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개혁 태풍’ 갈수록 거세진다
  • 김방희 기자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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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지원부서 인원 ‘영어ㆍ생산’ 분야 재배치

사업구조ㆍ조직ㆍ제도 개편 이어 ‘의식 개혁’ 추진

 한때 ‘기업 위의 기업’으로 불렸던 삼성그룹 회장비서실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요즘 전보다 훨씬 바빠졌다. 회장의 의사 결정을 보조하는 본연의 업무 외에 다른 일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이 일은 ‘현장을 보고 배우라’는 李建熙 삼성그룹 회장의 지침에 따라 생겨난 것이다.

 1백여명이나 되는 비서실 직원들은 3개조로 나뉘어 이틀씩 현장에서 생활해야 한다. 이들은 종이와 볼펜을 놓은 채 공장의 생산라인과 대리점을 찾아간다. 또 협력 업체를 방문해 경영진과 간담회를 열고 그들의 고충을 듣고 와야 한다. 이틀간 공장에서 육체 노동을 하고 돌아온 한 비서실 직원은 “생산라인에 차질이 생길까 봐 앓는 소리 한번 못내고 열심히 일했다”라고 털어놓았다.

 

‘수줍은 황제’ 탈피, 현장지도 나설 이건희

 그러나 회장비서실 직원들만 땀을 흘리는 것은 아니다. 이건희 회장도 곧 직접 지방 사업장을 방문할 예정이다. 87년 경영대권을 물려받은 이래 이회장이 지방 사업장을 직접 방문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동안 이회장은 대부분의 재벌 총수들이 참석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 같은 자리마저 불참할 정도로 공개적인 자리를 기피해왔다.

 ‘수줍은 황제’라고 불려왔던 이회장은 이를 계기로 공개석상에 자주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이회장은 5월12일 용인연수원에서 전국 5백여 중소기업 사장과 임원들에 대한 특별 강연에 이어, 15일에는 고려대 한국경영학회가 수여하는 ‘올해의 경영인상’을 받고 수상소감을 밝히게 된다.

 항상 뒷전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온 이회장이 적극적인 활동을 펴기 시작한 것은 지난 2월부터였다. 이회장은 2월18~21일 나흘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센츄리플라자호텔에서 그룹내 전자 관련 사장단과 임원23명을 불러 자사 제품의 품질 평가회를 가졌다. 이곳의 전자제품 매장에서 삼성 제품이 얼마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가를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이어 3월2~3일 이틀 동안 경영진 46명을 이끌고 일본 도쿄에 가서 일본 기업들을 방문하고, 전자제품 시장을 둘러보았다. 경영진이 일본의 기업과 시장을 직접 보고 자극을 받으라는 뜻에서였다.

 

위기의식 강조한 ‘LAㆍ도쿄 회의’

 이른바 ‘LA회의’와 ‘도쿄회의’는 삼성도 변하지 않으면 21세기에 이류 기업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경영진에게 심어주기 위한 것이다. 회장과 얼굴을 맞대고 10여시간 동안 마라톤 회의를 하고 돌아온 경영진은 다시 이 위기의식을 각 계열사에 전파하게 될 것이다. 최근 삼성그룹에 관한 책을 냈던 이경훈씨(30)는 “위기의식은 삼성맨의 의식과 행태를 바꾸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위기의식을 가지자는 삼성그룹의 구호가 멀지않아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 유행하게 될 것으로 본다.

 이건희 회장은 ‘제2 창업’(이건희 회장이 경영대권을 물려받은 일) 5주년을 맞아 이 위기의식을 교묘한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 3월22일(회장 취임일) 이회장은 “삼성그룹이 ‘준비와 수련’을 과제로 삼았던 제2창업 1기를 지나 ‘혁신과 창조’를 위한 2기가 시작됐음”을 선포했다. 이 말은 지난 2~3년 간은 사업 구조와 조직ㆍ인사 제도를 주로 개편해온 반면, 앞으로는 이를 뒷받침할 ‘의식 개혁’에 중점을 두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90년께부터 시작한 개혁의 속도를 조금도 늦추지 않겠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에서 잔뼈가 굵은 비서실의 裵宗烈 전무는 이 기간을 “오로지 ‘질’만을 생각해온 시기”라고 규정한다.

 최근 몇년간 삼성그룹에서 벌어진 일을 살펴보면 이 주장이 설득력있게 들릴 수도 있다. 우선 그룹의 사업구조를 ‘21세기형’으로 바꾼다는 목표를 세웠다. 수요가 크고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에 주력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

 

중공업 부문 투자 계속 확대

 이를 위해 제일제당의 비료사업이나 삼성코닝의 흑백브라운관용 유리밸브사업처럼 사양길에 들었거나 부실한 사업 부문을 정리했다. 반면에 유망한 분야나 취약한 중공업 부문에 대한 투자는 계속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좀처럼 드러내놓고 조직 개편 작업을 하지 않는 삼성그룹은 92년부터는 계열사별로 본격적인 조직과 기구 개편을 추진해 감량 경영과 새로운 인사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이다(도표 참조). 개편의 핵심은 관리 조직을 간소화하고, 지원부서 인원을 영업이나 생산부서로 재배치하는 것이다.

 삼성그룹에서 막 벌어지기 시작한 본격적인 개혁은 한국 대기업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던 경영합리화 운동이 어느 정도 성공했음을 역설적으로 반증해주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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