 일변도였던 여야 관계를 협력 관계로 정립하고 재야·시민운동 단체까지 포용해 참여와 창조적인 정치문화를 구현하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김, 자기 사람 심기...최, 민주계 싸안기

 이들의 협력 관계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공동 목표를 추구하는 중에도 두 사람의 미묘한 경쟁심이 감지되곤 한다. 따라서 그들의 협력은 개혁 기반이 다져질 때까지 한시적일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어차피 1년 뒤에는 개혁의 성패 여부가 드러날 터이고, 그 무렵부터 두 사람의 경쟁이 표면화되리라는 관측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그들은 잠재적 라이벌이라고 볼 수 있다. 민주계내 서열은 최총장이 단연 위다. 민주산악회를 보더라도 최총장이 회장, 김장관이 부회장이었다. 두 사람 사이의 경쟁은 김대통령 취임후 각분야에 ‘자기 사람’ 심기를 통해 이미 시작됐다고도 볼 수 있다. 특히 김장관은 자기 사람심기에 적극적이어서 청와대와 행정부에 상당한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반면 최총장은 인사 문제에는 될 수 있는 대로 개입하지 않으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최총장측은 김장관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별로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고 있다. 대신 최총장은 민주계의 맏형으로서 “YS계가 내 계파”라는 생각으로 민주계를 통째로 싸 안으려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 같다.

 두 사람은 여태까지의 이미지를 벗어 버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최총장은 ‘투사’의 이미지를 털어버리고 중후한 중진으로 비치기를 바란다. 김장관은 김대통령 측근이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대통령과 함께 사진 찍히는 것까지 피할 정도다. 최근에 와서야 자기 이름을 되찾았다는 김장관은 이제 본격적인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대통령 이후를 노리는 것이 아니냐 하는 시각에 대해 최총장과 김장관은 겉으로는 이를 강력하게 부인한다. 최총장이 보스 기질과 자생력 면에서 유리하다면 김장관은 ‘YS 노선’에 더 충실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김장관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잘라 말하지만 차기를 향한 의지가 감지된다. 김장관이 청와대 비서실장직을 고사한 이유를 차기와 연관지어 해석하는 사람이 많다. 반면 최총장은 좀체 의중을 드러내지 않는다. 최총장은 자신을 차기와 연관지어 바라보는 시각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차기를 겨냥해 행동하면 될 일도 안된다”면서 주의를 환기시킨다. 최총장은 특히 김장관에게 “도와줄 테니 본인이 알아서 잘하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한다. 그러나 최총장측은 최근 김장관의 빠른 행보에 대해 신경을 쓰는 눈치다. 서열을 지켜 위 아래 좌우를 봐가면서 보폭을 조정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차기는 전적으로 김대통령의 뜻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최총장은 김대통령이 내심 자기를 낙점해 주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경쟁은 아직 때가 이르다. 이들이 함께 탄 배가 순항한다는 보장이 없다. 두 사람도 이 사실을 잘 안다. 이들의 입지가 더욱 강화될 것인지, 아니면 쇠락할 것인지는 좀더 두고봐야 한다. 이들에게 급선무는 예전처럼 ‘주군’을 도와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일이다. 최총장과 김장관의 정치적 장래는 개혁의 성패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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