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사정, ‘한파’ 뒤 ‘꽃샘추위’
  • 장영희 기자 ()
  • 승인 2006.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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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색 고려, 경고성으로 일단락... 개인비리. 정치풍향 따라 ‘여진’ 올 수도


 “또 누가?” 은행장 두명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옷을 벗은 뒤로 금융계는 ‘제3이 사나이’를 찾기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두사람이 사표를 낼 때 내세운 ‘일신상의 이유’를 당국의 서슬퍼런 사정 칼날이라고 추측하는 금융계는 다음은 어떤 은행장이 희생될지 두려운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더 이상 은행장 경질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비리가 적발된 은행장이 더 있고 없고를 떠나서 금융계를 강타한 사정 바람이 일단 잠잠해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재무부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가 제동을 건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은행감독원의 한 관계자도 “최근 한국은행 총재가 ‘부패척결도 해야 하지만 경제활성화가 최대 과제인 시점에서 금융계가 흔드리면 안된다’는 요지의 말을 통해 더 이상 옷 벗을 은행장이 없음을 시사했다”고 전했다.

 새 정부가 ‘신경제 1백일 계획’을 세우고 경기 부양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는 터에 은행들이 움직이지 않아 돈이 원활히 돌지 않는다면 경기부양을 처음부터 그르치기 쉽다.정부가 사정 칼날을 슬그머니 거두어들인 것은 금융 시장이 지나치게 경색될 조지을 보였기 때문이다.

대출기피 등 몸사리기 역력

 이런 기미는 은행 창구 내에서 쉽게 발견된다. 은행원들은 두 행장이 옷을 벗은 3월 중순부터 거의 일손을 놓고 있다. 대출 등 정상적인 업무도 기피하는 등 극도로 몸을 사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은행들은 자금 운용도 기업에 대출하기보다 주로 유가증권에 투자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는 실세 금리가 많이 떨어진 탓이지만 최근의 사정 한파와 무관치 않다는 게 한 시중 은행 지점장의 말이다. 재무부의 한 관계자는 금융계의 생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렇듯 보수적이고 권력의 풍향에 약한 금융계를 사정 당국이 공무원 다루듯이 하면 엄청난 파장이 온다.“

 금융계를 치면 그 파장이 바로 나타난다는 것을 사정 당국이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정의 칼날이 부정 부패를 척결한다는 명분으로 날아들었지만 금융계가 급습을 당한 일은 흔치 않았다. 80년 全斗煥 정부가 들어설 때 사회정화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이후 지금처럼 ‘큰 건’은 없었다. 그런데도 최근 사정 당국이 두 은행장의 옷을 벗긴 것은 금융계의 부조리가 이미 곪아터질 정도로 만연해 경고성 본보기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그 본보기로 金俊協 전 서울신탁 은행장과 李炳宣 전 보람은행장을 골랐다는 것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김준협씨의 경우 지난해 12월 실명으로 된 고발장이 접수돼 본격적인 내사에 들어갔다. 비리가 드러났으나 백지화되는 듯 하다가 새 정부가 들어선 후 경질로 방침을 선회했다. 공직자 비리척결 차원에서 금융계도 예외일 수 없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라고 전햇다.

 김씨는 그 이전부터 서울신탁은행 노조가 특혜 대출을 문제삼았던 인물이다. 이 은행노조에 따르면 그는 1년 10개월 동안 행장자리에 있으면서 구전을 받고 부실한 기업에 거액 대출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행장 지시로 대출을 해준 회사는 (주)성화 신광자원개발 신한인터내셔널 리오관광호텔 등인데 대출을 받은 후 1~2개월 만에 부도를 내고 넘어졌다. 서울신탁은행의 한 지점장은 “이밖에도 광고선전비를 과다 계상케 해 마련한 4억~5억원을 자신의 판공비로 쓰는 등 갖은 전횡을 해왔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병선씨는 축재가 문제가 돼 사표를 강요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출을 해준 대가로 받은 구전과 상납받은 돈을 가지고 부동산 투기를 일삼았다는 것이다. 한일은행의 한 지점장은 “91년 은행장에 재직중이던 이씨가 여신 관리를 게을리해 기업의 부동산 투기를 방조했다는 점이 물의를 일으켰었는데 이는 대부분의 은행에 적용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유독 이씨가 지목된 결정적 이유는 불건전한 축재 때문인 것으로 안다. 그는 대리 시절부터 축재설이 나돌았던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앞으로 행장 경질은 없겠지만 여진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계에서는 사정 한파가 행장급에서 임원과 일선 지점장 선으로 내려왔다고 보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ㅈ은행 ㅇ전무 등이 거론되고 있다. 따라서 개인 비리라는 사정 차원에서 몇 명의 은행 임직원이 물러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현재 금융계에서 솎일 것으로 보이는 사람은 크게 세가지 유형이다. 대표적인 게 금융부조리에 깊숙이 개입했거나 재산을 불린 과정이 투명하지 않은 은행 임직원이다. 다음으로 은행 내부의 자리싸움과 관련된 사람들이다. 은행장은 물론 임원도 청와대만 바라보는 현실에서 비리가 싹틀 소지는 많다. 여기서 소외된 사람들이 비리를 고발할 개연성은 충분하며 이미 검찰 등에 투서가 쇄도하고 있다고 들린다. 세 번째로,정치적 성향과 관련해 ‘단죄’될 사람이 생기지 않겠느냐는 추측이다. 금융계에서는 월계수회 등 특정 정치 세력이나 오랫동안 금융계 인사를 주물러왔던 ㄱ씨 ㅇ씨 인맥들이 사정대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준협.이병선씨에게도 정치적 역학 구도가 작용했다는 시각이 없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 금융계에 물아칠 바람은 노골적인 옷 벗기기가 아니라 감.검사 위주의 바람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출 커미션 (대출을 해주면서 구전을 요구하는 것) 꺾기 (대출을 해주면서 일정액을 예금하도록 강요하는 구속성 예금의 하나) 등 굼융 부조리를 척결하기 위한 은행감독원의 검사가 계속될 것이다. 이는 사실 새로운 흐름은 아니다. 재무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쩍 꺾기 등 금융 부조리를 문제삼기 시작했다.

 집행 기관인 은행감독원은 2월 은행장회의에서 이러한 부조리를 중징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처벌지침을 강화했다. 그러나 은행감독원은 최근 사정 한파와 맞물려 검사활동이 금융 시장에 악영향을 주는 등 부작용이 생길까 봐 고심하고 있다.은행감독원 부원장은 “검사는 종전에 해오던 방법과 강도가 그대로 유지된다. 정기.수시 검사를 하면서 금융 부조리를 중점적으로 보게 될 것이다. 특별 검사는 한 적도 없고 할 계획도 없다”라고 밝히면서 조용하고 꾸준히 검사가 이루어질 것임을 강조했다.

감사원, 감사작업 본격 착수

 금융계의 촉각은 사실 감사원의 감사 활동에 더 쏠린다. 작년에는 없던 일이라 감사의 강도 등에 신경을 쓰고 있다. 감사원은 올해 금융,세무,건축 인허가,공사 및 물자 구매,토지형질 변경, 그린벨트 훼손 등 이른바 7대 비리다발 분야에 대한 특별감사 계획을 짰다. 3월23일부터 감사원은 부분적으로 감사에 들어갔다. 감사원의 한 관계자는 “금융 부문의 감사는 착수하지 않았다”라고 밝혔으나 언제 시행하느냐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감사원의 금융 부문에 대한 감사가 어떻게 이루어질지 유추하는 일이 불가는아지는 않다. 감사원은 정책자금을 대출받은 업체의 예금.대출 현황과 최근의 꺾기 정리 실적,2억원 이상 대출 현황,부도업체 과다 점포의 거래실적 같은 자료를 은행감독원에 요청해 받아갔다. 은행감독원의 한 국장은 “자료의 성격에 비춰볼 때 꺾기를 검사하려고 하는 것 같다. 특히 정책자금을 쓴 기업이 꺾기를 당했느냐가 주요 관심사이고, 부도대상 업체나 2억원 이상 대출업체 현황은 이를 추리하기 위한 자료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추측했다.

 정책자금은 시중 은행보다 주로 국책 은행이 취급하고 있고 감사원 감사 대상도 정부투자기관으로 분류되는 국책 은행에 한정된다. 은행감독원이 감사 활동에 합류할 가능성도 있다.자료만 봐서 꺾기 혐의를 가려내기는 매우 어려우므로 꺾기를 적발하는 비결을 가지고 있는 은행감독원이 협조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은행감독원은 “협조를 의뢰해오면 특별팀이 만들어질 수 있겠지만 현재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라고 밝혔다.

 금융 부조리를 반드시 뿌리뽑아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금융 부조리를 처벌 차원에서 다스리는 것은 분명히 한계가 있다. 금융 부조리의 온상으로 지목되는 꺾기와 대출 커미션, 예금 사오기 등은 ‘금리 규제’라느 같은 원인에서 초래된 구조적 비리들이다. 대부분의 꺾기는 금리가 규제돼 있는 상황에서 은행이 금리 차를 보전하기 위해 동원하는 일종의 자구책이다. 예금 사오기도 금리 규제로 상품의 경쟁력이 떨어진 탓에 돈을 주어서라도 사와야 한다느 절박감에서 생겨난다. 또 예금을 사오자니 유일한 무기인 대출로 돈을 만들어야 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부조리를 뿌리뽑으려면 사람만 칠 것이 아니라 금리자유화 등 근원책을 찾아야 한다. 한 시중 은행 관계자는 “금융부조리가 저질러질 여건은 다 놔두고 무조선 하지 말라고 한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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