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풀린 輸出ㆍㆍㆍ팔만한 물건이 없다
  • 최철주 (中央日報 경제부장) ()
  • 승인 1989.12.1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기ㆍ전자산업마저 비틀ㆍㆍㆍ勞使관계 개선ㆍ기술투자로 상품 質 높여야

길을 가다가 도로사정이 나빠지거나 날씨가 궂어지면 제시간에 목적지에 도달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상황판단을 하게 된다. 그같은 판단은 뒤따라 오는 사람들에게 긴급신호로 전달되어 여행계획을 바꾸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이끌어왔던 수출이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연속적으로 異常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도 그 여건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올해 수출목표는 이미 여러차례 下向 조정되었다. 연말이 가까울수록 붉은 신호판은 더욱 커져서 어느 누구나 수출 달성액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꺼린다.

 정부가 어기차게 몰아세운 각종 정책에 힘입었든 야망이 큰 기업인들이 도전적 정신에 뒷받침되었든간에 이제까지 수출이 우리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금년에도 어떻게 잘 되겠지’ 생각해왔던 수출이 막상 아주 맥 풀린 상태로 이르자 모두들 ‘어! 어!’당황할 뿐, 어떻게 손써야 할지 모르는 것 같다.

VTRㆍ컬러TV 日製에 밀려

 우리나라 수출을 주도하는 전자ㆍ전기산업(88년 총수출액의 27%를 차지)은 지금 사면초가에 놓여 있다.

 VTR이나 컬러 텔레비전 등 가전제품의 가장 큰 시장은 미국이었으나 일본 제품들과의 경쟁에서 크게 뒤지게 되었다. 설자리를 잃었다. 그 동안 엔貨 강세로 미국시장에서 잠시 밀려난 듯 했던 일본제품들이 올들어 엔貨시세가 약세로 돌아서면서 낮은 가격으로 시장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같은 시기에 한국 제품은 우리돈 가치의 상승으로 수출가격을 더 내리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품질에서도 앞서는 일본제품과의 경쟁이 힘겨워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주요 산업체에서 노사분규가 끊이지 않아 주문량을 제때에 만들어 실어내기 조차 벅찼다. 또 노사분규를 통해 단기간에 이루어진 급격한 임금상승을 기업이 소화시키지 못한 채 가격경쟁력은 점차 떨어졌다.

 중국은 천아문 사태 이후, 전자제품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를 내림으로써 한국업체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다. 우리나라 업계는 올해 약 10억달러 상당의 전자ㆍ전기제품을 중국에 수출할 계획이었으나 지난 8월말까지 이의 3분의 1에도 채 못미치는 2억9천만달러밖에 팔지 못했다. 유럽공동체(EC)는 한국상품에 대한 반덤핑 판정을 번갈아 내리면서 우리나라 상품의 유럽수출에 애를 먹이고 있다.

안전도 낮아 自動車 수출도 타격

 외국 언론들이 극찬하고 일본 매스컴이 경계하는 눈초리로 주시했던 현대자동차의 미국시장 확대전략은 올해 치명타를 맞았다. 그같은 일은 서서히 벌어졌으나 낙관적인 한국 사람들에게는 돌발사태로 보였다. 일본이 엔貨 약세를 무기로 미국 소형차시장에 다시 진입했으며 그들의 탄탄한 재력을 바탕으로 日製 자동차를 사는 미국인에게는 돈도 꾸어주고 싸게 해주며 현금으로 구매한 사람에게는 1대에 1천5백달러나 깎아주는 수법으로 고객을 확보해갔다.

 말하자면 한국 자동차 메이커는 엔貨의 습격을 받아 기존 시장에서 패퇴한 꼴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 기업의 자동차 수출전략에 구멍이 난 것이 엔貨의 위력 때문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타당치 못하다. 한국 기업은 자동차의 안전도를 더 높이고 이를 적극 홍보하는 일을 게을리 했으며 미국인의 생활감각에 맞는 새로운 모델의 차종을 선보이는 데도 늑장을 부린 게 큰 탈이 되고 말았다.

 고객이란 소득이 늘고 여유가 생길수록 물건을 고르는 데 더욱 까다로워지는 법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외국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상품을 디자인하고 품질을 높이는 일에 한 박자 느리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작년도 수출에서 전자업계에 선두를 빼앗겼던 섬유류도 원貨 강세와 임금상승으로 흔들리고 있다. 섬유수출의 68%를 차지하고 있는 봉제산업의 휴ㆍ폐업이 늘어나고 종합상사들은 조직개편을 통해 섬유담당 인력을 점점 줄여가고 있다. 섬유기업들은 지금까지 규격품을 중심으로 대량 생산체제를 갖추어 왔으나 외국 바이어들은 소재ㆍ디자인ㆍ색상 모두 다양한 제품, 그것도 소량씩 주문하는 추세라 선진국 메이커들과 경쟁하기가 힘겨워지고 있다.

 전반적으로 우리나라의 주력 상품들이 엔貨에 밀려나고 모델교체 시기를 제때 맞추지 못해 미국시장에서 힘을 잃었으며 유럽에서는 덤핑판정으로, 중국에서는 천안문 사태로 인한 정국경색으로 수출이 악화되고 있다.

 

電子回路에 껌이 붙어있기도

 11월 들어서면서 기업들은 더욱 우울해졌다. 정부는 수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금지원과 금리인하 등 조치를 취했으나 이 역시 시기를 놓친 것이었다.

 11월의 수출은 작년보다 소량이라도 늘어나기는커녕 오히려 절대액이 줄어들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해 전에 비해 수출이 아예 줄어든 것은 지난 8월의 소폭 적자(0.7%)를 제외하고는 한번도 없었던 일이다.

 자동차ㆍ전자ㆍ섬유ㆍ선박 등의 수출이 어려워져 종합상사들마저 과거와 같은 치열한 실적경쟁에서 몸을 빼고 있다. 어찌보면 포기상태이고 또 어찌보면 별이득도 없는 수출을 악을 써가며 해야 되느냐는 회의에 빠진 것도 같다.

 금년도 수출기업들의 채산성이 별로 좋지 못할 게 뻔하다. 지난 상반기에 이미 대부분 기업들의 순익이 작년보다 줄었다. 노사분규가 되풀이될수록 수출환경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노사간에 누가 얼마만큼 더 양보해서 합의점을 찾느냐에 대한 관심 못지 않게 노동의 質과 量을 높이는 문제는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어떤 바이어들은 한국상품이 왜 이렇게 엉망이 되었느냐며 클레임을 클레임을 톡톡히 제기해온다. 나사가 박히지 않은 제품, 전자회로에 껌이 붙어있는 경우도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상품의 품질에 신뢰를 가질 수 없다는 불평이다.

 정부는 지난 1~8월에 실시한 수출검사의 불합격률이 3.9%나 된다고 발표했다. 이는 일본 등 선진국의 불합격률 1.5%보다 훨씬 높으며 경쟁국 대만의 2.5%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전반적으로 근로 분위기가 매우 느슨해진 것이다.

 나쁜 작업환경과 저임금 근로자들이 많았던 노동집약형 업종에서의 노사분쟁은 여러과정을 거치면서 생산활동-개선시킨 경우도 있으나 임금상승을  견뎌내지 못해 기존 시설을 축소하는 산업체도 만들어냈고 결과적으로 수출 감소의 원인이 되었다. 이를테면 신발 생산 라인도 작년에 비해 이미 16%나 줄었으며 섬유생산 능력도 6%가 축소되었다.

 기업이 성장하려면 기술투자는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한다. 특히 원貨강세로 수출이 어려운 시기에는 과감한 시설투자로 다음의 수출 기회를 노려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투자에 소요되는 자금확보도 어렵거니와 기업이 투자결정을 내리는 데 자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장기투자계획을 세우는 데 필요한 국내외 정보가 크게 부족하고 특히 정국의 불안정으로 경제논리가 자주 바뀌는 일조차 있어 섣불리 나서기가 어려운 분위기이다. 미래를 예측하기는 어려운 기술투자보다는 많은 이득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부동산쪽에 관심을 갖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는 투기 심리도 작용하고 있다.

 

좋은 물건 만드는 것이 열쇠

 85년부터 나타난 급격한 엔貨강세 하에서 일본기업들은 앞을 다투어 시설 및 기술투자를 확대해왔다. 그 덕택에 미국과의 통산마찰이 빚어지는 중에서도 거액의 수출을 지속시킬 수 있었다. 외국인들이 사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그야말로 구매욕을 촉발시키는 산뜻한 제품들이 줄지어 쏟아져 나온것도 어려울 때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은 덕택이다.

 수출격감 현상을 보는 우리로서 더 이상 선태의 여지가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투자가 있어야 한다. 올해 예상되는 6%대의 경제성장은 결코 낮은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고도성장에서 급하락한데 따른 고통을 서로 나누어 갖지 않으면 수출한국의 위치를 다시 세우는 기회조차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