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불만 잠재우고 개혁에 박차 가한다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6.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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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대법원장의 대법관 인선 ‘막전막후’

 
이용훈 대법원장 체제가 대법관 구성을 완료했다. 이대법원장은 예상대로 안정을 택했다. 그가 제청한 다섯 명의 대법관 후보자 가운데 네 명이 정통 법관들이다. 검찰 출신인 안대희 서울고검장을 빼면 사실상 전부 법원 내부 인사이다.

이대법원장은 지난 7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김능환 울산지법원장, 박일환 서울서부지법원장, 이홍훈 서울중앙지법원장, 전수안 광주지법원장, 안대희 서울고검장 등 다섯 명을 대법관 후보자로 제청했다. 7월10일 퇴임하는 강신욱 대법관 등 대법관 다섯 명의 후임자로 이들을 추천한 것이다. 대법관 제청자문위원회가 열다섯 명의 후보자를 추천한 지 이틀 만이다.

이번 대법관 인선을 앞두고 법원 안팎에서는 두 가지에 주목했다. 이른바 ‘재야파’ 대법관이 등장할 것인가와 학계 인사가 처음으로 대법관에 진출할 것인가였다. 결과적으로 둘 다 이루어지지 않았다.

‘재야파’ 대법관은 참여연대나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약칭 민변) 등이 강력하게 주장했다. 청와대에서도 내심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재야파 대법관’은 애초부터 이대법원장의 머리 속에 들어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19일 단행했던 대법관 인사에 법원 내부의 불만이 워낙 높았기 때문이다. 소장·개혁파 판사들을 대표해 목소리를 내다가 사표를 내고 변호사 활동을 하던 박시환 변호사와 원광대를 나온 김지형 부장판사가 대법관이 된 것이 원인이었다. 두 사람은 사시 21회다.

이번에 이대법원장이 제청한 후보자들이 사시 14~18회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당시 인사가 얼마나 파격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대법관 인사 이후 법원 내부에서는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이번에는 정통 법관들이 대법관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한 부장판사는 “이대법원장이 정통 법관들을 제청하지 않았다면 내부 반발이 가시화되었을 수도 있다”라고 최근의 법원 분위기를 전했다.

“흠 없는 재야 인사 찾기 어려웠다”

물론 재야에서 손색없는 후보가 있었다면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한 부장판사는 “박시환 대법관도 부장판사로 있다가 변호사 활동을 한 지 2년 정도밖에 안 됐다. 지난해 대법관 후보들을 물색하면서 오랫동안 변호사를 한 사람 중에서도 후보자를 찾았는데 없었다”라고 말했다. 재산 형성 과정 등에서 이른바 ‘흠’ 없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론이 아니라 실제 ‘누구냐’라는 문제로 들어가면 재야에서 사람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를 살리기 위해 학계 출신 중에서 대법관을 제청하려던 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대법원장이나 청와대는 이 부분에 대해서 의지가 강했으나 거론된 후보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탈락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대법원은 대법관 추천이 들어오면 후보들의 재산이나 경력 등을 철저히 검증한다. 법조계 일각에서 “학계라는 출신보다는 그가 어떤 사람이냐가 더 중요하다”라는 주장이 불거졌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대법원장은 대신 안대희 서울고검장과 전수안 광주지법원장을 제청하는 것으로 ‘맛’을 냈다. 2002년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널리 알려진 안대희 고검장은 스타 검사이다. 그의 이미지가 대법관 자리와 썩 어울리는지는 의문이지만 대법원이 다루는 사건의 1/3이 형사 사건이라는 점에서 볼 때 엉뚱한 인선은 아니다.

대법원 사정에 밝은 한 법조계 인사는 “안고검장이 대법관 후보직을 수락한 것은 고마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거부할 수도 있는데 수락함으로써 인사가 빛나게 되었다는 것이다.전수안 광주지법원장은 사시 18회이지만 기수보다도 ‘여성’이라는 점이 더 주목되었다. 경제인 등의 ‘화이트칼라 범죄’, 여성 관련한 범죄 등에서 엄격한 판결을 내려 ‘개혁파’로 분류된다. 이번 대법관 인선에서 정통 법관들이 대거 제청되었지만 낡았다는 인상이 덜한 것은 ‘여성’과 ‘개혁’을 만족시키는 전법원장이 제청된 데 힘입은 바 크다.

대법원 주변에서는 이대법원장이 막판까지 후보자들을 확정하지 못하고 청와대에 올라갔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와 관련해서는 노대통령의 사시 동기들이 주목된다. 이번에 제청된 김능환 울산지법원장과 안대희 서울고검장이 노대통령과 같은 사시 17회이다. 노대통령은 역시 사시 17회로 유력한 후보였다 탈락한 김종대 창원지법원장과 남다른 관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 안팎에서는 이대법원장이 제청한 대법관 후보들에 대해 대체로 “무난하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물론 참여연대처럼 “변화와 개혁이 더 나아가지 못하고 퇴행했다”라고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대법원장은 이번 인선을 통해 내부 불만을 잠재우면서 이홍훈 서울지법원장과 전수안 광주지법원장 등을 제청한 것에서 보듯 개혁적인 흐름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대법관 인선’이라는 큰 문을 넘은 이대법원장은 앞으로 법원 내부를 개혁하는 데 진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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