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철책 사업도 삼성 밀어주기?
  • 정희상 전문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6.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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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무리한 업체 선정으로 특혜 의혹 불러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올 들어 잇따라 방위 사업 분야에서 독주하는 현상에 대해 특혜 시비가 일고 있다. 국방부 방위사업청(방사청)은 지난달 23일 전방관측소(GOP)과학화 경계 사업자로 ‘삼성에스원, 삼성테크윈, 삼성SDS’ 컨소시엄을 선정해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입찰에 참가했던 다른 업체들은 납득할 수 없는 삼성 봐주기식 결정이라며 특혜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삼성그룹의 세 계열사가 컨소시엄으로 참여해 따낸 전방 철책선 경계시스템 도입사업은 휴전선 1백55마일 전역에 걸쳐 소총을 든 경계 초병을 후방으로 빼고 대신 첨단 경계시스템을 설치하는 공사이다. 총 4천억원대의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이 사업에서 경계시스템을 직접 설치하는 공사에만도 1천억원대가 소요된다. 방사청은 6월 중순 시범 설치 사업자로 삼성그룹 계열사들로 구성된 에스원 컨소시엄을 선정한 뒤 국방 예산 41억원을 들여 동부전선 5사단 15km 철책 구간에 이스라엘제 광그물망(F-5000)을 설치토록 했다. 오는 8월까지 이 장비를 설치한 뒤 한 달간 시범 운용해 그 결과를 오는 10월 국회에 보고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원칙과 내부 규정은 물론 상식이 무시되는 이상한 결정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당초 국방부 방사청에서는 입찰 업체들에 요구 성능 충족 기준으로 국산 장비여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에 따라 삼성 컨소시엄을 제외한 다른 업체들은 국산 기술로 생산한, 성능이 입증된 감시 장비들을 제안서에 담아 제출했다. 대부분 광망식과 자력식 첨단 감시 장비들이었다.

그러나 삼성 에스원 컨소시엄은 명백한 수입 감지 시스템(이스라엘 트랜스 시큐리티 사의 F-5000)을 제출했다. 국내에서 조립 생산할 테니 국산 장비로 인정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본사 제품은 에스원이 국내에 설치한 적이 있지만 조립 생산품은 아직까지 선보인 적도 없이 ‘가상의 장비’인 셈이다. 삼성 컨소시엄을 밀어주기 위한 특혜성 결정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삼성 컨소시엄에 대한 특혜 의혹은 단일 감지 시스템 제안 요구를 위배했다는 데서도 드러났다. 5월10일 방사청은 입찰 업체들을 상대로 이 사업 제안요청서 설명회를 가질 때 무조건 한 개 기종으로 제안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이에 따라 SK C&C, 데이콤, 넥스원퓨처, 휴니드테크놀러지, S&S에이스, 한전KDN 등 다른 입찰업체들은 감지 시스템을 자력식 또는 광망식 중 한 개 기종만으로 제출했다. 반면 유일하게 삼성에스원 컨소시엄만이 이스라엘 광그물망에 보태 미국 화이버 센시스 회사에서 생산한 ‘광케이블 진동’도 같이 설치하겠다고 제안했다.

이 회사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에스원은 휴전선 철조망 본체에는 광망을, 최상단과 철책 아래 땅속에는 광케이블 진동을 각각 수입해 깔겠다는 제안이었다. 결국 방사청 요구 기준을 맞춘 업체들은 탈락하고 위배한 업체가 선정된 꼴이다. 다른 입찰 참가 업체들이 이번 사업 결정에 대해 명백한 ‘삼성 밀어주기’ 특혜라고 주장하며 반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함 있는 제품을 서둘러 채택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삼성 컨소시엄에서 휴전선에 설치키로 한 이스라엘제 광망이 이미 국내 군사 시설에 설치된 바 있는데, 운영 과정에서 치명적 결함이 지적된 제품이라는 점이다. 삼성에스원은 이 제품을 1998년 충북 중원에 있는 공군 제19전투비행단에 설치했고, 2000년에는 충남 해미에 있는 공군 제20전투비행단에 추가 설치했다. 문제는 이 제품이 하루에만도 수십 차례나 오작동이 발생해 공군에서 골칫거리가 되었다는 점이다. 당시 공군 비행장에 에스원 광망으로 결정하는 데 간여한 한 예비역 공군 장성은 “지금도 공군 비행장 주위에 깐 에스원 광망만 생각하면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진다”라고 말했다. 1km당 하루 100여 회 오경보하는 일이 예사였다는 것이다. 

  또 두 공군 비행장에 설치된 삼성 컨소시엄의 제안 제품은 침투자가 망을 절단하지 않고 해체한 뒤 침투하는 시험을 했을 때는 무용지물이라는 점도 드러났다. 1999년 11월23일에 실시된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시험(국방부 감사 제16130-45)과 1999년 5월 12일부터 14일까지 실시된 인천국제공항 공개시험 결과가 이를 입증한다. 당시 국방부 조사에서 에스원이 설치한 이스라엘제 광망은 니퍼 드라이버 절단기 등을 사용해 몇 분 만에 플라스틱 버튼을 열고 망 구멍을 열고 관통하거나 망 하단을 펜스 지지대로부터 분리하거나 망 상부 지지대를 눕히고 침투할 때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결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휴전선은 국가 안보의 최민감 지역이다. 목숨 건 침입자가 해체 침투의 허점을 이용해 침투할 경우 탐지율이 제로에 가까운 제품을 방사청에서 선정했다는 것은 ‘도박’이라는 말로 밖에는 설명하기 힘들다.

이에 대해 방위사업청은 “이번 사업은 협상에 의한 계약으로 업체를 선정하는 방법을 추진하기로 지난 4월3일 개최된 정책기획분과위원회 의결을 거쳐 제안서를 평가해 업체를 선정하도록 하는 규정과 절차에 따라 한점 의혹없이 진행되었다”라고 밝혔다. 또 에스원 장비의 결함지적에 대해 방위사업청은 “최근 3년 내 주요 유사 사업을 대상으로 제안요청서를 통해 공개한 평가 기준에 근거해 평가했다”라고 밝혔다. 사실상 기존에 군에서 검증된 이스라엘제 광망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중시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방사청이 당초 제시한 사계절 평가 시험조차 거치지 않고 8월이후 한 달여 설치한 뒤 9월에 보고서를 작성해 국회 보고 절차를 마무리하고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태도도 문제다. 휴전선처럼 기후 변화가 심하고 지형지물이 천차만별인 지역에서 제대로 된 감시 장비 성능 시험 평가를 하려면 최소한 춘하추동 일년 동안 설치해 장단점과 허점을 다 파악해야만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국내 다른 시설물에 설치된 광망 감지 장비는 특히 추운 겨울철을 지나면서 내부 손상과 오작동이 자주 일어나는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삼성 에스원의 수입산 조립 제품을 한달 여 설치해보고 성능 평가를 끝내겠다는 것은 시늉만 하겠다는 처사나 다름없다. 휴전선 철책 경계를 전자 장비로 대체하는 일은 국가 안보 측면에서나 남북 화해 흐름으로 보나 여느 국가 시설물보다 철저한 검증과 세심한 주의가 요구되는 사업이다.   

  결국 국회 국방위원회는 삼성 컨소시엄에 대한 국방부 방사청의 특혜 의혹을 낱낱이 규명해 이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시험 평가라는 것은 성능이 검증된 제품들 가운데 경쟁 관계에 있는 여러 장비를 동시에 현장에 설치, 장단점을 비교 분석한 뒤 최적의 제품을 선정해야 진정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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