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하는 자동차가 좋다
  • 김방희 기자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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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감 강조'광고전' 돌입 … "체면보다 성능 중시" 30대 소비층 구매성향 반영



  요즘 자동차 광고를 유심히 살펴보면 놀랄 정도로 서로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같이 자동차가 강렬한 엔진소리를 내며 질주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속도감을 강조하기 위해 때로는 하늘에서 '응원군'이 등장하기도 한다. 현대자동차 엘란트라광고에 나오는 힘 좋은 헬리콥터가 그 예다. 대우자동차는 아예 미국 파라마운트사가 제작한 영화탑건〉의 F16전투기를 등장시켰다. 기아자동차는 지난해 9월 세피아를 출시하면서 '도시 속의 바람' 이라는 문구를 내걸고 신선한 차형을 강조하는 광고를내보냈지만, 요즘은 다른 회사처럼 차가 달리는 광고로 바꿨다.

  막연하게 외관이나 품격을 강조하던 과거와는 달리 성능을 강조하는 쪽으로 광고가 변화한데 대해 금강기획 광고 1본부 이영희국장은 "서있는 자동차에서 달리는 자동차를광고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설명한다. 광고라는 면에서만 보면 자동차가 이제야 본연의 모습을 찾게 된 셈이다.

 

내수 시장 잡으려면 30대 고객 공략하라

  성능을 중심으로 한 자동차 광고전은 2년 전 현대자동차가 엘란트라를 내놓으면서 불붙기 시작했다. 속도 제한이 없는 독일의 아우토반을 세계적인 스포츠카 포쉐와 경쟁하 며 질주하는 엘란트라를 담은 광고는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이 광고는 자동차 의 성능을 강조하기 위해 효과음에도 신경을 썼다. 영상을 보지 않고 소리만 들어도 어떤 차를 광고하는 것인지 알 수 있도록 질주하는 차량의 소음을 집어넣은 것이다. 

  당시 이 광고 제작에 참여했던 이영희국장은 "경쟁사들이 효과음을 비롯한 이 광고 의'비법'을 알아차린지는 얼마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작년말부터 거의 모든 광고가 질주하는 자동차와 강한 효과음을 쓰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자동차 광고의 변화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잘 읽은 것으로 평가된다. 기아경제연구소의 권해도 경영분석실장은 "성능을 강조하는 광고는 소형차의 주 소비자층인30대가 '파워'를 동경한다는 점에 착안한 것 같다"고 분석한다. 30대는 자동차를 타고마음껏 달리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다. 대우자동차 광고에서, 르망을 타고 달리고 난 톱모델이 "강한 르망, 짜랫했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30대들에 잠재된 욕망을 자극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30대 초반의 소비자는 지프를 제외한 소형 승용차(준중형 포함)를 생산하는 자동차 3사에게 대단히 중요한 고객집단으로 떠올랐다. '까다로운'30대 고객을 공략하는 데 누가 성공하느냐에 따라 내수 시장의 판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들의 구매 동향을 살펴보면 까다롭다는 말이 실감난다. 몇 년간 자동차 소비자의 구매 동향을 조사해온 박귀선교수(광주대·경영학)는 "소형 승용차소비자들은 자동차를 살 때 체면이나 위신보다는 자동차의 성능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한다. 얼마전까지만 해도가장 중요한 구매 기준이 체면이나 위신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큰 변화이다. 이 고객집단은 각 차종 별로 4~5개의 속성을 꼼꼼히 비교해 보고 자기가살 제품을 결정한다.    

  박교수의 최근 논문〈우리나라 소형승용차에 대한 소비자의선호도와 구매의도〉에 따르면, 이들은 안전성 엔진성능 등 제품의 성능과 관련한 속성을 중요한 구매 기준으로 파악하고 있다(도표참조). 이들은 차를 이미 사용해본 사람들로부터 들은 조언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동차 회사 "이제 성능에는 자신 있다"

  성능을 강조하는 자동차 광고는 소비자들의 구매 동향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동차 회사들이 성능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우자동차 광고를 대행하는 제일기획의 한 관계자는 "이제는 각 자동차 회사가 성능을 광고할 만하다고 느끼고있다"고 말한다. 80년대 중반 이후 승용차가 널리 보급되는데도자기네가 만든 자동차의 성능에 대해 자신할 수 없었던 자동차회사들이 이제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국내 소비자들은 도로 사정 때문에 자동차를 타고 힘차게 달리고 싶은 욕망을 좀처럼 풀 기회가 없다. 그러나 잠재된 욕망은 자동차의 품질과 광고 내용을 바뀌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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