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지성의 성과를 곱씹다
  • 이문재 (시인) ()
  • 승인 2006.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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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일의 책] <에드워드 사이드 다시 읽기>, 삶과 비평 재분석

 
“다시 읽기는 꼼꼼히 읽기이고, 처음처럼 읽기이고, 그리하여 언제나 새로 읽기이다. 국내 영문학자들에게 오리엔탈리즘으로 널리 알려진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를 다시 읽었다. 사이드는 팔레스타인 출신 미국 학자로 1978년 <오리엔탈리즘>을 발표하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이후 탈식민주의론을 선도하는 한편, 미국의 대 아랍 정책을 매섭게 공격하는 행동하는 지성의 모델로 꼽혀왔다.

김상률 교수(숙명여대 영문학부)와 오길영 교수(충남대 영문과)가 엮은 <에드워드 사이드 다시 읽기>는, 2004년 11월 사이드 1주기를 맞아 기획된 학술 대회에서 출발했다. 사이드의 제자이자 사이드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김성곤 교수(서울대 영문학)의 총론적 글을 비롯해 탈식민주의를 연구해온 소장학자들의 기발표 논문 여덟 편이 수정·보완되었고, 여기에 미발표 논문 세 편이 추가되었다.

 
사이드가 한국 지식 사회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84년. 그러나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은 한반도의 특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대신 동구권 몰락 이후, 한국 지식계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최후의 대안’처럼 들이닥쳤다.
사이드와 호미 바바, 가야트리 스피박 같은 탈식민주의 이론가들이 국내에서 본격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였다. 21세기를 앞두고 젊은 연구자들은 탈식민주의론에 매료되었다. 마르크스주의에 기대지 않고도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진보적 담론을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이드는 망명객이자 경계인이었다. 영국령 예루살렘에서 태어났으나 열세 살 때인 1948년 이스라엘이 들어서자, 카이로로 피난을 가야 했다.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 집에서는 아랍어를 쓰면서 대학에서는 영어로 강의했고, 기독교 신자이면서 이슬람을 옹호했다. 팔레스타인 망명 국회의원이었지만 팔레스타인해 방기구(PLO)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가 정도에서 벗어나자 그와 결별했다.

 
오리엔탈리즘은 한마디로 동양에 대한 서구의 오만(무지)과 편견(차별)이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에 이어 <문화와 제국주의>(1993)를 통해 서구 제국주의가 단순히 부를 축적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것은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우열 관계로 보고, 동양을 당연히 지배(구원)해야 할 열등한 ‘타자’로 인식한 과정이자 그 결과라는 것이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사이드의 성과의 한계를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한다. 1부에서는  사이드의 삶과 비평을 다뤘고, 2부에서는 사이드의 비평 전략이 갖고 있는 한계, 가령 ‘저항 이후’에 대한 상대적 무관심을 분석한다. 3부는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사이드와, 사이드 이후의 탈식민주의를 조명한다.

지적 테러리스트로 불려

사이드에게 문학(비평)은 “우리의 현실이나 역사적 삶과 결코 분리되지 않는 것, 따라서 세속적이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오염된 현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지적 테러리스트라고 불린 그는 문학적 순수주의와 분리주의를 경계했다. 사이드는 제국주의가 남긴 단 하나의 긍정적인 측면, 즉 ‘문화의 혼합과 이중 언어의 장점’을 되살리고 ‘타자’와 ‘차이’를 인정하며,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서 ‘통합과 연관’의 문화로 나아가자고 제안했다.

섀무얼 헌팅턴이나 시오니즘이 지원하는 미국 보수주의자들에게 사이드는 불편한 존재였다. 하지만 식민주의의 망령이 사라지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사이드는 절실한 존재다. 한국 사회에서 오리엔탈리즘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동양 안에서 또 다른 동양을 바라보는 제2의 오리엔탈리즘이 있다. 이주 노동자나 탈북자를 비롯해 노인, 여성 등 ‘타자’와 마이너리티에 대한 한국 사회의 억압은 저 제국주의의 ‘힘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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