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메뉴열기

시사저널

반갑다, 장이머우 이렇게 귀환해서

[영화평]

안철흥 기자 ㅣ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6.07.18(Tue) 00:00:00

0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밴드 link

   
   
장이모우(張藝謀)라는 이름이 주는 느낌은 세대에 따라 다를 것이다. 2000년 이후에 그의 영화를 접한 관객들은 <영웅>과 <연인>에서 본 광대한 스케일과 화려한 영상미를 우선 떠올린다. 하지만 <집으로 가는 길> <책상서랍 속의 동화>를 보며 중국 사회의 속살을 엿봤던 관객이나, <붉은 수수밭>의 장엄한 영상미에 취해본 이들에게 최근의 장이모우는 씹히기 딱 좋은 ‘변절자’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장이모우의 새 영화 <천리주단기>를 마주한 감회는 새로웠다. 같이 극장 시사를 다녀온 동료에 따르면 영화는 ‘장이모우의 귀환’으로 불릴 만하다. 그의 솜씨가 소박한 이야기에서 더 빛을 발하는 사실은, 그에게는 불행일지라도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천리주단기(千里走單騎)’는 홀로 말 타고 천리를 달린다는 뜻이다. <삼국지>에서,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던 관우는 유비의 행방을 알게 된 후 만류를 뿌리친 채 적장의 목을 베어가며 주군을 찾아간다. 이 영화에서, 천리주단기는 관운장 이야기를 다룬 영화 속 경극 제목이면서, 주인공 다카타 고우이치(다카쿠라 켄)의 여정을 은유한 말이기도 하다.

어촌에서 홀로 사는 노년의 다카타에게 어느 날 전화가 걸려온다. 며느리 리에(데라지마 시노부)다. 아들 켄이치가 간암 판정을 받고 도쿄의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것이다. 다카타는 아들과 오랫동안 연을 끊고 살았다. 다카타가 어렵게 병실을 찾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방문을 거절한다. 쓸쓸히 돌아서는 그에게 리에가 비디오 테이프를 하나 쥐어준다.

켄이치가 찍은 비디오를 보며 다카타는 아들이 중국의 경극에 빠져 지냈고, 지난해 촬영하지 못했던 경극 ‘천리주단기’를 올해 다시 찍기로 배우 리쟈밍과 약속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아들 대신 리쟈밍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중국 윈난성(雲南省)으로 긴 여행을 떠난다.

현대 사회의 소통 장애 은근히 풍자

영화 속에는 두 쌍의 부자가 등장한다. 다카타는 젊은 시절 아내가 죽자 아들을 두고 어촌으로 도피해버렸다. 켄이치는 그런 아버지를 평생 용서하지 못한다. 다카타가 찾아간 중국의 경극 배우 리쟈밍 역시 사생아 양양(양젠보)을 낳았지만 돌보지 못한 아픔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다카타가 현지에 도착했을 때 리쟈밍은 사생아가 있다며 놀린 동료를 칼로 찌른 뒤 교도소에 수감된 상태였다. 엄마의 친정인 ‘석촌’에서 마을 어른들에게 양육되던 어린 양양은 아버지가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도 만나기를 거부한다.

   
   
소통 부재는 두 쌍의 부자에게만 국한된 아픔이 아니다. 장이모우는 다카타의 여행에서 현대 사회의 소통 장애를 은근히 풍자한다. 가이드 겸 통역 재스민이 떠난 뒤 새롭게 가이드를 맡은 중국인 링고의 일본어 실력은 형편없다. 다카타가 교도소장이나 석촌의 촌로들과 나누는 대화는 이중 통역을 거치면서 끊기거나 왜곡된다. 소통이 어려울수록 다카타의 여정 또한 복잡하게 꼬인다.

장이모우가 이 우화의 얽힌 매듭을 풀어내는 방식은 따뜻하고 근원적이다. 다카타는 아버지와 만나기 싫어 도망친 양양을 쫓다가 길을 잃는다. 늙은 다카타와 어린 양양은 산 속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부자의 정’을 체험한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이들이 대화로 정을 나눴을리는 만무하다. 다카타는 어린 양양을 보며 죽어가는 아들 켄이치를 비로소 이해한다.

장이모우는 중국의 현지 주민들을 단역 배우로 출연시키며 리얼리티를 살렸다. 영화 대부분을 중국 윈난성 ‘리장’에서 찍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위롱쉐(玉龍雪)산의 절경을 한껏 감상할 수 있다. 올해 75세인 다카쿠라 켄은 ‘무표정한 표정’으로 고독하고 아련한 늙은 아버지의 심경을 완벽하게 연기했다. 

전체댓글0

0 /150
  • 최신글
  • 공감 순
  • 비공감 순
더보기

TOP STORIES

사회 2018.09.18 Tue
황교익
Health > LIFE 2018.09.18 Tue
경기도의료원, 최초로 수술실 CCTV 운용
사회 2018.09.18 Tue
[단독] 학교 해외여행, 최근 3년간 수백만원대 高비용만 300건 넘어
한반도 2018.09.18 Tue
[포토뉴스] 남북정상 첫 무개차 카퍼레이드
Culture > LIFE > 지역 > 영남 2018.09.18 Tue
[단독] 내년 부산국제영화제선 북한 배우·감독 볼 수 있을 듯
경제 2018.09.18 Tue
신장섭 “재벌이 萬惡이라는 경제민주화, 잘못됐다”
OPINION 2018.09.18 Tue
[시론] 가을 - 비엔날레의 계절
한반도 > 갤러리 > 포토뉴스 2018.09.18 Tue
[포토뉴스] 평양에 발 내딛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한반도 2018.09.18 Tue
평양 찾은 文 대통령…울음 터뜨린 北 주민과 악수
연재 > 이원혁의 ‘역사의 데자뷰’ 2018.09.18 화
일제 강점기에 근대화 이뤄졌다고? 박람회 역사가 그 답을 알고 있다
한반도 > LIFE 2018.09.18 화
외신 “남북 정상회담은 북·미 회담용 리트머스”
LIFE > Culture 2018.09.18 화
[동영상] 바다, ‘2018 쉘위워크’서 ‘역대급’ 공연 예고!
사회 2018.09.18 화
[2018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⑤] JTBC 독주 누가 막을까
사회 2018.09.18 화
[2018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⑥] 손석희, 14년째 언론인 1위
사회 2018.09.18 화
[2018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⑦] 손석희 “미투운동 선도, 가장 기억에 남아”
경제 > 한반도 2018.09.17 월
‘親중소기업’ 표방 文정부, 방북단은 ‘대기업’ 위주
정치 2018.09.17 월
‘미래도 미래지만…’ 靑 경제고민 현실 드러낸 방북단
연재 > 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2018.09.17 월
[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사랑하니까 반대합니다
LIFE > Health 2018.09.17 월
바람만 스쳐도 고통스런 통풍···‘치맥’을 버려라
사회 2018.09.17 월
[시끌시끌 SNS] 충북 관광명소 된 ‘진천 빨‘레’터’
LIFE > Health 2018.09.17 월
발기부전 3개월 이상이면 병원 치료 필요
리스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