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유전개발에 사활 걸었다
  • 남유철 기자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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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기업과 탐사 협정…유조선 구입ㆍ공급계약 체결 등 수입에도 총력


 북한은 최근 새로운 석유 공급선을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유전을 개발하기 위해 서방 석유회사들과 활발히 접촉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북한은 군사 훈련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석유 위기’가 심각했다. 그러나 북한은 최근 인도네시아ㆍ이란과 새로운 석유공급 계약을 체결했으며, 이를 수송하기 위해 외화가 부족한데도 20만t급 유조선을 새로 사들였다고 북한의 움직임에 정통한 싱가포르 소식통들이 최근 《시사저널》에 밝혔다.

 

고위층 물량 확보 위해 잇단 해외방문

 북한은 지난 2월 스웨덴의 타우루스 사(Taurus Petroleum AB)와 본격적인 서해지역 유전 개발을 위한 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싱가포르의 석유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은 석유 발견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서해 지역 말고도 동해와 길주ㆍ명천 지구대의 유망 내륙지역 탐사를 위해 서방 석유 회사와 계속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중국과 러시아로부터의 석유 공급이 중단 또는 감소되면서 극심한 석유 부족에 시달려 왔다. 워런 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은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는 원유와 식량 공급을 차단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미 의회에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북한 최고위층과 거래선을 트고 잇는 싱가포르의 한 유력한 중개상은 북한 김달현 부총리가 최근 인도네시아를 방문했으며, 군참모장을 비롯한 군 수뇌부도 비슷한 시기에 이란을 방문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 최고위층의 나들이는 모두 원유 공급과 관련이 있다”고 싱가포르에서 가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또 다른 한 소식통은 “인도네시아로부터 연간 1백만t을 공급받기로 계약이 이루어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가 북한에 대한 새로운 원유 공급 국가로 등장했다고 주장하는 싱가포르의 석유 소식통은 많다. 그러나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관 공보관은 이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만 밝혔다.

 북한의 새로운 움직임에 대해 서울의 한 서방 외교관은 “북한은 석유만 있으면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 제재는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미 노선을 고수하고 있는 이란과 비동맹운동 주도국인 인도네시아가 앞으로 있을 수 잇는 유엔의 대북한 경제 제재에 적극 참가할지는 불투명하다.

 싱가포르의 한 석유 소식통은 “북한의 석유 사정이 어려워지자 북한에 석유를 팔려는 사업자가 몰려들고 있다. 북한은 대외적으로 공개된 원유 수입량보다 훨씬 많은 양을 조달해왔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란과 인도네시아에 원유 대금 대신 무기를 공급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 서방 외교 소식통은 “북한산 무기의 질이 좋지 않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이런 거래가 성사되기는 어렵다”고 내다보았다.

 북한은 지난 64년 소련의 지원 아래 처음으로 서해안 지역에서 기초적인 물리 탐사를 실시했으며, 그후 유전 개발에 집념을 보여왔다. 그러나 남한은 물론 국외에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북한의 유전 개발은 기술과 자금부족으로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수차례 시도 끝에 북한은 지난 89년 서해안 휴전선 북쪽 50km 떨어진 지역에서 하루 4백25 배럴 정도의 석유를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스웨덴 타우루스사, 서해 지역 조광권 획득

 서방 기업들은 경제성이 불투명하고 국제 사회로부터 고립된 북한에 진출하기를 주저해 왔다. 작년 초 호주의 BHP를 포함한 서방 6개 회사 대표와 함께 평양을 방문했던 프랑스 토탈사(Total Exploration) 아시아 지역 책임자 로버트 파일씨는 “북한에 투자하지 않기로 한 것은 경제성 있는 유전을 발견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례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를 허용한 파일씨는 “당시 북한의 법령이 엉성하다는 점도 문제로 제기됐지만 그것이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었다”고 싱가포르에서 가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러나 최근 북한에서 본격적인 유전 개발을 추진하기로 결정한 타우루스사 클라스 레게하임 사장은 낙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지난 2월말 북한으로부터 1만1천㎢의 서해 지역 조광권을 획득한 레게하임 사장은 “북한 서해 지역에서 석유를 발견한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주장했다. 북한과의 계약 체결 후 이와 같은 사실을 《시사저널》과의 국제전화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공개한 레게하임 사장은 “유전 탐사는 항상 그 성공 가능성을 놓고 서로 반대되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시추를 해보기 전에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유전 사업이다”라고 말했다.

 레게하임 사장은 “북한과 유전 개발에 대한 논의가 처음 시작된 작년 11월 이후 3개 월간 탄성파 탐사 자료를 여러 차례나 검토했다”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매우 낙관한다’는 것이다. 타우루사가 조광권을 획득한 지역은 석유 발견 가능성이 높아 북한도 몇차례 시추한 바 있다. 타우루스사는 북한이 제공하는 탄성파 탐사 자료를 런던에서 다시 분석할 예정이다. 탄성파 탐사 자료를 분석하는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었기 때문에 종전보다 정확하고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레게하임 사장은, 약2년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 자료 분석이 끝나면 본격적인 탐사 시추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에서 자원 개발 사업을 벌이고 잇는 스웨덴의 한 주요 기업 사장은 “지금은 북한에 진출할 가장 좋은 시기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에서 개발한 원유를 북한의 선봉과 같은 항구를 거쳐 해외로 수출할 계획을 북한 당국과 협의하고 있다. 북한의 유전 개발 사업에도 적극 투자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북한으로 들어가기 직전 싱가포르에서 기자와 만난 이 스웨덴 기업인은 “러시아가 시베리아 개발을 본격화할 경우 북한 항구를 이용해야만 한다. 서봉에 러시아산 원유를 임시로 저장할 시설을 곧 건설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자신과 회사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요구한 이 사업가는 항구 시설을 갖추면 자기가 러시아에서 개발한 원유를 일부 북한에게 공급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스웨덴은 북한과 합작으로 조선소를 건설하는 등 경제 교류를 활발히 하고 있다. 스웨덴 기업이 이렇게 북한 진출에 의욕을 보이고 잇는 것은 북한이 스웨덴에 지고 있는 막대한 채무를 돌려받기 위한 것이라는 게 주한 스웨덴 대사관의 설명이다. 울프 소르마르크 1등 서기관은 “북한은 현재 스웨덴에 1천 2백억원에 달하는 빚을 지고 있으며, 올해 3월말까지 이를 모두 갚겠다는 약속을 또 어겼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으로부터 빚을 받는 방식의 하나로 합작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스웨덴 정부가 이를 장려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전문가 “남한 대륙붕보다 발견 가능성 크다”

 스웨덴 기업들이 북한에 투자할 경우 북한은 스웨덴에 지고 있는 채무를 상환하는 형식으로 투자에 대한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타우루스사의 레게하임 사장은 자기의 투자가 이러한 채무 상환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경우라고 밝혔다. 지난 88년에 설립한 타우루스사는 주요 석유 회사의 유전 개발 기술자가 모여 만든 회사이다. 레게하임 사장은 “작은 회사이기 때문에 자금 동원력이 거대 기업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이 주저하는 쿠바나 북한과 같은 정치적인 위험성이 높은 지역을 선호한다”라고 말하며 “관심있는 남한 기업들이 공동 투자를 하기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세계적인 석유사업 자문회사인 GCA(Gaffney, Cline & Associates)의 싱가포르 지사장 제임스 로스 박사는 “북한의 유전 개발에 참여해온 석유 회사들은 모두 작은 회사이다. 유망한 지역에서 거대 회사와 경쟁할 수 없는 회사들은 모험적인 지역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에서 석유를 발견할 가능성에 대해 “한 나라의 석유 매장 가능성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은 매우 경솔하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되어도 석유 채굴이란 실제로 파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는 도박이다”라고 지적했다.

 유전 개발 전문간인 로스 박사는 “북한에 석유가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러나 자금 동원력이 있는 큰 석유 회사가 관심을 가질지는 두고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타우르스사도 개발이 본격화되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서방의 주요 석유 회사들이 북한에 꾸준히 관심을 갖는 까닭은, 석유 회사가 기본적으로 어떠한 기회도 놓치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석유 회사들이 신경쓰는 것은 계약기간이나 법령 혹은 세금관계이지 정치적 위험은 아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질 구조만 보아서 석유 발견 가능성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북한에서 대규모 유전을 발견하기는 어렵다고 보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이나, 외국 전문가들은 남한의 대륙붕보다 석유 발견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 동서센터의 주임 연구원 마크 발렌샤 박사는 “북한에서 경제성 있는 유전이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남한의 대륙붕에서 발견될 가능성보다는 훨씬 크다”고 말했다.

 북한의 유전 개발에 대해 국내에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극소수 전문가들마저도 지극히 제한된 이해에 그치는 수준이다. 폐쇄된 정보 때문에 북한의 기초적인 탐사 노력이 최근에는 ‘북한이 대규모 유전을 발견했다’는 소문으로 확산되기도 한다. 발렌샤 박사는 “북한이 석유부존 유망 지역을 갖고 있다는 것은 전문가들에게는 ‘뉴스’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일반 국민들에게는 아마도 ‘새로운 뉴스’일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64년 물리탐사 처음 실시

《시사저널》이 해외의 전문가들로부터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북한이 처음 서해안 지역에서 물리 탐사를 실시한 것은 지난 64년이다. 당시 북한은 소련 기술진의 도움으로 자력 탐사를 실시했다. 이란의 리워드사(LPP)와 호주의 메리디언사(Meridian Oil NL)가 87년 서해 2만2천6백㎢ 지역에 해당하는 조광권을 처음으로 획득했다. 이 두 회사는 80년대 초반 북한 당국과 함께 탄성파 탐사를 실시했던 노르웨이 GECO사의 자료를 지금까지 분석해왔다. 최초 4년 계약이었으나 호주 메리디언사 피터 우드 대변인은 “북한과 협의해 계약 기간이 연장되었다”고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밝혔다. 우드 대변인에 따르면 주운영사인 리워드사가 92%의 지분은, 나머지 8%를 메리디언사가 갖고 있다. 싱가포르 석유사업 자문 회사들이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리워드사와 메리디언사는 올해 안으로 석유 발견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에서 다시 탄성파 탐사를 실시하거나 바로 탐사 시추로 들어갈 계획이라고 한다. 리워드사는 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새로운 투자자를 찾고 있으며 남한의 일부 재벌 기업과도 접촉을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극동 지역의 해양 자원 개발을 위한 국제적 협력에 관심을 가져온 발렌샤 박사는, 남북한은 유전개발 분야에서 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지난해 12월31일자 《시사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남한의 기술과 자본으로 북한의 자원을 개발한다면 이는 더없이 좋은 남북 간의 상호 협력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발렌샤 박사의 희망대로, 에너지 분야가 통일을 위한 첫 협력 분야가 될지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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