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과 상처’의 일그러진 파편들
  • 박영택(미술 평론가 · 경기대 교수) ()
  • 승인 2006.07.1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홍구 <풍경과 놀다>전/초현실에 가까운 한국 사회 현실 몽상적으로 포착

 
 강홍구는 1990년대 초반부터 스캐너를 사용해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조작하면서 일련의 디지털 사진을 만들었다. 컴퓨터로 스캔받아 합성·변형한 사진을 슬라이드 필름으로 인화하거나 파일을 그대로 충무로에 가져가서 출력한 후 채색하면 작품이 완성되는, 웬만한 펜티엄급 컴퓨터만 가지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작업이었다. 강홍구의 사진은 하이테크놀로지 시대의 일정한 로테크를 원용함으로써 하이퍼스피드 시대에 조금 뒤처져 따라붙는 미술의 속도 감각을 유지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디지털 카메라를 통해 늘 포착했으면 하는 순간은 분명히 현실인데 도무지 현실 같지 않은 순간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순간들이 과학소설(SF) 영화 같은 분위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순간들은 지극히 평범한 풍경들에 있다. 놀이공원, 식당, 장례식장, 해수욕장, 술집, 그린벨트, 드라마 세트장 등. 나는 지극히 무의미한 가짜 사진들을 만들고 싶었다. 미술 작품을 둘러싼 제도와 말과 이론들이 너무 짜증 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사진들이 무의미하고, 공허하고, 황당무계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사진을 찍고, 사진에 약간의 조작을 가하면서 내가 느낀 점은 그 사진들 속에서 자꾸 죽음을 읽는 것이다. 그 죽음은 시간을 정지시키고 그 대상이 죽음의 상태에 있다는 사진 담론 속의 죽음은 아니었다. 현실 자체의 죽음, 그러나 그 죽음이 아닌 다른 것으로 느껴지는 무엇이었다. 이러한 죽음, 공허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열심히 생산해낸 것인데 사진 어디에나 들어 있었다. 그러므로 할 수 없이 내 작품들은 결국 죽음에 대한, 시체 선호증에 대한 사진이 되고 말았다.”(작가 노트)

 
분열된 세상 보여주는 일종의 위장술

그가 찍은 서울 근교의 풍경은 갑작스러운 개발 열풍 속에서 뒤처진 쇠락과 황폐한 여러 흔적을 보여준다. 여러 사진을 이어 붙여서 만든 풍경들로 좌우에 긴 파노라마를 이루고 있는 이 작품들은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풍경의 파편이며 그 기이한 상처와 ‘땜빵’ 자국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특히 김포공항 근처 소음 피해 보상 지역이자 주민 이주 후 폐허가 된 <오쇠리 풍경>을 찍은 사진은 그 마을이 처했을 공포스러운 소음을 절묘하게, 통감각적으로 보여준다. 강북 재개발 지구의 풍경 사진 역시 투기와 유랑이 떠도는 초현실의 기이한 장소성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게임 캐릭터 인형을 그 폐허의 장면에 놓고 찍은 일련의 사진들은 수련자의 무공과, 무협지에 나오는 흥미로운 제목의 연결을 통해 괴물 같은 현실 속에 자조적인 대응을 하고 있는 자신의 초상을 보여준다. 그는 자기 사진이 가짜인 것처럼 세상도 가짜라고 말한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작업이 썰렁한 블랙 코미디가 되길 바란다고도 한다.

결국 그의 사진은 산산이 조각난 이 세계를 파편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위장이다. 초고속 근대화를 이룬 한국 사회의 특수한 현실 풍경을 조감하고 채집하는 이 사진들은 일종의 다큐멘터리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그 위에 몽상과 상상력, 꿈과 희화화가 작동한다. 이는 결국 너무나 현실적인, 그래서 초현실로 다가오는 한국 사회의 풍경과 그 삶에 대한 초상이다. 우리의 현실 이미지 자체가 너무 ‘쌔서’ 작가들의 작업은 그 강도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