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에 미친 ‘건강식품박사’
  • 부산·김방희 기자 ()
  • 승인 2006.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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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험 직접 체험, 상품화한 김영식씨 다음 목표는 “달팽이 화장품·비누”

 한가지 일에 미치면 못 이룰 일이 없다.  부산에서 ‘달팽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金英植씨(43)를 보면 이 말이 실감난다.  그는 식용 달팽이 하나에 인생을 걸었고, 그가 세운 천호무역상사와 천호식품은 이제 막 성공의 문턱에 들어선 것처럼 보인다.  식용 달팽이를 짜서 만든 발명품 ‘달팽이추출액(액기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86년 소규모 사업을 하던 김씨는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다.  6개월이나 깁스를 하고도 뼈가 원상 복귀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 후 온갖 민간요법을 다 써보았지만 헛일이었다.  그러다가 달팽이를 고아먹고는 씻을 듯이 나았다.  달팽이의 효험을 직접 체험하고 난 그는 아P 식용 달팽이에 종패(씨를 받으려고 기르는 달팽이)분양에 나섰다.  종패를 사다가 계약금을 받고 농가에 분양해주고, 3개월~6개월이 지난 후 이를 다시 사들여 필요한 업체에 파는 사업이었다. 

 식용 달팽이 종패는 ‘달팽이 요리’가 보급되던 84년께부터 국내에 반입되기 시작했다.  김씨가 분양 사업에 뛰어들 무렵에는 호텔 요리점 같은 곳에서 주문이 늘어나 분양 업자와 농가가 급격히 증가해 공급이 넘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식용 달팽이 분양 사업은 위기를 맞게 됐다.  대부분의 분양업자들이 도망치거나 사업에서 손을 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를 믿고 계약한 농민들의 신의를 저버릴 수가 없어 식용 달팽이를 그대로 사들였다.  판로가 막힌 식용 달팽이 가운데 일부는 버리고, 일부는 농가에 사료로 제공했다.  그는 “당시 잠을 잘 때 달팽이가 천장에서 떨어질 정도로 많은 달팽이를 되샀다‘고 회상한다.  그는 결국 달팽이를 ’버리기‘ 위해 집까지 저당잡혔다.

 남아도는 식용 달팽이를 소화하는 데 고심하던 92년초 그는 교수와 한의사들의 자문을 얻어 식용 달팽이 추출액을 상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아직도 고비는 남아 있었다.  효용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상품이 잘 팔리기 시작하자 너도나도 이 사업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보사부에서는 혐오 식품이란 이유로 사업 허가를 취소할 기세였다.  그는 국내외에서 식용 달팽이 요리가 얼마나 대중화 됐는가를 설득하여 간신히 사업 허가를 따냈다.  불행이 행운으로 뒤바뀐 순간이었다.

 

주문 못 댈 정도로 인기

현재 이 상품은 국내 백화점과 대리점을 통해 비싼 값으로 팔리고 있다.  일본에도 수출되는데 상품이 모자라 주문에 못 대고 있다.  이 회사가 상표명을 흉내낸 가짜 상품이 나돌 정도이다.  달팽이 추출액의 상품화와 판매를 담당하는 천호무역상사와 천호식품의 매출액에 대해 김씨는 “밝힐 수는 없지만 많은 편”이라고 말한다.

 달팽이의 효용은 아직 과학적으로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부산 경성대학의 임상실험 결과 식용 달팽이 추출액이 체내의 콜레스케롤치를 낮추는 데 효과적이라는 정도가 나와 있을 뿐이다.  강정식품으로 유명한 해산물에 많이 포함된 끈끈한 물질인 ‘콘드로이천황산’이 몸에 좋을 거라고 막연한 추측을 하고 있는 단계다.  김씨는 2년 전 발명 특허를 출원했으며, 현재 달팽이의 효용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여러 곳에 의뢰해 두고 있다.

 달팽이 하나로 큰 돈을 번 김씨는 이제 이 사업을 다각화하느냐 아니면 전문화하느냐는 갈림길에 섰다.  이에 대해 김씨가 내릴 결론은 단순하다.  달팽이 추출액을 포함한 화장품이나 비누를 생산하는 ‘달팽이 종합 메이커’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달팽이에 관한 것이라면 아무리 사소한 것까지도 줄줄 꿰는 그는 영원한 ‘달팽이 박사’로 남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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