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빛깔을 잃다
  • 이윤삼 편집국장 (yslee@sisapress.com)
  • 승인 2006.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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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의 편지

5·31 지방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예나 지금이나 후보들은 열심이다. 유동 인구가 많은 목 좋은 자리를 선점해서 홍보 스티커를 나누어주고, 연신 고개를 숙이며 깨끗한 공직 수행을 다짐한다. 임시 연단을 마련해 열변을 토하는 후보가 있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우리 후보는 소음 공해를 만들지 않습니다”라며 속삭이는 운동원도 눈에 띈다.

하지만 유권자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썰렁’했다. 지하철 역 입구 계단에는 버려진 홍보 스티커들로 어지러웠다. 지역 주민들을 대표해 막대한 예산을 심의·집행하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선량을 뽑는 행사가 이처럼 유권자들로부터 버림받아도 되는 것일까. 왜 그럴까. 후보들이 참신하지 않아서? 월드컵 때문에? 엄격한 선거법 때문에? 

나는 이번 선거가 과거의 행태를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식 선거운동을 이제 막 시작했고, 막판 변수가 돌출할 수도 있어 예단하기는 섣부르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예전과 똑같이 고유 영역을 중앙 정치에 빼앗겨 버렸다. 정당 지지도가 대세를 결정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쏟아지고 있는 여론조사가 말해주듯 많은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를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심판’으로 여기고 있다. 그런 정서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누적된 결과일 것이다. 한나라당에서 터져나온 공천 비리나 성추행 파문, 술자리 동영상 파문 건에 유권자들이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은 이미 오래 전 상당수 유권자들이 정권에 대한 평가를 내렸기 때문이라고 관측된다.

지역주의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도 이번 지방선거 관전을 맥 빠지게 한다. 지역주의 선거의 피해자로서 지역주의를 돌파하겠다고 목소리를 드높였던 노무현 정부에서도 지역주의는 맹위를 떨치고 있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각각 호남·영남의 적지 않은 지역에서 후보를 내지 못했다. 더구나 열린우리당은 정권 창출의 기반이었던 전남 지역 기초단체 여섯 곳에서 후보조차 내지 못했다. 새로울 것이 무언가?

상당수 언론들이 이번 선거에서 전문직·고학력·여성 출신들이 대거 출마한 것을 ‘고무적’이라고 지적했으나 이것도 찬찬히 뜯어볼 필요가 있다. 여성 출마자는 지난 선거 때 보다 세 배나 늘었다. 출마자 수가 급증한 데에는 광역·기초 비례대표의 50% 이상을 공천하도록 규정한 공직선거법 영향이 크다. 당선 취약 지역에서의 공천이 많아, 실제 당선자 비율은 더 떨어질 수도 있다. 또 자질 미달 후보가 대거 공천을 받은 것을 보면, 중앙당의 공천권 지방 이양이라는 실험은, 좋은 취지였음에도 실패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래서야 유권자가 마음을 움직이겠는가. 지방선거 본래의 의미를 원점에서 곱씹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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