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단'붉은 자본가'
  • 한종호 기자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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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부주석 룽이렌 … '놀라운 수완' 지닌 개방파 기업인


중국의 개혁개방 노선에는 변함이 없다. 나의 존재가 그 증거다. "3월27일 중국 제8기 전국인민대표대회(이하 전인대) 제1차 전체회의에서국가 부주석으로 선출된 롱이렌(榮毅仁)씨는 천안문 사태 이후 서방측 경제인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전인대가 열리면서 각국 언론은 롱씨를 부주석으로 내정한 배경을 찾는 데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가 이른바 붉은 자본가(紅色資本家) 즉 비공산당원이자 경제인 출신이기 때문이다. 국가부주석 자리에 강화하여 정치 민주화를 확대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다"라고 말했다.

  1916년 강소성 무석시의 부유한 실업가 집안에서 태어난 롱씨는 기남 대학과 상해 성요한 대학에서 수학한 사학도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 사업에 뛰어들었던 그는 49년 공산정권 수립 후 공산당의 전선조직 '민주제당파'가운데 민족자본가 조직인 '민주건국회'에 참여했다. 57년에는 당시 부총리인 陳毅의 추천으로 상해시 부시장에 선출됐고 59년부터는 방직공업성  차관도 겸했다. 경제학을 따로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건국 초기 경제 건설에 참여하면서 기업가로서의 소양을 닦은 것이다.

  그는 출신 성분과 경력 때문에 66년 문혁 때 실각했다가 72년 복권됐다. 79년에는 등소평의 요청으로 해외자본 유치를 겨냥한 국책 기업인 국제신탁투자공사(CITIC)를 설립했는데, 이때부터 놀라운 수완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국제신탁투자공사는 중국의 국제금융 창구로서 일본 자본 시장에서 1백억엔에 달하는 채권을 발행하여 자금난에 허덕이는 중국 기업의 고민을 해결해주었다. 그는 또11개국 20여개 해외 기업에 투자하는 등 국제신탁투자공사의 사세를 크게 확장해 중국 최대의 기업그룹으로 성장시켰다. 이 회사의 등록자본금은 79년 2억元(약 3백억원)에서 93년 30억元(약 4조5천억원)으로 늘어났고 자산총액은 3백억元을 넘는다고 한다. 롱씨의 장남 榮智健씨도 국제신탁투자공사 상무로서 홍콩지사장을 맡고 있다.

  북경에서 가장 먼저 부동산업에 진출한 사람도 롱씨이다. 그는 북경 중심가에 '사자루'라는 빌딩을 지어 외국 기업에 임대해주고 있다.  롱씨가 중용된 배경에는 그가 확고한 개혁개방론자라는 점이 작용한 것 같다. 그는92년 3월 제7기 전인대 제5차 회의에서 실사구시를 강조하며 "중국식 사회주의 건설과 개혁개방의 가속화를 유연한 태도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인대가 열리기 며칠 전에도 그는 "사회주의시장경제 체제는 중국의 현실에 부합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해외에 거주하는 화교 및 각국 경제인들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등소평의 두터운 신뢰와 국제적 지명도가 그를 중국의 새 얼굴로 떠오르게 만든 힘이다"라고 보도했다. 또 홍콩에서 발행되는 중국계 신문〈문회보〉는 그가 성공한 기업가인 동시에 걸출한 정치가라고 평가했다. 그는 54년부터 내리 8기에 걸쳐 상해시 대표로 전인대에 참가한 '8선 의원'이기도 하다.

  비록 부주석이라는 자리가 별다른 실권이 없는 직책이긴 하지만 그간의 행적과 지향점을 볼 때 롱씨는 시장경제화를 서두르고 있는 중국의 새 얼굴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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