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IMEMO마르티노프소장
  • 싱가포르·남유철 기자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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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핵폭탄 당장 제조 가능"



 

미국에 브루킹스 연구소가 있다면 러시아에는 '세계경제및 국제관계 연구소(IMEMO)'가 있다. 이 연구소는 러시아가 자랑하는 두뇌 집단으로 옛 소련 시절부터 국가의 핵심적인 정책을 입안해 왔다. 지난 89년과 90년 두 차례에 걸쳐 김영삼 현 대통령의 옛 소련 방문을 추진했던 기관도 이 연구소였다. 당시 고르바초프의 측근이었던 블라들렌 마르리노프(64) 연구소장은 한·소 수교 수립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러시아의 핵심 인사로 알려져 있다. 국제회의 연설차 싱가포르를 방문한 마르리노프소장을 지난 4월15일 마리나 만다린 호털에서 만나 한·소 수교에 얽힌 얘기와 현 러시아 정국에 대한 견해를 들어 보았다.

 

오늘이 북한 김일성 주석의 81회 생일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그렇습니까? 전혀 몰랐습니다. 과거 저와 저희 연구소가 한국과 소련과의 외교 관계 성립에 실질적인 주역을 맡았기 때문에, 저는 두 차례에 걸쳐 북한 정부로부터 저의 '나쁜 행위'에 대해 항의하는 서한을 받았습니다.

 

북한을 방문한다면 환영받지 못하겠군요?

갈 생각도 없고, 가려고 애쓰지도 않습니다. 저의 경력에서 가장중요한 부분이 한국과 옛 소련 간의 국교수립이었습니다. 당시 한국과의 외교 관계 수립을 위해 고르바초프 주변의 진보적 동료들과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북한보다는 한국과의 관계를 증진해야한다고 동료들과 함께 고르바초프를 설득했지요.

 

한국에서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외교 관계를 맺기 위해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거액의 현금을 주었타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제 생각으로 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북한은 소련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당시 한국과 소련 전문가들은 북한이 소련에 지고 있는 채무액만큼 한국이 소련에 차관을 제공하는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그러나 두 정상 간에 현금을 주고받는 일은 당시 상황에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한국측이 설사 돈을 주려 했다 하더라도 당시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여건을 생각한다면 그는 그런 돈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어느 쪽이 외교 관계 성립에 더욱 열성을 보였습니까?

양쪽 다 관심이 있었습니다만, 솔직히 말하면 한국 쪽이 더욱 일관되게 접근해 왔습니다. 고르바초프 자신은 물론이고 특히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은 한국과의 외교 관계 성립을 상당히 주저했습니다. 그들은 북한과의 관계 때문에 6~7개월이나 고민했습니다. 당시 소련 권력층 내에서도 한국과의 외교 관계 수립은 너무성급한게 아니냐는 의견이 강했습니다.

 

한국과의 외교 관계 수립이 논의되고 있을 때 북한측으로부터 어떤반응이 었었습니까?

당시 북한은 외교 채널을 통해 많은 항의 서한을 보내왔습니다.그들은 한국과의 외교 관계 정상화 노력을 극렬히 비난하면서 국교 수립을 중단시키려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정상희담은 부시 대통령이 주선한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아닙니다. 샌프란시코에서 두 정상이 만나자는 것은 한국측이 제안한 것입니다.

 

외교 관계 성립을 위한 실질적인 대화는 어느 쪽에서 먼저 시작했습니까?

지난 89년 6월에 당시 민주당 총재자격으로 소련을 방문했던 김영삼 대통령이 국교수립을 위한 대화를 처음 제기했습니다. 김영삼 총재는 소련을 방문하기 전에 한국의 지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왔습니다. 당시 야당 총재로 방문했지만 그는 자신과 민주당의 생각은 물론 한국의 모든 정치 지도자들의 생각을 전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가 훌륭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영삼 당시 민주당 총재가 국교 수립을 위한 실질적인 정부 간의 대화를 제안했습니까?

그렇습니다. 물론 양국간의 관계 증진에는 각계 각충의 인사들이 관여했습니다. 그러나 국교 수립을 위한 양국 정부 최고위층 간의 진정한 대화는 김영삼 당시 민주당 총재가 처음으로 제기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과는 개인적으로도 잘 아시지요?

김영삼 대통령의 두 번에 걸친 모스크바 방문을 직접 수행했고, 일정도 제가 짰습니다. 저희 연구소와 당시 김영삼 총재가 이끌던 민주당과는 한·소 외교 성립의 필요성에 대한 합의서를 작성한 바 있습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가 상당한 정보를 갖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가 얻어낸 정보에 따르면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개발할 만한 충분한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핵폭탄을 제조하는데는 그다지 어려운 기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북한은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이미 확보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조사에 참여한 우리 연구소 연구원들은 이 분야의 핵심 전문가일 뿐만 아니라, 특히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정통한 사람들입니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다시 가입할 것으로 보십니까?

북한의 핵보유가 한국에게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러시아를 비롯한 모든 국가가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단계에서는 북한과 대화를 계속해 설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 정부는 물론 러시아·미국 등 모든 관련국이 북한을 설득하기 위해 대화를해야 합니다. 핵확산금지조약 체제에 남아 있는 것이 북한에게도 휠씬 낫다는 사실을 설득해야 합니다.

 

지금의 러시아 정국을 어떻게 보십니까?

러시아는 매우 심각한 정치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과 그가 추진하는 개혁 정책을 반대하는 세력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옐친에 대한 반대 세력을 정통성 있는 야당세력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어떤 정치적 신념과 철학으로 결집해 있다기보다 옐친이 추진하는 개혁에 대한 불만으로 규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들은 인민대표회의를 장악하고 있고, 그같은 정치 세력을 현실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반옐친 세력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반옐친 보수파 세력은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 놓여 있는 러시아에 매우 위험한 존재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 이들이 정치적 파국을 몰고 올지모릅니다. 물론 그들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일 점은 있습니다. 그들의 비판은 옐친 정부가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인 정책적 실수에주로 집중됩니다. 특히 작년에 옐친 정부가 저지른 실수는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수파 세력들은 선동적인 구호로 민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러시아 국민들은 누구를 지지한다고 보십니까?

러시아의 경제 상황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대 다수 국민은 공산주의 체제에서 지금보다 더 나은 생활을 누렀습니다. 당연히 개혁 과정에 불만이 없을 수 없습니다. 보수파 세력은 이런 불만을 등에 업고 옐친을 몰아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그러나 절대 다수의 러시아 국민들은 공산주의 체제로 복귀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생각합니다. 러시아 국민들은 공산주의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옐친을 지지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옐친을 지지하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대안이 없다고 보는게 정확합니다. 불행히도 러시아 국민에게는 지금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옐친을개인적으로 좋아하고 말고가 없습니다.

현재 상황에서는 옐친의 자본주의화 개혁을 지지할 수 밖에 없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제 개인적인 견해에 국한된다기보다는 대다수 러시아국민의 생각이 그렇다고 보아야 합니다.

 

옐친 대통령과는 정치적 관계가 어떻습니까?

우리 연구소는 과거 정부의 정책 결정에 깊이 관여해 온 정치적인 조직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소장으로 있는 지금은 독립적인 연구기관이 되고자 노력합니다. 우리는 정부에 많은 정책 보고서를 제출하는데 그것들은 대부분 객관적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우리의판단에 따라 때로는 정부 정책을 지지하기도 하고 혹독하게 비판하기도 합니다. 작년의 경우 우리는 연초에 옐친의 경제정책을 지지했지만, 4월에 들어서는 그의 정책을 맹렬히 비판했습니다. 그 시기에 우리는 정부가 그 동안 추진해왔던 경제정책을 대폭수정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문제었습니까?

정부는 국영기업과 일반국민에 대한 거의 모든 보조와 지원을 중단하려고 했습니다. 급격한개혁이 추진되고 있었지만 관료체제와 조직은 개혁을 효과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바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정부조직과 사회체제는 옛날 그대로 둔 채 개혁만 앞세운 것입니다. 새총리가 들어서고 나서야 조직을 새로 정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는 지난 92년 1월2일 거의 모든 제품에 대한 가격 통제를 포기해 버렸습니다. 이른바 '충격 요법'이라고 불리는 옐친의 급진적인 개혁이 실패했다고 보십니까?

거의 모든 사람이 당시 충격 요법을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의 경제 상황을 생각해야 합니다. 경제는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충격요법 말고는 다른 선택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가격 통제를 포기한그 다음의 정책이었습니다.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 위해 정부는 적절한 재정과 금융 정책을 재빨리 동원해야 했습니다. 정부 정책은 신속하게 단계별로 적용해야 했고, 철저히 현실적인 차원에서 진행해야 했습니다.

 

국민투표 결과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십니까?

국민투표는 러시아의 개혁에 매우 중요한 변수입니다. 그러나 국민투표에서 옐친이 승리한 후에도 옐친과 보수파의 대립은 계속될 것입니다. 인민대표회의 대의원 선거가 진행되고 새로운 인민대표회의가 구성된 이후에라야 새로운 정국이 조성될 것입니다. 러시아 국민들은 대부분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선출된 지금의 대의원들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러시아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펴야 한다고 보십니까?

경제 안정에 모든 힘을 쏟아야 합니다. 우리 연구소는 정부 정책의 많은 분야에서 긴밀한 조언과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연구소의 많은 연구원들이 정부 정책 집행자로 곧잘 자리를 옮깁니다. 군대와 기간 산업 시설을 새로 재편하는 데는 많은 돈이 듭니다. 독립국가연합의 다른 공화국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돈이 듭니다. 이러한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규모의 재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경제는 지난 3년간 계속 위축되고 있고, 재정 적자는 늘어만 갑니다.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정부의 재정적인 여유는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재정적자를 줄이고 경제성장을 추구해야만 합니다.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이같은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주어져있는 여력을 생산성이 높은 분야에 집중해야 합니다. 무진장 묻혀 있는 석유와가스를 개발하는 것이 좋은 예입니다. 경화를 벌어들일 천연 자원 개발은 지금 러시아에게 가장 절실한 사업입니다.

 

선진 7개국이 약속한 지원액은 만족스런 수준입니까?

어느 정도의 액수가 만족스런 수준인지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러시아는 외국 원조보다는 스스로 가지고 있는 재원을 활용해야 합니다.러시아는 그럴 만한 자원이 있습니다. 석유와 가스가 그 가장 좋은 예입니다. 옐친은 정치적 불안 때문에 지금까지 제대로 경제개혁을 추진하지 못했습니다. 외국의 원조는 경제개혁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데 의미가있습니다. 재정 지원도 중요하지만 러시아의 국영기업들이 서방의 기업들처럼 살아남을 수 있는 경영 기술을 전수해주는 '자본주의교육'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혁 이후 계속되고 있는 혹독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국민들은 자본주의 체제가 된다면 더 나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타고 믿습니까?

러시아 국민들은 절대 공산주의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러시아 국민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체제는 스웨덴이나 독일처럼 적절한 사회보장 제도가 병존하는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소장께서는 이제 자본주의자입니까?

저는 공산당 중앙위원 시절에도 자본주의 체제의 장점을 강조해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회민주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순수한 의미에서의 자본주의 신봉자는 물론 아닙니다. 저는 시장에만 모든 것을 맡기는 방임적 자본주의를 믿지 않습니다. 물론 그런 형태의 자본주의 체제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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