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쓴소리, 큰소리 낼까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6.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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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재·보선에서 조순형 띄우기 ‘화력 집중’…성공하면 수도권 교두보 확보

 
서울 여의도에 있는 민주당사를 통째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지난 7월13일 오후 2시, 서울 성북구 종암2동 조순형 후보 선거사무실 앞. ‘청렴 소신 원칙’이 새겨진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한화갑 대표, 김효석 원내대표, 최인기 정책위의장, 이낙연 의원, 김종인 의원, 심재권 전 의원, 김영진 전 의원 등 당직자들이 총출동했다. 지지자들은 1차선 도로를 꽉 메웠다. 민주당과 조순형을 번갈아 연호했다.  

‘미스터 쓴소리’, 조순형 전 의원이 돌아왔다. 조 전 의원은 7·26 재·보선 성북 을 민주당 후보로 나섰다. 그의 등장으로 성북 을은 재·보선 지역 가운데 가장 관심이 높은 곳으로 떠올랐다. 무엇보다 그가 탄핵의 주역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동안 탄핵의 주역들은 번번이 재기에 실패했다. 탄핵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였던 홍사덕 전 의원은 지난해 재기하려다, 한나라당 문턱도 넘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다.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나선 홍 전의원은 낙선했다. 최병렬 한나라당 전 대표도 이번 7·26 재·보선에 출마를 저울질했다. 그도 제2의 홍사덕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출마 자체를 접어야 했다. 

조순형 후보 역시 공천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민주당 공천심사위원회는 갑론을박을 벌였다. 탄핵 주역인 그를 민주당이 공천하면, 또다시 역풍을 맞으리라는 반대 목소리가 강했다. 지방 선거를 계기로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민주당으로 돌아오는 마당에, 그를 재등장시켜 돌아오는 유권자를 막을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경쟁자들 위력 만만찮아 격전 치를 듯

하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난 반대론일 뿐이다. 민주당이 그를 공천하기 주저했던 속내는 따로 있다. 한 당직자는 “당내 역학 구도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한화갑 대표 진영은 그를 탄핵 주역보다는 옥새 다툼의 장본인으로 기억한다. 한대표 진영에서는 2004년 총선 공천을 두고 추미애 전 의원과 주도권 다툼을 벌였듯, 조후보가 생환하면 반(反)한화갑 진영의 대표 주자가 될 것이라는 걱정이 강했다.

그런데도 한대표가 조 전 의원을 공천하고, 성북 을에 화력을 집중하기로 한 것은 민주당의 ‘탈호남 전략’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은 ‘호남을 떠난 기차가 서울로 오고 있다’는 말을 되풀이 해왔다. 공허한 정치적 수사였던 이 말이 지난 5월 지방선거에서 입증되었다. 전남 지역에서는 제1당이 되었고, 열린우리당 아성인 전북 지역에서도 기초단체장을 배출했다. 전북 지역 열네 개 기초자치단체장 가운데 다섯 곳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했다. 한 당직자는 “호남발 민주당 열차가 전북까지 올라왔다. 서울도 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내친김에 재·보선으로 수도권 교두보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호남당 이미지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향후 정계 개편의 한 축을 담당하겠다는 포석이다.

7월26일 재·보선은 서울 성북 을과 송파 갑, 경기도 부천·소사, 경남 마산 갑에서 치러진다. 민주당이 보기에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은 호남 출신 유권자들이 많고, 전통적으로 야당세가 강한 성북 을이다. 그렇다면 성북 을의 맞춤형 후보는? 물어보나마나 조순형 전 의원으로 모아졌다.

그는 11대(1981년) 총선 때 이 지역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한 인연이 있다. 게다가 지난 총선에서 낙선하기 전까지 그의 지역구는 성북 을과 인접한 강북 을이었다. 출정식에서 만난 조순형 후보는 “25년 정치 인생을 성북에서 심판받겠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성북 을에 깃발을 꽂겠다는 민주당의 바람은 성공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조후보 앞길이 순탄치 않기 때문이다. 조후보의 주요 경쟁자는 한나라당 최수영 후보, 열린우리당 조재희 후보, 민주노동당 박창완 후보다.

이 가운데 가장 앞선 이는 한나라당 최수영 후보다. 지난 총선에서 최후보는 열린우리당 신계륜 전 의원에게 맞서, 득표율 39.05%를 기록했다. 낙선 뒤에도 최후보는 지역구를 꾸준히 관리해왔다. 7월14일 현재 각 캠프 진영이 자체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최수영·조순형· 조재희 순으로 최후보가 앞섰다.

최후보의 지역 기반이 탄탄한 데다, 전통적으로 재·보선은 한나라당이 압승했다는 점도 조순형 후보의 앞길을 어둡게 만든다. 선거 때마다 태풍으로 발전하는 박풍(박근혜 바람)이 이번에도 성북 지역에 몰아칠 것이고, 여기에 이명박 전 시장까지 지원 유세에 가세할 태세다.  

이에 민주당은 소속 의원 전원이 성북 을 열네 개 동을 나눠 맡는 압박 전술로 맞설 계획이다. 또한 조후보측은 ‘청렴’을 대표 브랜드로 내세워 한나라당 최수영 후보와 차별화를 꾀한다. 지난 지방선거 때 한나라당 최수영 후보의 보좌관이 공천 헌금을 받은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점을 염두에 둔 차별화 포인트이다. 조순형 후보는 “선거를 마라톤에 비유하자면, 마지막에 일등한 사람은 처음부터 나서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탄핵의 주역이자 5선의 관록을 자랑하는 미스터 쓴소리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재기의 문턱을 넘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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