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퐁텐느 칼럼
  • 앙드레 퐁텐느(〈르 몽드〉 고문) ()
  • 승인 2006.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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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위기와 국민투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옮겨가는 일은 쉬운 일이다.” 보리스 옐친의 옛 정적 바팀 바카틴이 한 말이다. “모든 것을 국유화한 뒤 공동 소유라고 선언하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그렇게 해서 이룩한 사회주의를 자본주의 체제로 바꾸는 일은 매우 복잡하다. 마치 오믈렛에서 달걀을 도로 끄집어내는 격이다.”

 오늘날 러시아의 현실은 대단히 복잡하다. 얼마전 모스크바에서는 의회가 단 몇분 가격으로 국각 수반 옐친과 의회 의장이며 옐친의 최대 경쟁자인 루슬란 하스불라토프를 차례로 축출하고자 한 희귀한 일이 있었다. 이 두사람이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출석의원이 정족수에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헌법기구는 ‘뒤죽박죽’, 개혁노선은 ‘이전투구’

 경쟁 관계인 이 두 인물이 보이고 있는 차이점은 명백하다. 옐친이 가능한 한 신속하게 완전한 시장 경제를 이룩하고자 하는 반면, 하스불라토프는 완만한 통제 경제를 내세운다. 옐친의 옹호자들은, 하스불라토프의 배후에 있는 일단의 군수산업 세력이야말로 기득권을 포기하려 들지 않는 스탈린 시대의 거대한 ‘기업 집단’이라고 응수한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은 지나치게 도식적이다. 옐친의 정적들이 모두 공산주의에 대해 향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들 중 일부가 점점 도를 더해가는 옐친의 권위주의.무분별.음주벽 혹은 권력 행사 방식을 두려워할 따름이다. 또 다른 부류의 반대자들인 국수주의자들은 러시아가 미국의 입김에 길들어가기를 거부한다. 행정부 내의 움직임도 단순하지만은 않다. 예컨대 옐친이 물러날 경우 그 자리를 이어받을 공화국 부통령 알렉산더 루츠코이는 적극적인 중공업 육성주의자이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체제라면 헌법에 이같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조항이 명시되어 있다. 물론 러시아도 헌법을 갖추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헌법은 공산당이 권좌에 있을 때 제정한 것이다. 러시아는 91년에는 프랑스의 체제를 본따 헌법재판소를 설치했으나 이 또한 헌법 자체를 여반장으로 바꿀 수 있어 유명무실하다. 헌법재판소 우두머리 발레리 조르킨을 위시하여 재판소 위원 12명이 힘을 합쳐 옐친과 인민대표대회 양자의 지나친 대응에 제동을 걸고 중재에 나섬으로써 사태를 진정시킬 가능성이 남아 있을 따름이다.

 공산체제 아래서도 상충하는 ‘두 노선’이 충돌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그때마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완전히 제거함으로써 사태를 종결짓곤 하였다. 옐친이 고르바초프를 몰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나, 비록 헌법재판소가 무효 결정을 내렸어도 독단적으로 자신에 대한 신임 여부를 국민투표(4월25일)에 회부하는 법령을 발표하는 따위가 그러하다. 인민대표대회도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옐친을 상대로 극한 조처를 취한 바 있다.

 사실 이 인민대표대회라는 존재자체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보통선거를 전염병 보듯이 싫어하던 고르바초프 치하에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그 구성원으로 말하자면 이제는 사멸한 옛 공산당이 지명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러한 기구가 계속 존립하는가. 그 까닭은 옐친을 대통령으로 추대하고, 그의 요청대로 헌법을 개정함으로써 옐친을 대통령직에 오르게 한 기구가 바로 이 인민대표대회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정황에서라면 당연히 군의입장에 주목할 만하다. 이들이 정권욕에 끌리지 말라는 보장이 과연 있겠는가. 공산체제가 무너지면서 군대 또한 커다란 상처를 입었으며, 91년 8월 불발 쿠데타 때에는 군이 군중을 향해 쉽사리 총구를 겨누지 못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 곳곳에 번져가는 민족주의 움직임에 대해 군이 수수방관으로 일관하겠는가.

 

설익은 민주제도의 위험성

 오늘날 러시아의 상황은 마치 지난 쿠데타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거리에는 불만을 품은 데모 군중이 즐비하며, 옐친은 ‘어림잡아’ 러시아 인구의 절반을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오늘날의 러시아 국민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점이다. 최고회의는 결국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이제 모든 것은 국민의 손으로 넘어갔으며 멀지않아 국민이 옐친에 대한 신임 여부는 물론 그의 경제.사회 정책평가, 나아가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실시해야 하는지를 결정할 것이다.

 일견 이보다 더 민주적인 절차가 있을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이만한 재량권을 유권자에게 맡기는 사례는 스위스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엄청난 인플레와 무정부주의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현재 상황을 생각한다면, 국민투표로 말미암아, 서방국들의 지지를 얻어 러시아를 수렁으로부터 구해내려고 하는 자들의 지도력은 다시 한번 약화될지 모른다고 우려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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