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생산적 자금흐름 바로잡아야
  • 박철(한국은행 조사1부차장) ()
  • 승인 1989.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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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유가증권 등에 열중하는 기업들의 자세도 문제

금년 들어 한국경제는 원화절상, 임금상승, 노사분규 등으로 성장률이 크게 낮아지고 경상수지 흑자도 대폭 축소되는 가운데 물가불안 현상이 지속되는 등 당초 예상보다 훨신 저조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우려할 만한 사실은 성장의 내용에서 그동안 성장을 이끌어온 수출과 제조업 설비투자가 극히 부진하며 내년에도 크게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정부가 보다 과감한 경기부양대책을 펴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 주내용은 환율절하와 자금공급의 확대 및 금리인하 등이다.

 기업이 자금부족으로 생산과 투자를 늘릴 수 없는 상황이라면 현재와 같은 경기침체기에 적절한 자금지원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는데 대해 별다른 반대의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금년 상반기중 30대 계열기업군이 1조원이 넘는 부동산을 사들이고 유가증권 보유액도 크게 늘리는 등 돈굴리기(재테크)에 열중하고 골프장과 호텔 등 레저산업에 경쟁적으로 진출하고 있는 왜곡된 현상을 보이고 있어서 과연 자금지원이 경기침체를 극복하는 유일한 처방인가 하는 의문이 나오기도 한다. 얼마전 외지에서 “한국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며 우리의 사치성 소비풍조를 비아냥거린 바도 있듯이 제조업투자의 침체 및 기업의 자금난 호소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자금흐름의 왜곡현상이 있는 것이다.

 실제 통계를 보더라도, 86년 경상수지 흑자 전환 이후 기업의 투자자금 부족 규모는 감소하거나 크게 늘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외부자금 조달규모는 계속 증가하였으며, 자금운용 면에서는 주식투자가 크게 늘어나고 토지구입비의 비중도 계속 높아진 것으로 나타나 많은 기업들이 금융자산이나 부동산 등 자산투자에 치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동안 GNP성장률을 밑돌던 민간소비 증가율이 1989년부터 GNP성장률을 웃돌고, 그 결과 총 저축률도 85년 이후 처음으로 하락하였다. 특히 가계소비 구성에 있어서는 필수적 지출보다는 내구재와 서비스 등 선택적 지출이 급증하여 사치성 소비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이 자금흐름이 왜곡되는 경우에는, 은행대출과 통화공급이 총량 면에서 적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하더라도, 비생산적 부문의 자금수요 증대로 생산부문의 가용자금은 계속 부족하게 되고 시중 자금사정의 악화 및 시장금리의 상승을 가져오게 된다.

 이는 1986년 이후 경상수지의 흑자전환으로 저축이 투자를 상회하여 투자재원의 자립이 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에서 여전히 자금에 대한 초과수요가 지속돼 시장금리가 떨어지지 않는 데서도 잘 나타나고 잇다. 또한 금년 3/4분기까지의 명목경제성장률은 12%로 전년 같은 기간의 17%에 비해 크게 둔화된 데도 불구하고 1~10월중 총통화(개인·기업의 현금+은행예금) 증가율은 전년 같은 기간과 비슷한 18.4% 수준을 나타냈으며 특히 해외부문의 통화 유입이 크게 줄어 민간신용 공급이 전년 같은 기간의 6조6천억원의 2배에 달하는 12조원으로 크게 확대되었음에 비추어 총량 면에서의 돈이 적게 공급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부동산투기 등에서 재미 못보도록

 왜곡된 돈의 흐름을 바로잡기 위한 대책은 인플레 기대심리를 가라앉혀 부동산투기 등의 기대수익률을 기업의 투자수익률이나 시장실세금리보다 낮추는 일이 무엇보다 긴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돈의 양을 적정수준으로 유지·관리하는 것이 최우선과제이다. 인플레 기대심리 때문에 투기가 진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통화량을 늘리는 것은 기업의 자금부족 해소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인플레를 가속화시키고 자금흐름의 왜곡을 더욱 심화시키게 될 것이다.

 특히 금년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닻오 정부의 목표인 5%를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전세값의 급등, 최근 분당지역의 과열현상 등으로 인플레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음에 비추어 돈의 양을 적정수준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크다 하겠다.

 둘째, 자금공급에 있어서 선별기능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거액차입업체에 대한 효과적인 여신관리를 통하여 이들의 은행차입에 대한 의존을 축소하고 직접금융조달에 의한 은행차입금의 상환을 유도하는 한편 비생산적인 부동산 및 유가증권 투자나 기업인수 등을 극력 억제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금융기관의 자금은 원화절상·임금인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의 구조조정 등을 지원하는 데 우선 지원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자금지원 방식에 있어서도 상업어음 할인 등을 확대함으로써 자금이 생산부문으로 흐르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셋째, 국내 금융자본시장의 정비 확충을 통하여 자금의 편재현상을 시정하고 시중의 여유자금을 금융저축으로 끌어들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금융당국은 통화안정증권을 비롯한 각종 채구너의 발행 규모와 시기를 적절히 조정하고 개인투자가의 채권투자 유인책을 강구, 채권시장을 활성화하여야 할 것이다.

 

기업가는 저임금·저리융자 의존 말아야

 이상과 같은 금융정책면의 대응과 더불어 투기나 사치성 소비를 억제하기 위한 미시적인 보완대책으로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토지공개념 및 금융실명제를 계획대로 도입하여 조기에 정착시킴은 물론 투기기회와 불로소득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관련 세제의 정비 및 稅政강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기업의 업무용 부동산의 범위와 판정기준을 엄격히 하여 업무용을 위장한 비업무용 부동산의 취득도 막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최근 우리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대내외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업가들이 창의와 혁신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적 기업가정신을 고양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이제 기업들은 과거처럼 저임금이나 저리의 은행차입 등에 의존해서는 경영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인식하 생산성 향상과 새로운 수출전략상품 개발을 위한 기술개발 및 구조조정투자를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며, 이에 대한 세제 및 금융 면에서의 지원도 대폭 강화될 필요가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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