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재벌 시대 무르익는다
  • 장영희 기자 ()
  • 승인 2006.05.1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한·장은·대신 금융그룹 부상… 신경제 계획에 ‘금융 전업 기업군’ 육성 방침

 영국의 유력한 금융·투자 전문지≪유러머니≫는 92년 ‘세계의 50대 최우수 은행’ 평가에서 신한은행을 26위로 선정했다.  신한은행은 같은 해 은행 감독원의 국내 은행 경영 평가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의 대표적 은행인 5개 시중 은행에 비해 덩지가 작은 신한은행이 국내외에서 평판을 받는 것은 경영의 질에서 한 수 위이기 때문이다. 82년 설립한 신한은행은 ‘파이팅 스피리트’란 정신으로 공격적 경영을 구사해 빠른 성장을 이룩해내면서 관계 회사 늘리기에 주력했다.  신한은행은 현재 7개 관계 회사를 거느린 한국의 대표적 금융재벌로 떠올랐다. 

 최근 재무부장관 자문 기구인 금융발전심의회 산하 금융제도개편연구소위원회는 금융제도 개편안에 ‘금융 전업 기업군(금융 재벌)’을 육성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개평연구소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이 같은 발상은 과거에도 있었던 것으로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경영을 잘하고 있는 신한·장은 그룹 등에 고무받아 제시하게 됐다고”고 밝혔다.

 개편연구소위원회는 금융 전업 기업군을 “동일인 또는 동일기관 경영지배 아래 있는 복수 기업으로서 영업 범위가 금융업에 한정돼 있는 기업집단”이라고 정의했다.  같은 주주가 다른 형태의 금융기관으로는 신한금융그룹 외에도 한국장기신용은행을 모기업으로 하는 장은금융그룹, 대신증권을 모기업으로 하는 대신금융그룹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모기업이 은행 증권 단자 생명보험 투자자문 리스사 카드사 등의 금융기관을 거느려 기업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장은금융그룹은 다른 그룹과는 달리 비교적 조용하게 금융 재벌로 부상했다.  모기업이 기업에 장기 설비·운전 자금을 공급하는 민간개발 금융기관이어서 그룹이 실체보다 덜 알려진 인상이 짙다.  80년 출범한 장기신용은행의 전신은 67년 국제금융공사(IFC)와 9개 외국 은행이 출자한 한국개발금융이다.  이 은행은 하나은행·한국투자증권 등 8개의 관계 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영업 형태는 다르지만 은행이 은행을 거느리고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대신금융그룹도 금융재벌이다.  이 그룹은 일찌감치 ‘종합 금융 그룹’을 표방했다.  대신 증권 金大松 상무는 “최상의 종합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금융에 관한 모든 업무를 취급하는 그룹이 되겠다”며 앞으로 여건이 갖추어지면 은행 리스에도 진출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이들에게 은행 만들기는 숙원사업이다.  금융의 핵인 은행이 없이는 종합 금융 서비스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이 재벌로 떠올라 득세하게 될 것”

 한 금융 전문가는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한국 기업 판도에 돌풍이 일 것이라고 점쳤다.  그가 말하는 돌풍은 많은‘금융 재벌’이 출현한다는 것이다.  그는 독일처럼 금융기관이 기업을 지배하는 이른바 금융자본주의 형태로까지 치달을지는 알 수 없지만 산업 재벌이 주무르던 재계 판도에 수개의 금융기관이 재벌로 떠올라 득세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고 내다보았다.

 이 같은 예측은 정부의 의중을 탐색해 보아도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금융기관의 소유 구조에 관한 정부의 확고한 입장은 산업 재벌이 금융을 지배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도 하나의 산업이므로 경영 효율화를 위해 주인(오너십)이 있어야 한다는 재계의 논리를 일축할 수 없다는 데 정부의 고민이 있다.  금융 전업 기업군은 상반된 두 논리를 충족시킬 절묘한 대안일 수 있으나 어떻게 이를 현실화할지가 고민거리다.  재무부 李桓구 제1차관보는 “뚜렷한 기준과 유도 방안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  신경제 5개년계획 금융 부문에 금융전업 기업군을 육성한다는 내용은 들어간다”라고 밝혔다.

 금융 재벌이 금융에 전업한 기업집단이라면 시중 은행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필요조건인 금융 전업은 분명 하지만 소유 구조라는 충분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해 배제되고 있다.  시중 은행은 은행법에 동일인 주식 소유(의결권이 있는 발행주식의 총수)가 8%를 넘지 못하게 돼 있지만 몇 개 산업 재벌들이 이 상한선에 근접한 지분을 갖고 있다.  

 신한은행과 장기신용은행은 소유 지분이 잘 분산돼 있다.  대신증권은 창업자(梁在奉회장)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15.24%(의결권이 있는 보통주 기준)나 되지만 금융 전업 자본가라는 점에서 시중 은행과는 다르다.  신한과 장은 두 그룹의 경우는 한 사람이 소유를 많이 해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지 않아 주인이 없는데도 경영을 잘하는 기업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주인이 있어야 경영을 잘한다는 산업 재벌의 주장은 반드시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신한과 장은 그룹의 관계자들은 지배 주주가 없었기 때문에 소유와 경영이 자연스럽게 분리될 수 있었지만 이 조건이 처음부터 아무 노력 없이 지속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 姜信重 상무는 “전문경영인이 경영을 잘못했으면 주주들이 개입했을 게 분명하다.  주주와 전문경영인이 서로를 만족시켜 주다 보니 이런 관행이 정착됐다”라고 말했다.  장기신용은행 吳世鍾 상무도 “이사회가 인사 등 경영권을 행사한다.  이사회에는 주주 대표와 각계 지도인사가 사회 이사(비상임 이사)로 참여해 경영에 대해 조언해 준다.  회장·행장 등 상임 이사회의 구성원들은 이들의 조언을 참조해 책임 경영을 한다”고 설명했다. 

 

단순한 영토 확장보다 기능 보완 힘써야

 자율경영 풍토는 소유 구조와 깊은 관련이 있지만 이것으로 설명이 충분하지는 않다.  두 그룹의 관계자들은 현재의 그룹을 일궈오는데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쳐온 회장의 존재에서 그 해답을 찾고 있다.  신한금융그룹의 李熙建 회장과 장은금융그룹의  성태용회장이 ‘외압’을 철저히 막아냈다는 것이다.  장은그룹의 경우 전신인 한국개발금융 설립에 깊숙이 참여한 세계은행 다이아몬드 박사가 당시 朴正熙대통령에게 “이 기관은 정부가 간섭하지 말고 자율적으로 맡겨둬야 잘 기능할 것”이라고 부탁해 처음부터 ‘정부 간섭 배제’라는 묵시적 합의를 끌어냈다.  그러나 그 후에도 함회장이 외풍을 차단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 장은 관계자는 주장한다.

 세 그룹은 기업집단인 것은 틀림없지만 산업 재벌에 비교하면 연결 고리가 헐겁다.  헐거운 정도도 차이가 있다.  장은그룹은 한 가족으로 뭉뚱거려 있다고만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느슨하고 신한그룹 경우는 좀더 연결고리가 탄탄하다.  하지만 대신그룹에 비해서는 느슨하다.  대신그룹은 오너 체제여서 산업 재벌의 기획조정실 같은 기구가 모기업인 증권에 있다.

 금융 전업 기업군은 금융에 전업한다면 산업 재벌에게도 같을 터주는 대안으로 보인다.  현재 유력하게 지목되고 있는 산업 재벌은 재계 21위의 동양그룹이다.  이 그룹은 시멘트·제과 등 제조업 부문(지난해말 추정 매출액 8천9백35억원)과 증권·단자 등 금융업(8천9백49억원)의 비중이 꼭 반반이다.  이 그룹은 고 李洋球 회장에서 현 玄在賢 회장 체제로 오면서 종합 금융그룹 형성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여러 형태의 금융기관을 갖고 있으면 금융 이용자에게 그 혜택을 줄 수 있다.  신한은행이 증권?단자?리스사 등을 연결한 ‘중소기업우대통장’이란 새 상품을 내놓은 것은 종합 서비스의 일환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금융 재벌의 가지치기는 단순히 영토 확장이 아니라 기능 보완 등 종합금융서비스가 제공되어야 의미가 있을 것이다.

 미국은 산업과 금융 간에 높은 차단벽을 치고 있으며 소유 분산이 매우 잘 돼 있다.  상호 진출은 지주회사 형태로만 가능하다.  개편연구 소위원회는 상호 소유·자회사·지주 회사 등 세가지 형태를 제시했다.  씨티은행 서울지점  河永求지점장은 “현재처럼 자회사 형태로 나갈 수 있지만 1,2금융권 간의 형평을 고려한다면 지주 회사 형태가 등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