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들키자 꼬리 내리고 줄행랑
  • 정희상 전문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6.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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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유그룹 주수도 회장 한 달째 잠적 피해자들 “재산 은닉 가능성” 체포조 결성

 

<시사저널>이 지난 4월부터 추적 보도해온 국내 최대 다단계 업체 제이유 그룹의 각종 불법혐의가 검찰 수사를 통해 하나씩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동부지검 형사 6부(김진모 부장검사)는 주수도 회장이 숨겨온 2백억원대 비자금을 찾아내는 한편 주씨의 핵심 측근들을 줄줄이 소환해 사기와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사상 최대의 다단계 사기 피해 사건으로 기록될 이 사건 주인공 주수도 회장에 대해서는 주가조작, 유사수신, 사기 및 횡령 등의 혐의를 적용해 지난 6월18일 체포영장을 발부해 검거에 나섰다. 그동안 자기는 떳떳하다며 언론의 각종 의혹 보도에 대해 파상적인 민형사 소송 공세로 맞섰던 주회장은 검찰 수사망이 좁혀오자 한달 째 종적을 감춘 상태다.

난마처럼 얽힌 다단계 사기 피해사건의 핵심 인물이 자취를 감추면서 이번 사태가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연매출 2조원대에 35만명의 가입회원을 자랑하던 제이유 네트워크는 지난해 12월 사실상 부도를 낼 때부터 앞으로 닥칠 엄청난 피해의 파장이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그러나 주회장은 문 닫은 제이유 네트워크를 제이유 피닉스와 제이유 백화점으로 간판만 바꿔 단 채 계속 신규 피해자들을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버텨나가려다 기존 사업 피해자들의 반발로 몰락을 자초했다. 그는 올 들어 내내 ‘한달만 기다리면 보상을 마무리하겠다’며 피해자들을 상대로 차일피일 시간을 끌다가 결국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도주하는 길을 택했다.

제이유 사건은 가공할 피해자와 피해액의 규모도 규모려니와 사세 확장 과정에서 정관계, 금융계, 언론계, 사법기관 등을 상대로 한 무차별 로비 자금 살포 의혹으로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국가정보원이 지난해 제이유 피해 사태를 예견하고 내사를 벌인 끝에 ‘이대로 가다가는 종국에 민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위기 의식에 따라 20여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작성해 지난해 가을 검찰, 청와대 민정비서실 등 사정기관에 이첩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수사가 곧바로 착수되지 않다가 지난 4월 들어서야 피해자들이 들고 일어서자 다단계 수사 경험이 많은 서울 동부지검에서 본격적으로 이 사건에 손대기 시작했다. 

 <시사저널>은 지난 4월 말 바로 이 국정원 문건을 입수해 보도하면서 제이유 그룹의 비호 세력과 비자금 조성, 정관계 로비의혹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한 바 있다. 당시 국정원 문건에는 주회장이 조성한 2천억원대 로비자금 성격과 비자금 은닉처, 각계에 대한 로비 실태 등이 자세히 명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사저널>의 확인 취재 과정에서 주수도 회장과 핵심 측근들은 허무맹랑한 날조라며 비자금 조성과 로비 의혹을 극구 부인했다. 그러나 동부지검이 전방위 수사를 펼치면서 국정원이 문건에서 제기한 제이유의 문제점들은 상당부분 사실에 가깝다는 점이 하나둘씩 드러나고기 시작했다.

 

우선 국정원이 적시한 2천억원대 비자금 가운데 검찰은 지금까지 2백억원 대를 찾아냈다. 국정원은 ‘주회장은 차명계좌를 통해 개인금고에 수백억원을 보관했고, 특수 관계인인 제이유백화점 이사 김00씨를 통해 투자지분 형식으로 비자금을 은닉해 특별 관리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바로 주회장의 특수관계인 김00씨의 계좌를 뒤져 비자금 성격의 돈 85억원을 찾아내 그녀를 구속한 것을 비롯해, 강화도 골프장개발사업 명목으로 부동산 개발업자 ㄴ씨를 통해 32억원을 횡령해 주식투자에 사용했다는 점도 밝혀냈다. 

잠적 직전인 6월 중순까지 <시사저널> 취재진과 두 차례에 걸쳐 단독 인터뷰에 응했던 주수도 회장은 “비자금이 한 푼이라도 나오면 내 손목을 자르겠다”라고 호언한 바 있다(0쪽 인터뷰 참조).

체포 못하면 피해 구제도 사실상 힘들어져

사실 검찰 수사가 계속되는 와중에서도 주회장은 언론의 취재에도 비교적 적극적으로 응하는 가 하면 거물급 변호인단을 포진시켜 검찰과 일전을 치를 것처럼 대응했다. 송광수 전 검찰 총장과 제갈융우 전 인천지검장, 김영진 전 대구지검장, 박태석 전 동부지검 차장 등 검찰 고위간부 출신을 포함한 변호사 30여명의 호화 군단이 구성되었다. 주회장은 지난 2002년 구속됐을 때도 거물급 변호사 선임비로 30억원을 썼다는 말이 법조계 주변에 파다했다.

국정원도 제이유 대책 문건에서 지난 2004년 동부지검에서 주회장의 불법 혐의를 내사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또다른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에게 20억원을 전달했다고 적시했다. 따라서 이번에는 그 전에 비해 몇배는 많은 변호사 선임비를 썼을 것이라는 것이 법조계 주변의 관측이었다. 검찰 수사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호화 변호인 군단을 통해 법정 공방으로 사태를 정면 돌파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돌연 잠적한 데 대해 그의 측근들은 두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주씨의 한 고문변호사는 “검찰에서 제이유백화점 김00씨를 80억원대 비자금 은닉자로 구속한 것이 주회장이 잠적한 결정적 계기였다”라고 말했다. 비자금 관련 수사의 칼날이 최측근에게까지 겨눠지자 그동안 자기가 공개적으로 거짓말을 해온 사실이 탄로난 것은 물론 구속돼 중형을 피할 길이 없다고 보고 잠적하는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지난 6월19일 다른 다단계 업체 위베스트 안홍원 회장이 법원에서 10년의 중형을 선고받은 것도 주회장이 잠적한 한 요인이었다고 한다. 제이유 그룹에 비해 피해액과 피해자가 절반에도 못미치는 위베스트 사기 사건에서 오너가 중형 선고를 받은 것을 본 주씨가 큰 충격을 받고 도피해버렸다는 것이다. 위베스트 안회장을 구속한 동부지검 이종근 검사는 지난해 그에게 무기징역형을 구형한 바 있는데 이번 주회장 수사팀의 일원이기도 하다.

주씨의 잠적으로 그를 고소했던 피해자들은 주씨가 중국으로 밀항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우려하고 있다. 주씨가 수천억원대로 추산되는 은닉재산을 챙겨 밀항할 경우 사실상 피해구제의 길이 멀어지는 것은 물론 주수도 게이트의 실체가 영원히 미궁에 빠질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국정원에서도 지난해 작성한 문건을 통해 주회장이 중국 현지 투자 명목으로 60억원 대의 돈을 빼낸 것은 유사시 해외도피를 위한 수단이었다고 적고 있다. 바로 국정원이 예측한 사태가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주씨가 잠적하자 피해당사자인 사업자들은 주씨 체포조를 직접 꾸렸다. 가칭 ‘제이유 고소인단’을 꾸린 80여명의 사업자들은 6월16일과 30일 동부지검에 주회장을 형사고소하는 한편 주씨가 잠적하자 일간신문에 현상수배 광고를 냈다. 체포조는 7월1일 주씨의 대리인으로 제이유 운영을 맡고 있다가 주씨와 함께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도피해버린 상위 사업자 대표 윤아무개씨(47)를 영등포의 한 식당에서 붙잡아 검찰에 인계해 구속시켰다. 또 제이유피해자 전국비대위를 꾸려 그동안 주수도씨와 보상 협상을 벌여온 400여명의 피해자들도 7월13일 동부지검에 주씨를 추가로 민형사 고소했다.

결국 검찰이 조속히 주수도 회장을 체포하지 않는 한 사상 최대의 다단계 사기사건의 실체는 미궁에 파묻히는 것은 물론 30여만명으로 추산되는 피해자들은 크나큰 사회 불안요인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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