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독립유공자 재심사
  • 오민수 기자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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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점 낱낱이 파악 ‘개혁’나서/《시사저널》 ‘포상 기준’ 최초 공개

 김영삼의 개혁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현재 분위기로서는 문민 정부의 개혁 방향은 광복 이후 지금까지 어느 정권도 풀지 못한 ‘역사의 숙제’를 해결하는 쪽으로까지 나아갈 듯하다. 이미 정부와 민자당이 백범 암살 사건ㆍ거창 양민 학살 사건ㆍ광주 문제 등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재평가하는 작업에 착수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리고 역시 광복 이후 뒤틀린 한국 현대사가 고스란히 투영된 독립유공자 선정에 따른 문제점을 청와대가 낱낱이 파악한 것으로 알려져, 이 분야도 개혁 대상이 될 조짐이다.

 

해결해야 할 4대 과제

 아직 수사 단계로까지 진척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독립유공자 선정과 관련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보고서가 청와대 고위 간부에게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시사저널》이 취재한 정보를 종합해보면 청와대 보고서 내용은 꽤 광범위하다.

 첫째, 이미 포상받은 독립유공자 중에서 친일파 또는 가짜 독립유공자를 솎아내고 상식 밖의 판정을 받은 독립유공자의 등급을 재조정하는 일이다. 즉 과거를 청산하는 작업인 것이다. 이는 과거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회에 친일파가 끼여 있어서 빚어진 결과이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보훈처가 아직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는 그동안의 심사 기초 자료를 모두 들추어내 문제가 되는 인물에 대해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닐뿐더러 하루 아침에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현재 광복군 분야로 포상을 받은 사람이 실제 광복군에서 활동했던 전체 인원의 두배에 달한다는 지적이 진작부터 제기되어 왔지만, 아직 국내 자료 어디에도 이를 확인할 길이 없다. 그동안 보훈처를 상대로 독립유공자 포상에 대해 줄기차게 이의를 제기해온 이인송시는 “현재 대만 국방부에 있는 광복군 관련 중요 자료 내용을 일부 입수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은 광복군까지 다 합쳐봐야 기껏 3백39명인데, 지금까지 정부가 광복군 관련으로 포상한 숫자는 3백39명을 훨씬 넘어선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 자료를 입수해 독립유공자 포상의 오점을 씻어내고야 말겠다”고 말한다. 기왕 청와대가 나서서 손을 댄다면 중국ㆍ일본ㆍ대만 등지에 흩어져 있는 자료를 모두 수집해야 하는 번거로운 작업인 것이다.

 둘째, 보훈처의 독립유공자 포상 업무에 관한 문제점을 바로잡는 일이다. 독립유공자 심사 과정에서 그 대상자와 주무부처 관계 공무원 사이에 금품이 오갔다는 소문이 포상 첫해인 62년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나도는 실정이다. 이는 과연 보훈처가 민족 정기를 선양하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데 최선을 다했는가 하는 청와대의 문제 인식에서 출발한다. 보훈처 업무가 민족 정기를 관리하는 것인 만큼 문제가 발견되면 반드시 고쳐야 할 일인데, 보고서에는 독립유공자 공적심사 위원들의 ‘자격’문제도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독립유공자 사회에서는 연금 지급과 관련한 편법운영 사례도 지적되고 있다. 예를 들면 독립유공자의 후손이 없을 경우, 후처 소생에게 연금이 지급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셋째, 광복회 위상을 재정립하는 일이다. 청와대는 그동안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원로단체이어야 할 광복회가 보훈처에 휘둘려 제구실을 못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사실 보훈처에 대한 광복회 회원들의 불만은 대단하다. 아울러 보고서에는 광복회 회원(독립유공자)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넷째, 앞으로 보훈처가 좌익 계열 독립운동가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발굴과 포상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미 세계적으로 냉전 이데올로기가 퇴조했으며, 다가오는 통일 한국을 대비하기 위해서도 좌익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학계로부터 제기되어 왔다. 최근 몽양 여운형에 대한 복권 얘기가 정가에서 흘러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특히 몽양은 남북 모두에서 존경받는 인물인데다, 좌우합작을 시도한 건국준비위원회를 이끌었기 때문에 최근 한반도 정세에도 맞아 떨어진다. 만약 정부가 좌익 계열에 대한 포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면 이는 그야말로 한국 근ㆍ현대사를 다시 쓰는 엄청난 일이다.

 올해 3월1일까지 대한민국 정부가 6천2백8명에게 서훈 및 표창을 한 독립유공자 포상제도는, 그러나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창피해서 독립유공자 배지를 달고 다니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로 엉망으로 운영되어온 게 사실이다. 공적을 날조해 포상을 받은 가짜 독립유공자, 광복 뒤 사회적 지위 때문에 실제 공적보다 높게 평가받은 독립유공자에 심지어 일부 친일파까지 독립유공자에 포함돼, 그동안 보훈처의 독립유공자 선정과 관련한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더구나 82년 이전에는 독립유공자를 가려내는 보훈처 공적심사위원회에 친일 행적이 뚜렷한 몇몇 인사가 끼여 있어서, 독립유공자 포상제도가 정작 후손인 당사자들로부터 냉대를 받아온 터였다(《시사저널》제174호 ‘친일파가 애국자 심사’ 참조).

 

“재산 공개 차원 넘는 진정한 개혁”

 역대 정권 아래에서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기보다는 ‘정치적 판단’이 더 중요하게 작용했던 독립유공자 선정 문제를 바로잡는 일은 독립유공자 후손 사회에서 재산공개 차원을 넘는 ‘진정한 개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독립유공자의 업적을 바르게 기리는 일이야말로 허물어진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는 ‘제2의 건국’이기 때문이다. 한편 반공 이데올로기 때문에 명백한 항일운동 행이 있는데도 독립유공자 포상에서 제외됐던 좌익 계열 독립운동가도 오는 광복절부터는 포상 대상에 포함될 전망이다.

 “청와대에서 나왔다는 사람이 이것저것 물어갑디다. 새 정부가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요로에 탄원서를 제출한 마당이라 다 얘기해줬지요. 진짜 개혁의 대상이죠. 새 정부가 어느 정도까지 손을 댈지 두고볼 작정입니다.” 이름 밝히기를 꺼리는 독립유공자 후손 정모씨의 얘기다. 그는 요즘 독립유공자 선정과 관련한 문제와 매국노 재산환수저지를 위해 팔방으로 뛰어다닌다. 반민특위실패로 ‘잘못 끼워진 단추’를 고쳐 끼우는 데는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훈처, 잘못 바로잡기 노력 미흡

 그전에도 정부에서 가짜 독립유공자를 찾아낸 적이 있기는 하다. 80년 당시 비상통치기구였던 국보위는 독립유공자 중에 가짜가 많이 있다는 진정서를 접수하고, 대상자 1백여명을 조사해 가짜 유공자 40여명을 밝혀냈다. 일단 서훈 공적이 허위임이 판명되면 상훈법 제8조 ‘치탈’ 조항에 따라 서훈을 취소하고 훈장과 이에 관련하여 수여한 물건과 금전을 치탈(박탈)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훈장 수여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서 자칫 전직 대통령의 명예에 누가 될까 봐 당신 국보위는 그냥 덮어두었다. 워낙 서슬퍼런 시절이라 아무도 나서서 비판하지는 않았지만, 이 일은 80년대 내내 독립유공자 사회에서 얘깃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독립유공자 선정과 관련해 현재 청와대가 파악하고 있는 ‘문제 인식’ 수준은 국보위 시절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가짜 유공자 몇십명을 치탈하는 차원이 아니라, 말 그대로 개혁의 연장선상에서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고 왜곡 된 역사를 바로잡는 ‘역사 민주화’ 작업인 셈이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독립유공자 선정과 보훈처 업무에 대해 개혁의지를 보이자, 주무 부처인 보훈처가 바짝 긴장하는 눈치이다. 보훈처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쪽에서 이미 어느 정도 정보를 갖고 사실 여부를 확인해온 적이 있다. 그 정보라는 게 모두 맞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수긍할 만한 내용이었다. 그동안 친일파가 독립유공자로 선정되거나 가짜 독립유공자가 적발된 사례도 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잘못된 걸 고치는 건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직접 나선다면 보훈처로서야 독립유공자를 재심사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얘기다. 그러나 보훈처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고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보훈처가 가짜 독립유공자를 밝혀내고 서훈을 취소한 사례는 단 두 건에 불과하다. 지난 91년 보훈처는 부산에 사는 黃永錫씨가 무려 28년 동안 남의 공적을 가로채 포상과 연금을 받아온 사실을 밝혀내고 ‘진짜 주인’인 黃永成씨의 아들 황부일씨에게 되돌려 준 적이 있다. 그런데 83년 원호처가 펴낸 《독립유공자 포상자 명단》을 보면 黃永錫이라는 이름 뒤에 등록사항란과 출신지란이 비어 있다. 그러니까 28년 동안 이름 끝자를 고쳐서 엉뚱한 사람에게 포상을 준 장본인은 바로 보훈당국이었던 셈이다. 관계 공무원에게 혐의가 가는 대목이다. 그리고 보훈처는 올해 82년 대통령표창을 받은 尹在賢씨와 90년 건국훈장을 받은 尹在賢씨 중에 전자의 공적이 허위임을 밝혀내고 서훈을 취소했다. 공훈록을 보면 이들은 모두 고아복군 2지대원으로서 OSS(한미합작훈련) 정보파괴반에서 활동한 것으로 되어 있다.

 보훈처에서 아직 치탈하거나 등급을 조정하지 않은 ‘문제 독립유공자’중에는 유명 인사도 숱하다. 가장 대표적으로 꼽히는 인물이 광복 이후 외무부장관과 반공연맹 이사장, 유엔 대사를 역임한 고 林炳稷씨이다. 임씨는 사망 후인 76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을 받았는데, 이는 그의 광복 뒤 사회적 지위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임씨의 항일운동 행적이라면 1913년 미국으로 건너가 줄곧 이승만의 비서로 활동했다는 점뿐이다. 임씨가 영도급 지도자도 아닐뿐더러 매국노를 제거했다거나 거사를 도모한 흔적은 전혀 없다. 독립유공자들 사이에서는 “임병직씨 정도의 공적으로 1등급을 받는다면 서훈을 상향조정해야 할 인사가 수두룩할 것”이라는 말이 있다.

 《시사저널》이 처음 입수한 ‘독립유공자포상 심사 기준’에 따르면 임씨의 항일 행적이 해당하는 분야는 ‘독립운동 지도자’ 항목이다. 그런데 이 항복의 등급별 심사기준을 보면 그는 2등급 또는 3등급을 받았어야 마땅하다. 또한 그가 미국 오하이오 대학 재학중 《한국학생평론》편집장을 맡아 언론을 통한 항일운동을 한 공적을 최대한 높게 평가하더라도, 언론운동은 1등급에 해당 사항이 없다. 더구나 임씨의 상관이 이승만이 1등급이면 부하였던 그는 그 아래 등급이어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임씨는 그래도 공적보다 높은 등급을 받은 사례로 꼽히지만, 친일행적이 명백하게 드러났는데도 버젓이 독립유공자로 남아 있는 유명 인사도 많다. 이들은 대부분 광복 이후 우리 사회에서 왕성한 사회활동을 한 인사들이다.

 

이갑성 윤치영 이은상, 유공자로 둔갑

 우선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77년에 그 자신이 건국포장(현 3등급)을 받은 李殷相의 예를 들 수 있다. 이은상은 조선어학회에서 활동한 경력으로 훈장을 받았지만, 나중에 일본의 허수아비였던 만주 정부의 기관지〈滿鮮日報〉에 적을 둔 적이 있다. 초대 광복회장을 역임했던 李甲成도 62년 대통령장(2등급)을 받았는데 63년 공적 심사위원으로 임명돼 독립유공자를 뽑았다. 그는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명이지만, 임정 사무국장 출신인 임의택씨의 증언에 따르면 상해에서 岩本(이와모토)이라는 창씨명으로 밀정 노릇을 했으며, 미쓰비시(三菱) 만주신경(新京) 출장소장과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촉탁으로 일했다고 한다. 이갑성 역시 선항일 후친일을 한 경우에 속한다. 2ㆍ8 독립선언 관계로 63년 대통령표창을 받은 徐 椿도 마찬가지로 선항일을 했으나 나중에 적극적인 친일파로 변신했다. 그는 총독부 기관지〈매일신보〉주필과 친일단체인 배영동지회 평의원,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을 지냈다.

 독립유공자들을 더욱 기막히게 하는 인물은 82년 건국포장을 받은 尹致暎이다. 한때 임시정부 구미의원을 지냈던 윤치영은 41년 《동양지광》이 주최한 ‘미영타도 좌담회’에 연사로 참석했고 〈매일신보〉시사논설에서 대 동아공영권 건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광복 뒤 이승만 정권 아래에서 초대 내무부장관ㆍ국회부의장을 지냈으며 박정희 정권 아래서는 공화당의장과 서울시장을 역임했다. 그런데 그가 현재 ‘안중근의사 숭모회’ 이사장을 맡고 있어 독립유공자 사회의 공분을 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밖에도 독립유공자 중에는 이미 친일행각이 명백하게 밝혀진 인사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역대 정권 아래에서는 고 임종국씨를 비롯한 몇몇 재야 사학자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이 문제를 거론하지 못했다. 청와대 보고서대로 시시비비가 분명하게 가려진다면 이는 ‘신한국 창조’의 역사적 전통을 새롭게 마련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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