廬-鄭싸움 볼만한 TK 목장 결투
  • 박준웅 편집위원대우 ()
  • 승인 2006.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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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서갑구 보궐선거

타락선거 양상 띠며 과열
유권자들 “어서 끝나기를··· ”

대구 서갑구 보궐선거는 자리가 빈 국회의원 1명을 뽑는 단순한 보궐선거의 차원을 벗어났다. 온 국민의 이목이 이곳에 쏠리고 있고 대구시 전체가 열기에 들떠 있다. 이같은 관심과 열기는 선거일 공고가 있던 16일 鄭鎬溶후보의 부인 金淑煥씨가 자살기도라는 충격파를 던짐으로써 폭발적으로 증폭되어 긴장과 혼미의 일대 드라마로 전개되어 가고 있다.
이와 관련, 김씨는 19일 “서울에서 朴哲彦씨 등이 ‘후보로 나가서는 안된다 ’는 압력과 협박을 해왔지만 나는 후보사퇴를 강력히 반대했다 ”고 밝히고 “세무사찰 위협, 정보기관의 감시 등으로 鄭후보를 지원하는 주위인사들에 대해 음성적인 압력이 가해졌다 ”고 강조했다. 김씨는 또 “이런 일이 모두 나 때문에 발생한 것이며 내가 죽는 것이 남편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면서 “나의 자살기도가 정치적 쇼라는 말도 있으나 나는 그런 짓을 할 여자가 못된다 ”고 주장했다.
반면에 정씨 반대측에서는 후보등록일에 이같은 일이 일어났으며 정말 자살할 의도가 있었다면 더 확실한 방법을 택했을 것이라고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복용한 수면제의 양도 치사량이 되지 못하고, 팔목을 끊는 시늉만 한 점으로 미루어 납득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김씨의 자살기도와 관계없이 정후보는 후보사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뒤 선거구 곳곳을 누비며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나섰고 다른 진영에서도 이 사건이 끼칠 이해득실을 조심스레 분석하면서 대응전략에 나서고 있다.

廬대통령 입지까지 심판받는 상황
처음부터 이 지역의 선거는 세인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5공핵심으로 지목돼 공직에서 물러났던 정씨가 자신의 명예와 자신을 지지했던 선거구민의 자존심을 되찾겠다며 무소속출마를 선언했고, 그의 출마포기 설득에 실패한 민자당은 廬泰愚대통령이 신임하고 총애하던 측근의 한사람인 文熹甲 청와대경제수석을 공천하기에 이르렀다.
13대 총선에서 유효투표의 54%인 5만2천8백여표를 얻은 舊與와 3당합당으로 형성된 거대 新與의 거물 사이에 정치판도를 뒤엎을지도 모르는 혈전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鄭후보로서는 정치적으로는 물론 인간적으로도 사활이 걸린 일전이고, 文후보로서는 3당통합의 당위성은 물론 노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까지 심판받는 상황이기 때문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정후보는 낙선을 하더라도 문후보에게만은 질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자신의 명예회복은 물론 여권의 온갖 설득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출마를 강행한 명분이 빛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문후보도 현정권의 정당성까지 걸려 있는 만큼 2등이나 3등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다.
여기에 지난 총선에서 공화당후보로 출마, 2만2천여표로 2위를 했던 白承弘씨가 민주당(가칭)공천을 얻어 3파전의 열기에 불을 당겼다. 백후보는 문후보와 정후보의 與대與싸움에서 어부지리를 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두 후보를 싸잡아 공격하며 야당 성향 표를 결집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진보정당 결성을 위한 정치연합 운영위원이며 대구지부 위원장인 金顯根씨는 이번 선거를 통해 3당합당에 의한 보수대연합의 본질을 폭로하고 분쇄하는 돌파구를 마련하는 한편 여당의 들러리 역할만 해온 보수야당의 책임도 준엄하게 따지겠다고 벼르고 있다.
출마자 모두가 慶北高출신으로 동문끼리의 혈전이라는 점도 이번 선거에 관심을 고조시키는 요인이다. 정후보가 32회 문후보가 37회, 백후보가 43회, 김후보가 58회로 동문회의 한 관계자 말마따나 경북고 70여년의 역사상 가장 불행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아이 싸움이 어른 패싸움으로 확대 ”
선거양상이 과열되고 혼탁해지면서 西甲구 선거가 東海?永登浦乙 선거때보다 더한 금권 타락선거로 더럽혀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민자당은 지난 17일 지구당개편대회에 소속 국회의원 50여명이 현지로 내려가 기세를 올렸으며 민주당도 20일 지구당창당대회에 소속의원과 당간부들을 대거 투입, 마치 중앙당 전체가 대구로 옮겨진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대구시민들 사이에는 여야 정치인 모두가 “아이 싸움을 어른 패싸움으로 확대시키는 비이성적인 짓을 하고 있다 ”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후보들마다 출마의 명분과 당위성이 있고 당선되지 않으면 안될 필연론이 있겠지만 어쩔 수 없이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는 주민들의 심리적부담이나 당혹감 또한 적지 않다. 소위 TK라는 사람들 모두가 오래 전에 대구를 떠나 서울에서 출세한 사람들인데 선거때만 되면 고향을 들먹이며 고향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는 것이다. ‘TK 출신 서울사람 ’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정작 대구시민들은 명분도 실리도 찾지 못한 채 ‘투표기 ’의 노릇만 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30대의 한 택시 운전사는 이 지역에서 대통령을 3명이나 배출하고 TK가 이 나라의 실세를 쥐고 있다고들 하지만 대구가 실제로 나아진 것이 뭐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일개 지역구선거가 전국 차원으로 확산되고 대구시 전체가 뜨겁게 달아오르자 선거에 직간접으로 관계가 있는 인사들은 물론 선거구민들까지 하루빨리 ‘TK목장의 결투 ’가 끝났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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