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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CF 바탕 화면이 되다

광고계 ‘월드컵 마케팅’에 중독…대표 선수 겹치기 출연도

전영우 (인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ㅣ 승인 2006.06.09(Fri)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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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 국가대표 선수, 감독이 모델로 출연하는 광고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사진은 박지성 선수를 모델로 내세운 한 텔레비전 광고.  
매스컴은 일찌감치 월드컵 열기로 달아올랐다. 특히 광고에서 나타나는 월드컵 열기는 광적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거의 모든 기업에서 ‘월드컵 특수’를 잡고자 치열한 광고 전쟁을 벌이고 있다. 대한민국 광고에는 오로지 월드컵만이 존재하는 듯하다. 월드컵 관련 광고는 업종 불문이다. 금융기관에서부터 가전제품, 자동차까지 월드컵과 무관한 광고를 찾기가 오히려 어려울 정도다.

월드컵을 이용하는 광고의 홍수 속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은 그라운드 이상으로 텔레비전 화면을 누비고 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박지성, 이영표 두 선수는 단연 눈에 띈다. 여기에 차범근 감독을 위시하여 불운한 스타 이동국, 박항서 코치 등 월드컵을 연상시키는 사람은 거의 모두 광고에 출연하고 있다. 히딩크 감독과 아드보카트 감독도 광고 모델 대열에 함께하고 있다. 특히 월드컵에 열광하는 젊은 세대가 주요 고객인 이동통신회사의 광고는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대표 선수와 감독, 강렬한 붉은색은 2006년 대한민국 광고의 공통된 코드로 떠올랐다.

외국에서는 보기 힘든 현상

개인 기량을 겨루는 올림픽과 달리 월드컵은 축구라는 스포츠를 통해 국가 간의 기량을 겨루는 대회이다. 자연스레 국가의 위상이 걸려 있고  월드컵에 출전한 나라의 국민은 자존심을 걸고 월드컵 열풍에 빠져든다. 그러므로 월드컵은 어쩔 수 없이 다분히 국가주의와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대회이다. 어느 나라에서건 스포츠 마케팅은 매우 효과적인 광고기법이다. 올림픽은 진작부터 광고로 인해 상업주의에 물들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아마추어리즘을 표방하는 올림픽이 그럴진대, 월드컵의 상업주의는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월드컵 관련 광고는 업종 불문이다. 금융기관에서 자동차까지 월드컵과 무관한 광고를 찾기가 오히려 어려울 지경이다.  
하지만 2006년 한국의 월드컵 열풍은 다른 나라의 스포츠 마케팅과는 분명 큰 차이가 있다. 월드컵이 아무리 인기 있는 이벤트라 할지라도, 광고마다 온통 붉은색이 나부끼는 현상은 분명히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어렵다. 월드컵 열기라면 결코 한국에 못지않을 유럽의 경우를 보더라도 한국처럼 광고에서 월드컵 일색인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광고의 생명은 독창성이다. 독창성이 강조되는 이유는 다른 광고와 차별화하기 위함이다. 차별화된 광고만이 소비자의 기억 속에 남아 광고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광고에서 월드컵을 말하는것은, 그만큼 다른 광고와 차별화를 이루기 어려움을 의미한다. 일반 소비자에게 월드컵을 이용하고 있는 그 수많은 광고가 어떤 제품을 광고하고 있는지 아느냐고 물어본다면, 답변할 소비자는 극히 드물 것이다. 월드컵이라는 동일한 주제의 광고 홍수 속에서 차별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광고 효과를 분석하는 외국의 경우, 우리처럼 광고에서 월드컵 일색인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경쟁하듯 애국심·민족적 자존심 강조

예를 들어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국제적 스포츠 이벤트는 올림픽이다. 올림픽 시즌이 되면 여러 기업에서 올림픽을 소재로 한 광고를 집행한다. 이때 인기 있는 스포츠 스타가 광고 모델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다. 올림픽을 주제로 한 광고의 대부분은 올림픽 정신을 강조하는 내용이거나 스포츠 자체를 소재로 삼고 있다. 유명 스포츠 스타 모델에 의존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올림픽을 주제로 하는 광고도 공식 스폰서를 맡은 기업에 한정된다. 미국 올림픽 팀의 공식 스폰서였던 코닥의 광고는 올림픽 출전을 꿈꾸는 어린이들의 훈련 과정을 잔잔하게 보여주는 내용으로, 이들의 성장을 기록하는 데 코닥이 기여하고 있다는 공익 광고였다. 공식 스폰을 맡은 기업을 제외하면, 다른 모든 광고가 평상시와 다름없이, 올림픽과 무관하게 집행된다.

미국에서 가장 있기 있는 스포츠 이벤트인 슈퍼볼(super bowl) 때도 마찬가지다. 거의 전 미국인이 시청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슈퍼볼 게임 시간대는 가장 비싸고 인기 있다. 이런 빅 이벤트에 집행되는 광고의 대다수는 슈퍼볼과는 전혀 무관한 상품 광고이다. 유명한 미식축구 선수들이 광고에 등장하는 경우도 드물다. 온 국민이 열광하는 스포츠 이벤트라 할지라도, 광고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내용으로 냉정하고 과학적으로 광고가 집행된다.

그렇다면 광고 효과에서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월드컵 마케팅이 홍수를 이루는 원인은 마케팅적인 측면이 아니라, 문화적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것 같다. 홉스테드(Hofstede)라는 학자는 문화권을 집단주의 문화(collectivism)와 개인주의 문화(individualism)로 분류했다. 일반적으로 동양권의 문화가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경향을 보이지만, 문화 차이와 관련한 국내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동양권에서도 상당히 개인적인 성향을 보이는 나라로 분류된다. 이웃한 일본에 비해서도 상당히 개인주의 측면이 강하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문화적 특성을 갖고 있는데도 불같이 일어난 집단적인 월드컵 열기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우리네 정서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한(恨)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월드컵 관련 광고들에서 거의 예외 없이 애국심과 민족적 자존심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의 월드컵 열풍이 그동안 쌓였던 민족적 한풀이의 장이라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은 더 이상 힘없는 세계의 변방이 아니라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우리에게 주는 축제의 장이었다. 자신도 몰랐던 저력과 실력을 확인하고 감동하는 축제의 장으로서 월드컵이 기능했던 것이다. 마케팅에서 집단적인 월드컵 열풍은 이런 추세에 편승하고 있어서 이성적으로 광고 효과를 계산하기보다는 한바탕 놀아보는 축제에 가깝다.

과도한 열풍 속에서, 월드컵 열기를 ‘집단 광기’로까지 표현하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문화적 특성으로서의 집단주의가 아닌 맹목적 애국주의적 광기를 경계하는 목소리다. 지극히 이성적이고 타당한 우려이다. 하지만 확신하는 것은, 이번 월드컵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건, 그저 신나는 한바탕 축제의 마당으로 지나갈 것이라는 믿음이다. 4년 전, 그동안 쌓였던 한을 푸는 잔치를 이미 치렀기에, 이제부터는 4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축제의 장을 그저 신명나게 즐길 만큼 성숙해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월드컵이 더 이상 한풀이를 위한 전장이 아니게 된다면, 아마도 지금과 같은 ‘월드컵 일색 마케팅’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지금 호들갑스럽게 느껴지는 월드컵 광고 열풍을 다시 돌아오지 않을, 성장 과정의 통과의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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