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위엄 살려야 한다
  • 박권상(편집고문)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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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자유없이 자유로운 민주사회는 성립할 수 없지만 자유를 바로 행사하지 않으면 무질서에 빠질 뿐이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하버드 브러커라는 사람이 30년 전에 한 말이 있다. “우리는 두개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 하나는 5대양 6대주 20억 인구가 살아 움직이는 실제의 세계이고, 다른 하나의 세계는 언론 매체가 그 세계를 옮겨 준 관념의 세계다.”

 그런데 우리가 적응하는 세계는 ‘실제의 세계’가 아니라 ‘실제의 세계를 언론 매체가 묘사한 세계’다. 지구상에서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 대부분 사람들한테, 그리고 세계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에 관해서 뉴스 매체가 전달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브러커의 표현을 빌리면 “어느 한 사람의 머리에 도달한 사실은 실제로 그것인 사실로 존재하든 않든 그에게 사실로 존재하는 것이고 그의 머리에 도달하지 않는 사실은 그에게 존재치 않는다”는 것이다.

 

원자탄에 비유되는 언론의 파괴력

 언론 매체의 위력이랄까 마술이랄까, 때로 원자탄으로까지 비유되는 언론 매체의 무서운 파괴력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의 원천은 언론이 누리는 ‘선택’에 있다. 매체가 선택하는 순간 그것은 뉴스가 되고, 선택한 뉴스를 어떻게 다루느냐, 말을 달리해서 대소와 경중과 농담 등을 어떻게 제시하느냐에 뉴스의 뉘앙스가 달라진다. 극단의 경우, 없는 것으로 생략할 수도 있다.

 언론은 나타난 일이나 사건에 대해 선악시비의 가치 판단까지 내리는 힘이 있다. 매체의 호의적인 관심이나 적극적 지지를 받는 인물이나 정책은 당연히 독자들한테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밖에 없다. 반대의 경우, 마찬가지로 악영향을 준다.

 따라서 언론에는 정말 실제의 세계를 정직하게 충실히 전달하는 책임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다원적 견해를 독자에 소개할 의무가 잇다. 제임스 레스턴이 지적한 대로 독자들이 바른 판단을 할 자료가 되는 필요한 사실을 차분하게 포괄적으로 제시할 도덕적인 의무가 잇다. 바로 ‘진실’의 문제다.

 ‘진실’은 단편적이고 부분적이고 일방적인 ‘사실’과 다르다. 그것은 첫째로, 정확하여야 한다. 확인된 사실이어야 한다. 둘째로, 객관적이어야 한다. 일방적인 시각이나 입장에서 본 사실어서는 곤란하다. 셋째로는 공정한 태도여야 한다. 심지어는 미운 사람과 고운사람을 동렬로 놓고 뉴스를 다루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할 적에 뉴스의 선택, 뉴스의 구성과 전달처럼 어렵고 때로는 무서운 작업은 없다.

 이 대업을 성취하려면 무엇보다도 언론에 자유가 있어야 한다. 자유나 독립 없이 권력이나 돈에 굴복하여 허위·왜곡·과장·생략 등이 다반사라면 사회는 혼란과 무질서에 빠질 것이며, 시민의 합리적 판단에 입각한 자치 정부는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언론의 자유 없이 자유로운 민주사회는 성립할 수 없고 자유가 바로 행사될 때만 그것이 가능한 것이다.

 

양적 팽창 앞서 질적 향상 이뤄야

 6·29 선언 이후 6년간 언론의 자유에 괄목할 신장이 있었다. 그런, 그런 자유가 반드시 바르게 행사되어 민주주의적 시민 생활에 공헌했느냐 하는 것은 언론계 스스로 심사숙고하고 대오반성할 일이다. 신문의 폭력에 격분하는 사람이 차츰 늘어나고 있다. 확인도 하지 않은채 일방적 투서나 주장을 토대로 기사를 씀으로써 피해자의 명예에 치명상을 입히는 수가 있다는 것이 일반화된 인식이다. 특히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 수많은 사람을 인민재판식으로 처단했다.

 더구나 요즘 ‘사이비 언론’ 문제가 큰 사회 문제로 제기되고 대통령과 공보처 책임자 입에서 경고성 발언이 나오고 있다. 정부 명령으로 일부 사이비 신문의 발간이 중단되었고 등록 취소 소송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원론적으로 논할 때 언론기관의 생명을 끊거나 기능을 중지시킨다는 것은 ‘사전 억제’에 속하므로 자유 언론의 원칙에 위배된다. 그러므로 당연히 법을 어긴 범법자를 다스리는 수법으로 ‘사이비’를 단속하는 것이 자유 사회의 일반 원칙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원칙에 어긋나는 방법을 써서라도 사이비 언론에 대한 단속을 필요로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것도 도외시할 수 없다.

 그러나 정부의 독단적 판단으로 정간·폐간 따위 조처를 취하는 것이 용인될 때 사이비를 단속한다는 명분이 언론 탄압의 길로 발전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경우 그 원인의 상당 부분을 언론계 스스로가 제공한 것이 된다.

 지금은 언론계 스스로 대담하게 개혁의 길을 택하여야 할 단계에 왔다. 진실의 뉴스, 다원적 견해의 수용 등으로 ‘자유롭고 공개된 시장’을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

 면수를 늘이는 양적인 팽창에 못지않게 질적인 향상을 기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정부는 언론이 법을 어기는 행동에 대해서는 다른 시민에 대한 것과 동등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 그것이 언론을 정화하고 정상화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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