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흑기사’ 꼭짓점은 누구인가
  • 소종섭 기자 (kumkansisapress.comkr)
  • 승인 2006.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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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은행 헐값 매각을 주도한 몸통’을 밝히려는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검찰은 매각 과정에 관련된 이른바 ‘이헌재 사단’의 중심 인물인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의 행적에 주
지난 6월19일 감사원은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사건’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감사원은 이 사건 관련자들 사이에 대가가 오갔는지, 실제로 매각 과정을 누가 주도했는지, 누가· 왜 헐값 매각을 추진했는지 따위의 핵심 사항은 알아내지 못했다.

이제 사건의 실체를 밝혀내는 일은 고스란히 검찰의 몫이 되었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는 2003년 10월 외환은행을 인수한 지 3년 만에 4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거둔 뒤 세금 한 푼 안 내고 빠져나가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이 과정에서 정부 고위 관료들이 론스타와 결탁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 사건이 주목되었다. 국민의 눈과 귀가 검찰 수사에 쏠리는 이유다. 민주노동당은 지난 6월22일 “지난 외환위기 이후 8년여 동안 우리 사회에서 횡횡한 투기 자본과 정·관계 인사들의 부정한 담합, 그리고 그에 따른 비리를 대표하는 사건임을 명심하고 검찰이 비상한 각오로 수사에 임할 것을 촉구한다”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 때문인지 감사원 발표 이후 검찰은 더욱 수사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검찰은 지난주 검사 두 명을 수사팀에 보강해 검사 여덟 명과 수사관 등 70여 명이 밤을 새워가며 수사하고 있다. 검찰은 7월 말까지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마칠 계획이다.

주목되는 인물은 단연 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이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이미 그의 출국을 금지시키고 계좌를 추적해왔다.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이 전 부총리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서 조사할 수 있다”라고 말한 바여서 검찰 주변에서는 그가 조만간 검찰에 소환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왜 이 전 부총리가 주목되는 것일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지금 등장하는 인물만 가지고는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매각되는 과정을 도대체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 인물들은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현 보고펀드 대표)과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현 한국투자공사 사장), 김석동 전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 1국장(현 재정경제부 차관보) 등이다.

그러나 이들 수준에서 외환은행 매각이 결정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랫동안 이 문제에 천착해온 한나라당 최경환 의원은 이렇게 주장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에는 경영진인 외환은행장의 동의와 주주인 수출입은행 및 한국은행을 설득하는 일, 그리고 외환은행의 실질적 주주인 정부의 동의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금융감독위원회의 승인도 있어야 하고 관례상 은행을 팔려면 청와대의 허락도 받아야 한다. 론스타는 이 모든 난관을 마찰음 하나 없이 돌파했다. 관계와 금융권 곳곳에 포진한 속칭 ‘이헌재 사단’이 주목될 수밖에 없다.”

민주노동당 ‘론스타 게이트 대책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심상정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의혹의 몸통인 이헌재를 구속 수사해야 한다”라고까지 주장했다. “감사원의 발표로 외환은행이 매각되는 과정에 재경부와 금감위 심지어 청와대 비서관들조차 일사 분란하게 움직였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검찰은 누가 배후에서 이 막강한 세력을 움직이며 불법 매각을 지휘했는지를 밝혀야 한다. 론스타 게이트에 연루된 관료와 금융권 인사들이 하나같이 이른바 ‘이헌재 사단’에 속한 인물이라는 점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감사원 발표 후 검찰 수사 잰걸음

‘이헌재 사단’은 이 전 부총리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거대한 인맥군을 지칭하는 말이다.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두 번이나 재경부장관을 지낸 이 전 부총리는 경제 관료를 중심으로 막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종 모임에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분위기를 주도하는 그의 인간적인 매력도 ‘이헌재 사단’이 형성되는 데 한몫을 했다.

실제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된 인물들 가운데는 그와 이런저런 관계에 있는 사람이 많다. 변양호 보고펀드 대표와 김석동 재경부 차관보는 이씨의 경기고 후배이고 이강원 한국투자공사 사장은 광주서중 후배다. 외환은행의 대주주인 수출입은행 행장이었던 이영회씨도 재경부 근무 시절 이 전 부총리의 오른팔 역할을 했다.

정부부처 한 고위 관료는 “‘이헌재 사단’이 정기 모임을 갖거나 구심력을 갖는 조직은 아니다. 그러나 이헌재 사단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이 전 부총리로부터 인사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라고 말했다.

 
이 전 부총리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시선을 끄는 또 다른 이유는 외환은행이 팔릴 당시 그가 론스타의 법률 대리인인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으로 있었기 때문이다. 김&장 법률사무소는 당시 론스타에 법률 자문을 했을 뿐 아니라 실사 작업을 총괄하는 등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이 전 부총리는 공직에서 물러나 있을 때마다 김&장 법률사무소의 고문으로 있는 등 이 법률사무소와 남다른 관계를 유지해왔다.

검찰도 진작부터 이런 부분에 주목해왔다. 지난 6월14일 현대자동차 로비스트로 활동했던 김동훈 전 안진회계법인 대표로부터 2억원을 받은 혐의로 변양호 보고펀드 대표를 구속한 것이 신호탄이었다. ‘이헌재 사단’ 핵심 멤버였던 변씨의 구속은 검찰의 칼날이 곧 이 전 부총리에게 옮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론스타 법률 대리인 ‘김&장’ 고문 맡아

검찰 한 관계자는 검찰의 수사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꼬리를 잡은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몸통까지 잡을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유추해보면 검찰이 현재 이 전 부총리와 관련해 무언가 단서를 잡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계좌 추적을 하고 출국을 금지시킨 것도 이런 정황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몸통’이라고 표현되는, 이씨를 구속할 만한 확실한 혐의를 검찰이 확보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확보하느냐 못하느냐의 경계선상에서 검찰은 마지막으로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두 가지 부분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는 이 전 부총리의 재산 형성 과정이다. 특히 지난해 3월 불거졌던 ‘경기도 광주 땅을 위장으로 매각했다’는 의혹을 눈여겨 보고 있다. 당시 이 전 부총리의 부인으로부터 땅을 사들인 열한 명이 매각을 전후해 농협에서 모두 71억원을 대출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위장 매각 의혹'이 증폭되었으나 이 전 부총리가 물러나면서 정확한 사실이 규명되지 않았다.

검찰은 또 매각 주간사였던 모건스탠리 신재하 전무와 이 전 부총리 사이에 금품 거래가 있었는지를 집중 추적 중이다. 검찰은 꼭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된 부분이 아니어도 무언가 이 전 부총리와 관련된 혐의를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 재산 형성 과정 등에 주목

최근 금융권에서는 이 전 부총리와 관련해 또 다른 얘기가 퍼지고 있다. 국민은행의 외환은행 인수 작업과 이씨가 관련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전 부총리가 2004년 경제부총리로 입각하기 전에 1년 이상 국민은행 고문으로 일한 적이 있고, 국민은행 강정원 행장이 이씨의 경기고 후배라는 점 등이 정황으로 거론된다. 강행장 또한 ‘이헌재 사단’의 일원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관련지어 이 전 부총리가 워낙 주목되다 보니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은행의 움직임과 연결 지어 보는 흐름이 생겨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검찰과 재계·정치권 안팎에서는 ‘이 전 부총리가 과연 꼭짓점인가’에 대해 다른 시각이 있다. 아무리 영향력이 막강하다고 해도 어쨌든 당시 그는 김&장 고문이었지 정책 결정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사람들은 청와대를 주목한다.

감사원 고위 관계자는 “감사 결과 대통령에게는 보고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최경환 의원은 “청와대 수석까지 알고 있었던 사항을 대통령이 몰랐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김영선 대표가 지난 6월20일 취임 기자 회견에서 특검과 국정조사 필요성을 거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대표는 “검찰 수사를 지켜본 뒤 미흡하면 국정 조사를 실시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특검도 가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DJ 정권 당시 청와대 의심

정치권에서는 이 사건이 내년 대통령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에 최초로 자본 참여 의사가 있다는 것을 접수한 시점은 김대중 정권 후반인 2002년 10월25일이다. 노무현 정권이 막 출범하기 시작한 2003년 7월 외환은행을 매각하기로 결정되었으며, 2003년 10월30일 인수대금 입금이 완료되었다. 두 정권에 걸쳐 매각이 이루어진 것이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사실상 정부가 소유한 은행이 매각되는 과정에 정부가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우리는 노무현 정권보다는 김대중 정권이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내년 대선 때까지 이 문제를 쟁점화하면서 정치적인 효과를 노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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