企劃院,‘景氣浮揚’으로 급선회
  • 김재일 기자 ()
  • 승인 1989.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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業界 ‘危機論’에 밀려 정책지조 변경…“인플레 압력 가중시킨다” 비판도 거세

시기가 무르익은 것인가, 아니면 떠밀려서인가. 드디어 경제기획원은 금리이하, 환율절하 유도, 정책금융 부활, 석유제품기와 산업용 전기료 인하 등을 포함한 경기 부양에 나섰다.

 이번 경기종합대책의 주요내용은 원화절하를 유도하여 수출을 촉진하며, 통화공급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고 제조업에 설비투자 지원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부담을 줄여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에 대해 여러 가지 긍정적인 반응과 함께 우려의 소리도 나오고 있다. ‘뒤늦은 우기인식’ ‘경제위기 타개 긴급처방’ ‘원칙론에 너무 집착해 失機’ ‘인플레 유발 가능성’ 등등, 업계에서는 ‘늦어도 한참 늦었지만 다행스런 선택’으로 대개는 받아들이고 있다.

 경제기획원 관계자는 이번 조치가 단지 내년도 경제운용계획을 세우는 12월 중순경 각계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시키기에 용이하도록 관련 경제부처가 문을 열어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정책기조의 변경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업계의 주장 받아들여

 그러나 작년 12월초 趙淳부총리 취임 후 11개월 동안, 아니 지난 6월 하반기 종합대책 발표 때만 해도 ‘경제 체질강화를 위해서라도 금리, 환율, 통화량은 인위적으로 조정하지 않겠다’고 못박았던 사실에 비추어 이번 조치는 현 경제팀의 정책기조 변경선언임에 틀림없다.

 노사분규의 ㅅ용돌이 속에 수출, 설비투자, 경제성장이 침체를 면치 못했던 지난 5월부터 한국경제 위기론이 업계에서 나오기 시작했고 이에 대해 정부, 특히 경제기획원과 학계에서는 ‘조정기에 나타나는 일과성 현상’으로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파악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후에는 경기의 침체기인가, 조정기인가 또는 부양책이 당장 필요한가, 필요치 않은가에 대한 논쟁이 계속됐으나 그동안 실적으로 볼 때 경제성장률 경상수지 소비자물가 등 모든 지표가 展望値에 못 미쳤고 그때마다 이를 하향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따라 경제기획원은 원래의 입장고수에서 업계의 주장을 받아들이자는 쪽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예전같으면 중앙집중식 결정에 따라 정책을 시행하면 그만 이었지만 기금은 정책의 결정과정에서부터 국민의 눈치를 안볼 수 없고 그만큼 정부가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 기획원 당국자의 말이다.

 기획원 관계자는 이번 종합대책의 요체는 업계가 중병에 걸려있다는 사실을 정부가 전적으로 동의한 것을 뜻한다고 말한다. “아직까지 정부와 업계는 경제위기의 원인분석에 의견차이가 있었으나 이번 조치는 위기의 진단에 업계와 異見이 없다는 것을 선언한다.” 정부가 경제위기를 잘못 파악하고 있었음을 자인하는 대목이다.

 경기부양책의 실시 시기에 대해 趙淳부총리는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모든 경제주체의 인식이 함께 모아진 후에야 적절한 치료제가 투약되는 것 아닌가. 따라서 지난 6월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다른 기획원 관계자도 이 조치의 실시가 늦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제는 경제위기에 대한 인식의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국민들간에 자제해야 한다는 자성의 소리도 나오고 있어 지금이 適期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바로 전까지 경기부양책 실시에 완강하게 반대입장을 보여온 경제기획원이고 보면 정책방향 선회에 대한 논리가 조금은 구차해 보인다.

 이번 조치는 趙淳부총리가 8일 아침 노태우대통령을 만난 후 전격 결정돼 재무부·상공부 등 정부 부처와 韓銀에서는 사전에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경기부양조치의 영향에 대해 경제기획원 관계자는 “중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벌떡 일어서게는 못하겠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앉도록 부축하는 정도의 효과는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각 경제주체가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혀 제자리찾기에 노력한다면 이번 조치는 경기부양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업계는 ‘일단 환영한다’는 반응과 함께, 최근 기업환경이 약화된 근본원인은 경제 내적 요인보다 정치불안·노사분규·생산성저하 등에 있다고 지적하고 제조업 부문의 투자를 부추길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희망하고 있다.

 

인플레 심리 유발 우려

 반면 ‘현시점이 과연 경기부양책을 써야 할때인가’에 대해 회의적인 경제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특히 學界의 시각이 그렇다. 이번 경기대책은 현재로선 본격적인 경기부양책도 아니고 안정론을 포기한 것도 아닌 ‘어중간한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번 조치가 물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기획원 당국자의 말에도 불구하고 내년도 경제에 있어서 최대 관심사는 물가문제일 것이 분명하다. 한국은행의 한 당국자는 “통화공급확대는 인플레 심리를 유발, 결국 금리를 다시 올리게 하는 요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안정유지의 틀 속에서 경기부양을 할 수있느냐가 관건이다

“安定基調 무너뜨리지 않는다”

 지난 9일 부총리가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금리인하 검토 등의 내용을 두고 ‘정부가 失機했다’는 등 사회일각에서 비판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변 정부대책의 배경과 내용을 소상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방안을 정확히 새겨둘 필요가 있다.

 부총리는 첫째로 우리사회의 들뜬 분위기를 안정시키고 각계의 지나친 욕구를 자제케 하는 시책의 추진과 설득노력을 더욱 강력히 하겠다고 했다. 둘째로 기업의 設備設資를 촉진하고 수출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각종수단을 강구하되 관계부처를 비롯한 각계의 여론을 수렴하여 그 한계는 여전히 안정기조를 무너뜨리지 않는 범위내에 두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 과연 정부는 이제까지 일관되게 주장해오던 피상적 낙관론을 포기하고 뒤늦게 경기를 제대로 파악하게 되었다는 것인가? 아니다.

 지난 6월19일 발표한 ‘下半期경제종합대책’에도 우리경제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하는 것은 분명히 포함되어 있다.

 현시점에서 대책을 마련하게 된 것은 대외여건이 호전되기는커녕 점점 나빠져가는 상황에서 대내적으로 모든 經濟主體가 자기몫 자제 분위기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고 있어 이대로 간다면 우리경제는 금년은 물론 내년에도 지난 6월 하반기대책 발표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국면에 처할 위험을 안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번에 제시한 내용과 관련될 종합대책은 앞으로 국민 각계각층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서 12월 중순까지는 마련할 계획으로 있다.

 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란 겨우 저상된 기업환경에 대해 희망을 심어주는 정도이며 우리경제가 본격적으로 활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經濟體質을 강화하고 생산성을 높이고자 하는 결집된 의지를 바탕으로 기업, 근로자 등 모든 경제주체의 공동노력이 요청된다.

 

“기득권층 이익만 보호라 뿐”

 결국 그렇게 되리라는 예상은 했지만 역시 정부는 그동안 견지해오던 경제안정기조에 얽매이는 정책에서 벗어나 경기부양으로 선회하는 정책의지를 드러내었다. 곧 이어서 금리인하, 원貨의 平價切下, 일부 정책금융의 부활 등을 포함하는 종합대책을 마련해서 기업의 투자의욕을 회복시킬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더 이상 안정기조는 유지될 수 없으며 이제 인플레의 再燃은 거의 현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경제안정이 근로자와 소비자의 몫을 보호하는 반면에 인플레는 항상 기업의 몫을 늘리고 투자의욕을 부추기는 手段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기업들은 오래전부터 ‘경제위기론’을 강력하게 주장해왔으면 그동안 애매한 立場을 취해온 정부가 이미 정책失機를 했다고까지 몰아세웠다. 그러나 경제위기론에 대해서 아직 광범위한 공감대가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려운 만큼 그 實體에 대해서도 공통의 인식이 부족하다. 금년들어서 수출이 부진하고 경기가 위축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업조차 이것을 위기라고 보는 것 같지는 않다. 국내외 경제여건의 변화와 산업구조조정을 언제나 위기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 심각한 문제는 현재 우리사회에서 기업을 보는 부정적인 시각 자체이며 이에 따르는 노사분규 및 토지공개념, 금융실명제 추진 등 경제정의와 분배문제가 기업의 투자의욕을 위축시키는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이 시점에서 경기부양조치는 임금인상과 분배문제로 위협을 받는 기업과 기득권층이 인플레를 再發시켜서 그들의 몫을 다시 찾는 수단이라고 본다. 그러나 정부가 투자의욕만을 걱정한 나머지 근로의욕이나 국민 厚生을 돌보지 않는다면 산업평화는 이룩될 수 없으며 사회불안도 진정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도 기업에 대한 시각을 바로잡을 방안을 기업이 스스로 마련해서 위기를 극복할 수는 없을까?

 

“政府가 심각한 현시 인정한 것”

 이번에 발표된 정부의 경기대책은 그동안 위기론을 애써 외면하던 정부가 심각한 현실을 인정하였다는 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번의 景氣浮揚방침은 이러한 위기적 상황인식을 바탕으로 그간 업계에서 제시한 각종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고 있어서 이에 거는 업계의 기대는 자못 각별하다 하겠다.

 그동안 정책부서들에서 논의된 사항들로 미뤄 짐작해 보면 기업의 沒資 마인드를 부추기는 데에는 적지 않은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물가상승의 압력에 관해서는 지금의 물가 상황이 다분히 자기 몫 늘리기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정부의 부양책에 따른 결과보다는 각계각층의 자제 여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로서는 이번 방침의 후속대책마련에 있어서 업계가 가장 절박하게 느끼고 있는 몇가지 점들이 적극 반영되었으면 한다.

 먼저 金利에 있어서는 공금리가 적어도 2%포인트 이상 인하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국제금융시장의 리보금리가 7~8%선에 있는 만큼 대출금리는 10% 이하로 떨어져야 할 것이다. 동시에 지금 15~18%에 달하고 있는 실제금리가 하락조정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수출부진을 타개하기 위한 원貨의 平價는 업계에서 현재보다 5% 정도 절하된 달러당 7백선을 요구하고 있긴 하지만 통상압력과 산업구조조정이라는 측면을 감안할 때 절하는 다소 낮은 폭으로 하는 대신 산업용 전력, 유가의 대폭인하와 조세부담경감, 시설투자금융의 우대책 등을 통하여 경쟁력배양을 도모하여야 한다고 본다.

 끝으로 하이테크부문에 대한 기술개발투자 및 그 생산화투자에는 대기업여신규제의 대폭적인 완화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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