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맨얼굴이 거기 있었네
  • 최서희(투어도지탐여행사 실장) ()
  • 승인 2006.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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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의 숨결 넘치는 아프리카 여행 / 사파리.마사이 부락 등 이색 체험 풍성

 
스무여 시간을 꼼짝없이 기내에 발이 묶인 채 비싼 항공료를 지불해야 하는 곳, 시작부터 쉽지 않은 여정에 바짝 긴장하게 되는 곳이 바로 아프리카다. 의외로 비싼 도시 물가와 열악한 환경, 불안한 치안과 질병에 대한 염려. 그것이 아프리카의 현실이며 여행자가 겪는 상투적인 이미지들이다.

그러나 한 번쯤 아프리카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원시의 생명력이 꿈틀대는 경이로운 대자연과, 사슴처럼 커다란 눈동자의 순수함이 살아있는 곳이 아프리카라는 사실을 금방 알게 된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아프리카의 모습을 다 보여주지는 못한다. 긴 여정을 통해 나름대로 그 실체에 조금씩 다가설 뿐이다.  

긴 비행으로 전신의 피로가 몰려들 즈음, 동아프리카의 관문 나이로비와 조우한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공항 카운터를 벗어나 만나는 도심 풍경은 금세 긴 비행의 지루함을 덜어준다. 연초록 숲과 현대식 고층 빌딩이 즐비한 도심, 태양과 대지가 부여한 자연의 피부에 더 이상 그을릴 필요가 없는 이 땅의 주인들은 이방인을 마주하면 밝은 미소부터 꽃 피운다. 

아프리카의 여행의 첫 시작은 파란 하늘과 닮아 있는 푸른 미소 속에서 시작된다. 리얼 아프리카, 사바나 대초원의 사파리 아프리카는 사방 천지가 푸르다. 여름과 겨울 시즌마다 사파리 지역이 구분되는 게임 드라이브는 아프리카 대자연의 속살과 호흡할 수 있는 히든 카드다. 먼지를 일으키며 인간이 터놓은 길을 따라 야생 동물 보호 구역의 비포장도로를 지프로 누비는 사파리. 야생의 동물들을 코앞에서 들여다보는 흥미 만점의 게임 드라이브다.

 
땅과 하늘이 맞닿은 듯한 드넓은 초지를 달리는 느낌은 온갖 관념이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듯한 상쾌함과 후련함 그 이상이다. 한낮의 뜨거운 대지가 식어갈 무렵, 국립공원 하늘은 다양한 빛깔의 저녁 노을이 사방으로 퍼져 신비한 기운이 감돈다. 태초의 지구가 이러했을까. 붉은 해와 그 주변의 연보라 빛 풍광들은 눈물겹게 감동적이다.

사파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국립공원 내 마사이 부족 체험이다. 정부로부터 허가받아 국립공원 내 유일하게 삶의 터전을 일구고 살아가는 이들. 마사이족은 그 무엇보다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다. 동아프리카 역사상 단 한 명도 노예로 팔려 나가지 않았던 그들. 그들의 호전성은 용사의 자존심에 다름 아니다. 마사이족의 오늘은 우리가 상상하던 모습이 아니다. 붉은 낭가를 휘날리며 자전거를 타고, 양복을 입고 한 손에 막대를 들고 있다. 변형된 모습과 조악한 장신구를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마사이족이지만, 동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용맹한 종족의 자존심을 끝까지 고수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인다.

뜨거운 햇빛이 내려 쪼이는 마사이족 마을 공터에는 방인을 위한 환영 행사 준비가 한창이다. 갖가지 장신구로 치장한 마사이들이 우리네 통?반장쯤 되어 보이는 마을의 우두머리 지시에 따라, 이방인을 위한 잔치를 시작한다. 겅중겅중 뛰어 오르내리는 전사의 춤 ‘아두무’는 언제보아도 신기하다. 특별한 전통 악기는 없지만 목청껏 내지르는 그들만의 음율은 여행자의 마음을 울리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날 밤 저녁 메뉴는 직접 잡은 소 바비큐. 모닥불을 지펴 돌을 달궈 구워내는 바비큐는 지상의 어떤 요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최상의 요리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끌벅적 어울려 친구가 되는 축제는 깊은 밤까지 이어졌다. 국립공원 한 쪽, 사자가 울음 소리를 내는 대평원 위에 이방인들의 안전을 위해 정승처럼 한발로 서서 새벽을 지켜내는 마사이족, 그들이 있기에 아프리카가 더욱 빛을 발한다.

마사이 부족 마을을 벗어나면 영국의 탐험가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발견한 빅토리아 폭포로 갈 수 있다. 빅토리아 폭포는 아프리카 남부 잠비아와 짐바브웨 국경을 흐르는 잠베지 강에서 시작된다. ‘천둥소리 나는 물보라’라는 뜻의 현지어 ‘모시 오나 튜냐’는 나이아가라, 이과수폭포에 이어 세계 3대 폭포로 늘 그 위용을 과시한다. 

 
굽이쳐 천길 낭떠러지기로 쏟아지는 물줄기, 쌍무지개 그려내는 폭포…. 폭포의 포말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며 여행객의 옷섶을 적시지만, 이대로 좋다. 거대한 폭포가 내뿜는 굉음에 먹먹해진 청각은 어느새 신나는 마린바(실로폰 종류) 연주에 도취된다. 폭포 주변 토산품 점은 언제나 외지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아프리카 전역으로 판매되는 짐바브웨 토산품들은 그 솜씨가 빼어나, 한눈에도 장인이 만든 듯한 느낌이 난다. 거석(巨石)의 나라답게 돌로 깎아 만든 제품들이 가장 인기다.
흥미로운 것은 즉석 물물 교환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상인들은 모자, 볼펜, 운동화 같은 관광객들의 물건에 관심을 나타낸다. 밀고 당기던 흥정이 이루어지면 교환한 물건보다, 부둥켜안고 진한 악수를 나누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빼앗긴다. 이곳에서는 언어의 장벽은 아무 문제가 안 된다.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거래가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흥정은 지구촌 친구를 사귀는 기법처럼 느껴진다.

동남부 아프리카를 두루 섭렵하고 다녔지만, 유독 이곳만큼은 늘 ‘그리운 잔지바르’로 표현된다. 잔지바르는 탄자니아령에 속한 작은 섬이다. 아프리카 문화와 아랍 문화가 공존하는 잔지바르는 섬은 그 자체가 한 장의 그림엽서다. 옛 아랍 범선인 ‘다우’와 넘실대는 인도양이 자아내는 풍경은 황홀함 그 자체이다. 살랑대는 바람을 맞으며 포근한 인도양에 취한 이방인들은 시간이 그대로 멈추기를 고대한다. 나 역시 그러했다.  

인도양의 밤 정취는 낯설지만, 아름답다. 잔지바르의 수도 스톤타운의 이색적인 밤 문화는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아랍 성채 밖 해안도로에 마련된 야시장은 잔지바르 여행의 보너스라 할 수 있다. 랍스터를 비롯한 해산물을 즉석에서 구워내고 흥정하는 모습은, 여느 아프리카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고운 백사장, 산호초와 녹음이 우거진 아름다운 한 점 섬 잔지바르. 그 곳은 나이 마흔에 접어든 보랏빛 인생의 분수령이 아닐까 싶다.

아프리카에서는 한 달의 여정도 길지 않다. 미처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호기심을 떨쳐버리기는 쉽지 않은 일. 하지만 그보다 더욱더 내 발목을 잡고 마음을 후려치는 것은 발길 닿았던 곳의 숨 막히는 풍경과 귓전에 맴도는 자연의 소리다. 거기에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아프리카 해맑은 아이들의 눈동자가 머릿속을 맴돈다. 아프리카는 내 삶이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하고, 그 열매가 성글게 익을 수 있도록 해주는 인생의 휴식처가 되어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위풍당당한 빅토리아 폭포, 목 놓아 울어도 끄덕 않을 사바나 대초원, 애잔한 아름다움으로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잔지바르 섬…. 이 모든 아프리카의‘보석’들은 늘 보랏빛 향기를 품어내며 또 다른 일탈을 꿈꾸게 만든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보랏빛 향기가 선명하다. 나는 오늘도 아프리카를 꿈꾼다.

편하고 '럭셔리'하게 검은 대륙 즐기는 법
아프리카를 ‘럭셔리’하게 여행하는 방법, 호화판 열차 블루 트레인을 타는 것이다. 승객수보다 승무원이 더 많고, 티 서비스로 시작되는 모닝콜부터 편안한 잠자리를 위한 와인 한 잔까지 여행객들이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없을 때까지 서비스가 제공된다.

블루 트레인은 아프리카 대륙의 남쪽 끝인 케이프타운에서 출발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행정 수도인 프리토리아를 거쳐 우간다, 케냐, 탄자니아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짐바브웨의 빅토리아폭포까지 달린다. 구간 별로 나눠 탑승할 수 있는데, 프리토리아에서 케이프타운 코스가 가장 인기다. 1박 2일에 걸쳐 이 구간을 돌파하는데, 비교적 짧은 시간에 트레인 사파리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코스다. 여행자들은 객실 모니터를 통해 한밤중에 침대에 누워서도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아프리카의 자연을 감상한다. 모든 승객이 정장을 해야 하는 저녁식사 때는 남아프리카 전통요리가 포함된 다국적 스타일의 정찬이 제공된다.

블루 트레인의 유일한 단점은 비싸다는 것. 프리토리아에서 케이프타운까지 1600㎞를 이동하는 데 드는 요금은 성수기 럭셔리 스위트 기준으로 하룻밤에 약 10470R(약 1백25만원)이다. 자세한 정보는 블루트레인 (www.bluetrain.co.za)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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