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街에 배달된 ‘金復東대권’ 怪書
  • 박준웅 편집위원대리 ()
  • 승인 1989.12.2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6월 이어 두 번째…金씨 측근 “큰 강 되려니 폐수까지 유입”

盧泰愚대통령의 손위 처남이며 육사 11기 동창인 金復東씨의 정계진출 여부가 관심의 표적이 되어 있는 가운데 그를 ‘제7공화국 시대 天命大權者’로 지칭하는 ‘怪書’가 나돌아 정가에 자그만 얘깃거리가 되고 있다.

 12월초부터 정계의 유력인사들에게 우송된 《天孝응太命》이라는 이름의 이 책자는 4백82면 컬러 양장의 고급스런 차림새를 갖추고 있을뿐더러 金씨의 사진을 곁들인 2장의 선전 포스터가 동봉돼 눈길을 끈다.

 一心一仙政會의 高岩이라는 사람이 출판한 이 책은 페이지를 열자마자 얼굴이 하얗게 지워진 인물이 대통령선서를 하고 있고 그 옆에 盧대통령이 서 있는 몽타주 사진과 함께 ‘제7공화의 통솔자로 떠오르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책은 이어 김씨가 회장으로 있는 예비역 장성들의 모임인 松柏會 회원들이 국군묘지에서 헌화하는 모습과 여러 모임에서 김씨가 연설하는 모습 등 최근 김씨의 활동상황을 담은 사진 20여장을 게재하면서 仙家에서 보는 바로는 김씨가 차기대권의 적임자라고 암시하고 있다.

 특히 ‘靈想의 仙界 드라마 제 7공화국’이라는 대목에서 남색도포 차림으로 좌선을 하고 있는 고암선사(책의 저자)는 盧대통령의 숙부인 ‘盧회장’과의 대화 속에서 ‘여러 秘訣書로 보아 김씨가 제 7공화국의 天命대권자’임을 밝히고 있다.

 내용중 일부를 옮겨본다.

 노회장 : 그(金復東씨를 뜻한다)의 신상에 대해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없습니까?

 고암 : 그는 1933년 癸酉생입니다. 결혼은 지역감정을 초월하여 광주출신의 부인을 맞았으며 부친은 공무에 종사하신 분이었습니다.

 노회장 : (경직되며)복동이가 태우 다음으로….

 고암 : 예…태우시대에 전심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이지요.

 이 책은 또 김씨의 부인 任金珠씨의 이름이 ‘청룡신장의 여의주를 맡아 있다’는 뜻으로, 全南 和順의 母后井舍人 仙岩仙人으로부터 예시받은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같은 ‘怪書’가 나돌고 있는 데 대해 김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국제문화연구소의 白成南연구위원은 “3~4일 전 이상한 책자가 연구소 앞으로 배달돼와 사진만 훑어봤는데 시시비비를 가릴 가치가 없어 무시해 버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백씨는 “우리 쪽과는 단 한번도 얘기가 오고 간 적도 없고 사진을 어디에서 구했는지도 모른다” 면서 김회장에게 내용을 보고했더니 “별 사람 다 있군”하며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 버리더라고 전했다.

 백씨는 또 개인적인 견해라면서 “큰 江이 되려니까 전혀 생각지도 않던 물길, 심지어 폐수까지도 유입되어 흐르게 된다”고 말했다.

 백씨는 이같은 책자가 나돌게된 데 대해 국민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한탕하고 튀자는 장삿속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고 또는 김회장을 음해하려는 고단수의 정치적 술수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이처럼 해괴하다고 할 수도 있고 황당무계하다고 할 수도 있는 책을 펴낸 고암이라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바로 忠北 報恩군 長老면 任谷리 산골의 이른바 大母井舍에 은거해 있는 金正筆(46·본명)씨. 도포를 걸친 도인의 모습도 아니었고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仙師의 모습은 더욱 아니었다. 낮잠을 자다 막 일어난 듯 부수수한 얼굴인데 그나마 특징이 있다면 멜빵을 맨 바지를 입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金復東씨는 만난 일도 없습니다. 사진이야 이곳저곳 찾아보면 구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같이 일한 사람요? 전혀 없습니다. 나 혼자서 한 일입니다.”

 그는 3년전 이곳에 들어와 1년 가량 책을 내는 작업에 매달렸다는데 초판으로 1천부 가량을 찍어 서점에 배포하고 일부를 몇몇 곳에 돌렸으나 모두 회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몽땅 분실했죠. 원고고 인쇄원형이고 모두 없어졌어요”

 그는 “어디엔가 가 있다가 어젯밤(8일) 늦게야 돌아왔다”며 모처에서 적지 않은 고초를 겪었음을 비쳤다. 그는 또 분명한 목적과 동기가 있어서 책을 만들었지만 上古史나 仙法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견딜 수 없게 만든 모양이라며 산골에서 할 일은 이제 끝났으니 다른 삶의 길을 찾아 도회지로 나가겠다고 했다. 새 삶을 찾기 위해 “똥털(수염)도 깎았다”는 그는 책을 만들려면 꽤 많은 돈이 들었을 게 아니냐는 질문에 나중에 지불키로 하고 시작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야단났다면서 앞으로 반년간 근신하며 살겠다고 했다.

 그는 또 “신뢰가 깨지면 인간관계가 깨진다. 신뢰뢰를 깨면 어디 가서 쪽박(얼굴을 뜻하는듯)을 내밀겠느냐”고 알쏭달쏭한 소리를 했다.

 이처럼 비속어를 서슴없이 늘어놓는 점이나 “나도 옛날에는 하루에 세탕씩도 뛰었던 평범한 사람이며 술도 잘 먹는다”고 자랑스레 말하는 점으로 미루어 그의 전력이 결코 순탄하고 평범하지만은 않은 것으로 보였다.

 그는 “할 일, 못할 일, 망나니 짓, 지난 세월의 나이는 모두 집어던지고 仙家에 들어온 지 5년, 仙曆으로 이제 겨우 5년”이라면서 고향이나 학력 등 과거사에 대해서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한편 金復東씨는 지난 6월에도 金正善이라는 사람이 쓴 《宣言》이라는 책이 이번과 같은 내용을 담은 채 돌아다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