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루트 가스관' 사업 남북 관계가 좌우 한다
  • 싱가포르 · 남유철 기자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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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통과 속히 합의 못하면 일본에 '뺏길' 가능성 높아



 

21세기 동북아 경제권의 핏줄'로 불리는 "야쿠트 가스관' 사업이 한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이 러시아와 합의한 '야쿠트 구상'은 러시아 연방 사하공화국(옛야쿠트공화국)의 야쿠트 가스전을 개발해 한반도를 거쳐 일본까지 수송한다는 계획이다.그러나 이 구상에 마지막 변수로 남아 있는 북한이 이에 조속히 합의하지 않을 경우 사업 주도권이 일본으로 넘어갈 전망이다.

  최근 싱가포르에서 열린 러시아 자원개발을 위한 국제회의에 참가한 사하공화국 예고르 예고로프 부총리는, 남한이 가스관의 북한 통과에 대한 합의를 북한으로부터 끌어내지 못하면 "일본 회사들과 손잡고 다른 경로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시사저널》과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밝혔다(62쪽 참조). 예고로프 부총리는 동시에 "사업의 진척 속도가 기대보다 느리다"며 지연되고 있는 예비 타당성 조사가 "최소한 연말까지는 끝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 3월 사하공화국의수도 야쿠츠크에서 열릴 예정이던 공동 회의는 열리지 않았다.

 

5월초 야쿠츠크 회담에서 본격 논의

  예고로프 부총리는 북한으로부터 합의를 얻어내는 것은 전적으로 한국측의 책임이라며 계획된 구상에 차질이 생길 경우 조사권을 다른 나라의 컨소시엄(공동 기업단)에 줄 계획이 라고 밝혔다. 그러나 싱가포르 국제회의에 참가한(주)대우 金聖鎭 부 회장은 "진전 속도가 느리다고 보는 것은 지방 정부의 입장일 뿐이다. 러시아 정국이 혼미한데 서두를 수만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부회장은 5 월 초에 야쿠츠크에서 한국 · 러시아 사하 공동 회담이 열린다고 밝혀, 곧 사업 진전과 관련해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것임을 시사했다. 가스관 사업의 마지막 '미지수'이며 결정적인 '변수'로 남아 있는 북한 문제에 대해 김부회장은 "남북 관계는 금방 또 바뀐다"며 일단 낙관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작년 7월1일 대우 김우중 회장과 보리스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한반도를 통과하는 가스관 건설에 전격 합의했다'는 소식이 한국신문 1면 머리기사로 보도되면서 '야쿠트 가스관'은 일반인의 관심을 끌었다. 한 · 러 합의 이후 잊혀져 가는 이 사업에 대해 전문가들은 21세기 동북아 경제판도를 좌우할 '대역사'의 하나로 본다. 야쿠트 가스전은 현재 확인된 매장량만도 9천억㎥가 넘는 세계 최대 가스전의 하나로 손꼽힌다. 환경에 대한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선진국형 청정 연료인 천연가스의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이다. 전문가들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너지소비 증가율을 보이는 동북아 경제권에 야루트 가스가 21세기에 '생명수'와 같은 에너지 보급원이 될 것으로 본다.

  야쿠트 가스관 건설 사업은 추정 매장량이3조5천억㎥에 이르는 가스를 육상 관으로 끌어와 한반도와 일본으로 연결한다는 구상이다. 가스관의 길이는 야쿠츠크에서 블라디보스토크와 원산을 거쳐 서울에 이르는 데만도5천㎞에 달한다. 총 투자비는 2백억 달러가 넘을 전망이다. 예비 타당성 조사가 끝난 뒤 필요하면 2년간 정밀 타당성 조사를 실시하게 된다. 이 조사에는 8천만달러가 들어간다. 한국 컨소시엄은 현재 정부를 대표하는 석유개발공사와 가스공사를 비롯해 대우 유공 고려합섬 럭키금성 삼성 쌍용 포항제철한보까지 11개 기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옛 소련 시절부터 야쿠트 가스전 개발에 관심을 보였던 현대는 '독자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겠다'며 대우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한국 기업들이 러시아 자원 개발에 별 다른관심을 보이지 않던 지난 90년 6월에 현대는 옛 야쿠트공화국과 의향서를 체결하는 단계에가 있었다. 소련 연방이 무너지기 전인 91년에는 소련 정부가 야쿠트 가스관의 북한통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과 협의를 진행했다. 당시 소련은 현대에 참여해 달라고 공식으로 요청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소련이 무너지고 정주영 현대 회장이 국내 정치에 뛰어들면서 상황은 반전했다. 지난 92년 7월1일 대우 김우중 회장이 현대를 따돌리고 새로운 주체인 옐친 러시아 대통령과 전격적으로 합의서를 체결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현대가 옛 소련 정부나 옛 야쿠트공화국과 체결한 합의서나 의향서는 소련 연방이 해체되면서 결과적으로 휴지 조각이 됐다. 대우가 이끄는 한국 컨소시엄도 아직 그런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기는 힘들다. 미국의 대러시아 투자 전문 법률회사 쿠데르 브라더스소속 더글라스 에이던 변호사는 "외국인 투자법이 체계화되어 있지 않고, 러시아 정국이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러시아와 체결한 어떠한 합의도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연방 정부와 지방정부 두 채널과 동시에 대화를 지속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만약 사하공화국이 러시아 연방을 탈퇴하면 다른 기업에 개발 조사권이 넘어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관측통들은, 사실상 완전한 독립 국가나 다름없는 사하공화국은 러시아 정국이 자기네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경우 연방 탈퇴를 단행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본다(〈시사저널〉제181호참조).

 

일부 전문가 "야루트 구상은 환상"

  전문가 중에는 '야쿠트 구상'을 하나의 환상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엄청난 재원이 들어가는 사업인 데 비해 관계국들의 천연가스수요 전망은 아직 불투명하다. 천연가스의 가격이 투자비를 뽑을 수 있는 수준으로 21세기 초까지 유지될 것이냐 하는 의문도 남아 있다. 모스크바의 한 자문 회사가 작성한보고서는 "야쿠트 가스전으로부터 보급될 가스를 한국과 일본이 다 소비할 수는 없다. 중국이 참여하든지 아니면 사업의 기본 내용을 재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보고서는 고르바초프가 '보스토크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추진했던 이 구상이 "관계국들 간의 이해 마찰과 수출 가능성 희박으로 성공하기 힘들 것이다"라고 결론 내리고 있다.  그러나 가스관 건설의 향방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열쇠는 일본이 쥐고 있다 (〈시사저널〉제143호참조).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의 소비 증가를 가정해도 경제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대만과 호주까지 포함된 시장이 필요하다. 이런 여건에서 한반도를 통과하는 야쿠트가스를 만약 일본이 거부하면 한국측 구상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동북아시아의 에너지 개발은 물론, 그 보급권까지 장악하려는 일본은 야쿠트 가스전 개발의 주도권을 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그런데 북방섬 반환 문제로 러시아와 일본의 외교 관계가 불편해지자, 옐친 대통령이 갑자기 한국으로 방향을 돌린 것이다.

  일본協邦通商 가야노 마사부미 모스크바 지사장은"사하공화국에서 가스를 파이프라인으로 북한과 남한을 경유해 일본까지 수송하는 것은 우선 경제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싱가포르 국제회의에서 만난 마사부미 지사장은 "야쿠트 가스관이 한반도를 통과하는것은 경제보다 정치적인 계산이다. 파이프라인 건설은 돈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이다. 일본은 사할린의 가스를 배로 옮기는 구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기업들이 작성한 야쿠트 가스관 경로는 사할린에서 일본으로 수송하거나 중국을 거쳐 배로 옮기는 것이다(60쪽 지도 참조), 한국을 거치는 경우에도 일본은 정치적으로 '미지수'에 '변수'까지 더해 있는 북한을 제외하고 있다. 가스 수요가극히 적은 북한을 끌어들일 경제적 동기가 없다는 생각이다.

  대우 김부회장은 "일본은 한국이 차지한 주도권을 빼앗기 위해 갖은 방해 공작을 다한다"고 주장한다. 막대한 사업에 들어갈 자금과 기술을 고려할 때 결국은 일본과 미국등이 참여해야 하겠지만, 한국의 지분을 최대한 보장받기 위해서는 타당성 조사권을 따낸 한국이 기득권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옐친이 한국을 끌어들인 것은 일본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확보해 보겠다는 나름대로의'정치적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석유 전문지 《페트롤리엄 인텔리전스 위클리》의 알트로너 싱가포르 지국장은 "옐친의 '한국 카드'활용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말했다. 최근 일본은 러시아에 18억달러에 달하는 재정 지원을 약속했다. 일본 정부는 그중 11억달러를 일본 기업의 자원 개발과 묶었기 때문에 일본 기업의 입김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사하공화국 예고로프부총리는 《시사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부인했지만, 싱가포르 석유 시장의 소식통들에 따르면 일본 가스 업계 대표단이곧 사하를 방문해 '일본의 역할'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극심한 에너지 부족에 시달리는 북한에게도 야쿠트 가스관 통과는 매력이 없지 않다. 북한은 영토 통과를 허용하는 대가로 상당량의 가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그러나 국제적 이해 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는 야쿠트가스관에 대해 남북한이 쉽게 합의를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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