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금속을 먹어치우는 단백질
  • 김선엽 기자 ()
  • 승인 1989.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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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대 權榮澤박사, 돌고래에서 추출… 해독제, 제암제 등 실용화 가능성

조선시대 사약을 받은 정치범(?)들의 사인은 의학적 측면에서 거의 틀림없이 ‘중금속 중독’에 의한 사망이 된다. 비상〔砒素〕, 수은, 납 등 사약의 원료들이 다 인체에 치명적인 중금속이기 때문이다. 또 한때 나폴레옹의 머리카락에서 정상인의 6배에 달하는 비소가 검출되었다고 해서 비소독살론이 과학잡지《네이처》(Nature)에 실린 바 있다.

 그러나 비소가 무조건 유해한 것만은 아니다. 식용해초인 톳(鹿尾采)에는 정상인 모발의 2백배가 넘는 비소가 함유돼 있는데도 식용에 따른 장애는 유발되지 않는다.

 같은 비소인데 이처럼 때로는 유해하고 때로는 무해한 까닭은 비소의 생체내 존재 형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톳은 나름대로 비소를 무해한 형태로 바꾸어 줄 수 있는 방어기구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국내 학자에 의해 세계 최초로 돌고래 역시 중금속에 대한 방어기구를 갖고 있다는 것이 밝혀져 관심을 끌고 있다. 경남대 환경보호학과 權榮澤교수는 중금속이 주로 축적되는 돌고래의 신장조직으로부터 ‘메탈로시오네인(Metallothionein)’이라는 일종의 ‘방어단백질’을 분리, 이 물질의 구조 및 생체내에서의 작용 등을 규명해 냈다.

 권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메탈로시오네인은 61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진 대단히 작은 단백질로 카드뮴, 수은, 아연, 구리 등과 동시에 복합적으로 결합, 중금속이 다른 臟器나 조직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억제하는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다시 말해 중금속을 세균에 비유한다면 메탈로씨오네인은 세균을 잡아먹는 배혈구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돌고래의 체내로 들어온 카드뮴이나 수은등 중금속 자체가 DNA에 어떤 신호를 전달, DNA가 방어단백질을 만들도록 합니다. 이 단백질 한 분자는 총 7개의 중금속 원자를 ‘먹어 치울 수 있는 공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메탈로시오네인이 동물의 체내에서 생산되는 경로에 대해 권교수는 이렇게 밝힌다.

 또 “메탈로시오네인의 對중금속 방어역할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권교수는 카드뮴중독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骨軟化症으로 인한 ‘이타이 이타이’병의 원인이 되는 카드뮴은 3ppm 정도만 있어도 칼슘대사를 저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메탈로시오네인이 있으면 카드뮴의 농도를 50ppm 까지 올려도 칼슘대사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이는 메탈로시오네인이 체내로 들어온 카드뮴을 ‘먹어치우기’ 때문입니다.”

 권교수는 또 돌고래와 말의 腎臟피질을 비교, 각각의 중금속 함량을 밝혀내기도 했다. 돌고래는 말보다 30여배 이상 수은을 신장 피질 속에 갖고 있다는 것이며, 한편 카드뮴은 말이 돌고래보다 3배 이상 많이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돌고래와 말이 먹이로 하는 물질의 차이에서 생기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한편 돌고래의 메탈로시오네인과 유사한 물질이 처음 밝혀진 것은 79년 스위스 학자 케이시씨등에 의해서였다. 케이기씨 등은 카드뮴과 결합하는 효소를 찾던중 이같은 성과를 올렸다.

 언젠가 중금속 오염의 시대가 오리라고 예측, 神이 인간사회에 미리 방어기구로 선물한 것인지도 모르는 메탈로시오네인의 존재는 이 밖에도 진화와 관련, 중요한 정보를 준다. 즉 현대 분자생물학은 모든 생물에 필수적인 단백질은 서로 연관이 깊을수록 진화의 정도가 비슷하다고 판정을 내리고 있다. 권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돌고래의 메탈로시오네인은 사람의 것과 94%에 가까운 유사성을 보여 지금까지 밝혀진 말의 92%, 쥐의 87%에 비해 진화적으로 볼 때 훨씬 사람과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메탈로시오네인의 정체 규명이 활기를 띰에 따라, 이의 실용화 여부가 관심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한 예로 고환종양, 난소암, 방광암, 두경부암 등에 制癌製로 효과가 있는 ‘시스-디디피’라는 白金錯體는 심한 腎臟毒性 및 구토 등으로 투여량을 제한할 수밖에 없는 단점을 갖고 있다. 그런데 시스-디디피를 투여하기전에 메탈로시오네인을 체내에 유도시켜 놓으면 더 많이 이 약을 투여, 制癌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백금에 의한 신장장애를 메탈로시오네인이 감소시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뚜렷한 치료제가 없는 중금속 중독의 치료에도 메탈로시오네인의 이용 가능성이 시험될 수 있다. 유전공학 기술을 활용, 메탈로시오네인을 대량으로 생산, 체내에 주입시킴으로써 중금속의 제거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메탈로시오네인의 체내 이동경로 등이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권교수는 관련학자들의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농토와 바다에까지 번진 ‘죽음의 금속’

 중금속이란 비중이 4 이상인 금속원소를 통틀어 일컫는 말로써 비소, 수은, 카드뮴, 납, 크롬, 아연, 주석, 망간, 코발트, 니켈 등이 이에 속한다. 아연, 망간 등 일부는 필수원소로 우리 몸에 매우 적은 量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중금속은 소량으로도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맹독성을 가지고 있다.

 이들 중 대표적인 몇몇 원소를 중심으로 중독 메커니즘과 증상 등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 카드뮴

 입이나 코를 통해 들어와 간, 콩팥, 창자벽등에 축적된다. 중독이 되면 설사, 복통, 두통, 호흡곤란, 간?신장장애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유명한 ‘이타이 이타이(아프다 아프다)’병의 발생원인이 되는데 이는 카드뮴이 칼슘의 흡수를 저해, 뼈가 약화되는 데 따라 나타나는 증상이다.

? 수은

 무기수은과 유기수은 두 형태가 다 독성이 있다. 상온에서 증기상태인데 보통 코를 통해 흡수되기 때문에 위험하다. 脂溶性인 유기수은의 경우 뇌 등에 침투, 신경계에 이상을 주기도 한다. 사지가 뒤틀리는 ‘미나마타’병도 수은중독의 결과다.

 일시에 많은 양에 노출될 경우 생기는 급성일 때는 단백질이 많은 음식을 먹이는 것이 좋다.

? 납

 코, 입, 피부를 통해 흡수된다. 코로 흡입한 납의 일부는 다시 코나 가래를 거쳐 빠져나간다. 흡수된 납은 뼈조직 드에 쌓여 헤모글로빈의 합성을 저해하고 적혁구의 수명 등을 단축시킴으로써 빈혈, 혈뇨, 식욕부진, 권태감 등을 일으킨다.

 일부는 중추나 말초신경계에 작용, 혼수상태를 일으키기도 한다.

? 구리

 입 등을 통해 들어온 다음 가수분해 효소 등에 작용, 代謝障碍를 일으킨다. 이에따라 구강, 식도, 위의 자극감 및 격통을 느낀다. 간?신장 장애, 저혈압 등도 있을 수 있다.

? 크롬

 코, 입, 피부를 통해 체내에 들어와 피부, 점막을 부식시킨다. 급성중독의 경우 열흘안에 생명을 앗아간다. 코뼈에 구명이 뚫리는 ‘비중격천공’ 역시 크롬이 물렁뼈를 부식시킴으로써 일어난다.

 전에는 일부 사업장에서만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중금속이 농토와 해양으로까지 확산되면서 농산물이나 해산물 또는 대기를 타고 일반가정에까지 번지고 있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음식물, 공기 등이 중금속 중독질환의 ‘숙주’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즉 오염된 땅에서 자란 곡식, 오염된 강물이나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 등을 섭취함으로써 사람의 몸속에도 중금속이 서서히 축적되어 가는 것이다.

 중금속은 다른 독성물질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간이나 신장, 콩팥 등에 축적된다. 하지만 체내에 흡수된 모든 중금속이 무조건 축적되는 것은 아니고 대부분은 호흡이나 대?소변을 통해 빠져나간다. 일시에 많은 양이 몸안에 흡수될 때 혹은 서서히 체내에 쌓일 때 중독증상이 나타난다.

 급속한 산업화 추세에 비쳐 보면 주위에서 중금속에 노출될 가능성은 갈수록 높아질 것이 틀림없다. 일단 중독증상이 보이면 전문 의료기관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아직 중금속 중독을 치료할 만한 효과적인 치료제가 개발돼 있지 않기 때문에 중독이 심하면 치료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따라서 예방에 힘쓰는 것만이 현재로서는 중금속 중독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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