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한국 현대사의 새 시각을 열다
  • 최장집(고려대교수 정치학) ()
  • 승인 1989.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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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전후사의 인식>. 왜 ‘80년대의 책’인가 - 宋建鎬?金彦鎬?李完範씨 좌담

80년대를 마감하는 출판계에서 <해방전후사의 인식>(전6권) 완간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출판전문지 <출판저널>, 일간지 출판담당기자들, 월간<사회와 사상> 등이 뽑은 ‘80년대의 책’에서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다. 연인원 59명이 동원돼 45년부터 53년까지의 8년사를 각 부문별로 상세히 조명한 이 책은 사회과학 도서로서는 경이적으로 40만권이나 팔려 80년대 최대의 베스트셀러로 기록되기도 했다. 본지는 이책의 ‘제1세대’인 宋建鎬씨(한겨레신문 대표이사)와 제1세대가 배출한 ‘제3세대’인 李完範(연세대 정외과 강사), 기획?제작가 金彦鎬씨(한길가 발행인)가 함께 만나 <해방전후사의 인식>완간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김언호 = 책의 문화는 그 시대 상황의 반영이면서 동시에 그 시대를 변화시키는 주체로서 힘을 갖습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전형적으로 이 이론에 부합되는 책입니다. 70년대 후반에 기획되고 80년대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완간되었는데 그 10년이란 운동이나 사상, 의식의 측면에서 가장 격렬한 시기였습니다. 그 변화를 이 책이 반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75년을 기점으로 시작되어 이후 15년,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시기를 지나오는 동안, 우리 역사와 사회를 주체적인 논리와 사상 체계로 바로보자는 ‘위대한 각성’이 일어났지요.

송건호 = 요즘은 유능한 젊은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해방의 역사를 연구하지만 그때는 학생들도 없었고 우리처럼 일제시대를 경험한 소수 기성세대들밖에 없었어요. 당시 사학자들은 대개 일제시대에 친일하고 해방 이후 이승만 노선을 추종했던 세력들이었어요. 거기에 유신말기라는 상황 때문에 그런 글은 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같은 소수 비사학계가 참여, 왜 해방이후 이승만 노선을 택했고 그 길로 가게 되었는가, 그것은 옳았는가를 반성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김 = 이책은 왜 오늘 우리가 이렇게 분단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분단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파악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분단에 대해서는 외세결정론이 주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우리는 분단의 내재적 원인을 찾아보고 우리가 자주적?주체적인 역량이 있었다면 분단이 되었을까 하는 질문을 가져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부분은 금기의 영역이었죠. 이 책이 처음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우리 사회 연구수준 담아낸 그릇”

송 = 해방전후사에 대한 반성과 시각교정 작업을 한길사에서 기획했다는 것에 공감을 가졌습니다. 나나 김언호선생이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것이 독재상황과 무관하지 않거든요. 유신말기 상황은 이승만 노선이 필연적으로 멈춰야 할 기착지였습니다. 절실한 당사자로서 해방전후사를 제인식하자는 기획을 한 겁니다. 이 기획이 젊은이들의 지적 욕구와 시대상황에 맞아떨어졌지요.

김 = 그 시대는 무한한 가능성과 이데올로기가 혼재했던 상황이어서 한권으론 도저히 소화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1권은 그 당시 연구자의 역량을 총동원한 것입니다. 일관된 기획은 아니었고 당시 우리 사회의 연구수준을 담아내는 그릇이었다고 봅니다. 제1권에서는 13분의 필자가 동원됐습니다. 1979년 10월15일에 첫권이 나왔는데, 나오자마자 10?26 때문에 판금되고 말았지요. 80년 ‘서울의 봄’때 해금되는 등 시련이 많았습니다. 제2권은 85년, 87년 제3권 그리고 올해 제4?5?6권이 완간됐습니다. 이책은 한마디로 한국현대사에 대한 시각 기초교정 작업을 해낸 것이라 할 수 있지요.

이완범 =  이책의 제1권이 입문서라면 제2?3?4?5권은 연구논문집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연구논문의 토대를 가지고 새로운 입문서를 간행해야 되겠다’라는 문제의식이 제기되어, 이책 제1권에 비견될 수 있는 입문서로 기획된 것이 제6권은 새로운 시각으로 무장된 새로운 세대들에 의해서 기획이 됐습니다.

김 = 10년에 걸쳐서 이런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냈다는 데 출판인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갖습니다. 이와 같은 성격의 책을 대중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아울러 역사인식의 대중화에도 한몫을 했다고 봅니다.

이 =  1979년 이책이 나온 이후 저희 세대는 송선생님의 글 ‘해방의 민족사적 인식’을 거의 교과서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글은 훌륭한 문제제기였고 우리들이 연구하는 데 좋은 지침이 되었죠. 80년대 중반 이전까지는 학생운동이 세미나 중심으로 이루어졌어요. 그런데 세미나를 할 때 분단의 문제를 규명하는 필독교재가 이책이었습니다.

김 = 이책의 영향은 80년대 중반 이후의 통일운동과 연관되지요. 현대사를 바로보려는 노력은 여타 사회과학분야로 옮겨갔습니다. 이 책의 제1권은 해방전후사에 대한 기초적인 인식이라고 볼 수 있고, 그 중에도 송건호 선생님의 글은 <해방전후사의 인식> 전6권의 서설입니다. 선생님께서 제1권을 쓰신 글이 해방의 민족사적인 인식이라는 글인데, 그 글은 상당히 새로운 획을 긋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해방은 민족주체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셨죠.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고 생각됩니다.

송 = 해방 직후에 이승만?박헌영?여운형 노선을 놓고 3파전을 벌였어요. 우리 민족이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는 중대한 문제를 가지고 논란을 벌인 것이죠. 그런데 48년에 정부가 들어서면서 민족이 나아갈 궤도가 결정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오늘까지의 역사는 이승만 노선을 합리화시키는 역사였습니다. 이와 같은 인식 아래 우리 민족이 왜 이렇게 암담하게 되었는가를 젊은이들이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그 글을 쓸 당시는 개인적으로도 매우 암담할 때였습니다. 현대사를 쓰면서, 이렇게 독재에 대항하여 수절하기가 어려운데 일제시대에 항일하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 하는 부분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 = 역사학계에서 이른바 해방전후사를 금기시하던 현상들이 70년대 후반에 들어와 거의 무색해졌습니다. 그 금기를 무너뜨리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한 것은 역시 송선생님의 문제제기였음은 물론입니다. 이와 같은 영향으로 역사학계 내부에서도 해방전후사를 연구하게 되고 사회과학계에서는 소장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진보적인 연구성과를 양산하게 됩니다. 그 결과가 제2?3?4?5?6권으로 나오게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완간은 새로운 출발 위한 매듭”

지금의  시점에서 볼 때 해방전후사가 분단시대의 원형임에는 분명하지만 이것이 현재의 분단 상황을 그대로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요. 지금 이곳의 분단상황을 조명하려면 원형을 이루는 시기들이 그 이후 시기들, 즉 한국전쟁이나 60년대, 70년대로 어떻게 이행돼서 지금 80년대 말의 역사적인 상황과 연결되느냐, 어떻게 그것을 인식해야 하느냐 하는 필요성이 제기 됩니다. 그래서 1989년의 시점에서 해방전후사는 일단 6권으로 완간을 해야 합니다. 이때 완간이란 의미는 새로운 출발을 위한 매듭이란 뜻으로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지금, 1989년의 시점에서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완간되면서 한길사에서 아마 한국현대사의 기획으로서 ‘한국전쟁의 인식’같은 기획을 하고 있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그런 기획들은 아까 언급한 것처럼 50년대 이후부터 80년대에 이르는 우리 역사를 단계적으로 조명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김 = 이책에 참여한 필자들이 일군의 학파를 형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동작업과 개인작업을 병행했지만 진보적 이론과 시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만나면 얼마든지 토론이 가능 했습니다. 앞으로 이 세대들이 한국현대사를, 한국사회과학 연구를 주도할 것입니다. 중요한 인물들이 다 들어있습니다.

송 = 요즘도 일주일에 두 번 서점에 갑니다. 젊은이들이 좋은 책 많이 냅니다. 그 책들을 전부 읽지는 못하지만 무슨 책이 나왔는지 아는 것도 좋은 공부가 돼요. 좋은 책이 많이 나오는 걸 보면 우리나라의 앞길이 창창함을 느낍니다.

 

인문사회과학 ‘대전환’의 좌표 제시

80년대 한국인문사회과학은 두가지 점에서 해방후 수십년간 지속돼온 기존의 인문사회과학과 비교된다. 그것의 하나는 우리의 역사와 사회에 대한 놀라운 지적 열정과 실천적 관심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주체?민중주체를 내용으로 하는 비판적 시각?비판적 관점의 수용과 확산이다. 전자가 연구대상의 전환이라면 후자는 연구시각?연구방법론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아마도 이 두가지 점에서 80년대를 ‘한국인문사회과학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화기’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전자, 즉 우리의 역사와 사회에 대한 연구열기와 관련하여 우리는 ‘한국현대사 연구증후군’이라 부를 수도 있을 정도의 폭발적인 지적?실천적 천착을 목표해왔다.

1979년에 그 첫권이 출간된 후 정확히 10년만인 1989년에 완간된<해방전후사의 인식> 전6권은 이러한 지적 흐름을 응축적으로 표징해온 80년대의 가장 대표적인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연 60여명의 필자가 참여해 동시대인의 역사의식을 일깨우며 이미 우리시대 고전의 반열에 올라선 이책의 완간은 역사학과 사회과학이 지고 입던 ‘80년대적 상황’에 대한 부채의 일부를 갚았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책의 출간과 완간의 시점인 1979년에서 1989년의 역사가 이 책이 포괄하고 있는 1945에서 1953년의 격렬했던 역사O에 비견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학문적?현실적 수준에서의 묘한 역사의 재현을 본다.

이러한 현실적 조건의 격렬함에 추동되면서 역사인식의 기준, 그리고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측면에서 80년대의 그것은 하나의 ‘지적 혁명’에 해당하는 진전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역사의 연속성과 역사이해의 현재성을 확인하게 된다.

80년대 한국사회는 이미 그 초기부터 부마항쟁과 10?26에 뒤이은 유신붕괴, 12?12쿠데타, 서울의 봄, 광주민중항쟁 등 숨돌릴 틈도 없는 역사적 사건의 연속으로 해방과 그 직후에 밀려온 환희와 분노의 격변적 역전을 연상케 하는 것이었다.

<해방전후사으 인식> 전6권이, 그리고 80년대 한국의 역사학과 사회과학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러한 80년대적 상황, 그중에서도 특히 광주민중항쟁의 경험과 자주?민주?통일의 민족민주운동 활성화의 지적 대응이자 반영물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비록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80년대 우리역사학과 인문사회과학의 가장 중요한 성과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의 성과와 한계는 이제 다가올 90년대에 비판적으로 극복되지 않으면 안된다. 시각과 연구대상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보여준 80년대의 혁명적 전환을 관점과 사실, 추상과 구체, 이론과 실천의 균형 속에 올바른 관점과 정확한 사실을 토대로 내용을 채우고 그것을 민족자주?민주주의?민족통일의 민족적 과제 달성에 기여케 하는 데 90년대 한국인문사회과학의 과제가 놓여있다. 그것이 90년대 한국인문사회과학의 의무이자 거기에 우리 역사학과 사회과학의 미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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