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온리’ 시대 개봉 박두
  • 차형석 기자 (cha@sisapress.com)
  • 승인 2006.08.1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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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채널에서만 볼 수 있는 드라마·TV 영화 잇달아 제작·방영

 
미국 케이블 채널 HBO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오리지널 시리즈’ 목록을 볼 수 있다. HBO가 자체 제작하거나 HBO로만 볼 수 있는 드라마 시리즈이다. <The Sopranos> <Rome> <Sex and the City> 등이다. HBO가 만든 드라마들은 에미 상을 휩쓸 정도로 완성도가 탄탄하다. 한국에서 케이블 채널이 공중파 방송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을 재방송하는 채널로 인식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조만간 특정 드라마를 케이블 텔레비전에서만 볼 수 있는 ‘케이블 온리(Only)’ 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케이블 텔레비전이 심상치 않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곳은 복합 방송채널 사업자(MPP)의 양대 산맥인 온미디어 계열사와 CJ미디어 계열사이다. 두 사업자는 그동안 공중파 방송사의 영역으로만 인식되었던 드라마와 텔레비전 영화를 줄줄이 자체 기획·투자·방영하기 시작했다. 온미디어의 OCN은 기획·투자한 5부작 미스터리 스릴러 <코마>를 방영 중이다. 오는 11월부터는 옐로우필름이 제작한 16부작 미니 시리즈 <썸데이>를 방송한다. 배두나, 김민준, 오윤아 등이 주연이다. 영화 <실미도>의 시나리오 작가 김희재씨가 대본을 썼다. OCN은 <썸데이>를 시작으로 매주 주말 밤 10시를 ‘OCN 오리지널 블록’으로 삼아 자체 기획·투자하는 시리즈와 텔레비전 영화를 방영할 계획이다. 온미디어에 속한 슈퍼액션도 40부작 <시리즈 다세포 소녀>를 8월30일부터 방영한다.

라이벌 CJ미디어도 오는 10월에 개국하는 TVN에서 드라마 <하이에나>를 제작한다. ‘남성판 섹스 앤 더 시티’를 표방하고 있다. 김민종, 윤다훈, 오만석, 소이현, 오수민 등이 캐스팅되었다. 극본은 드라마 <슬픈 연가>를 쓴 이성은씨가 맡았다.

이렇게 ‘케이블 온리’ 드라마가 러시를 이루는 데는 케이블 채널과 드라마 외주 제작사의 이해·요구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케이블 텔레비전 가입자는 이미 1천6백만명을 넘어섰다. 케이블 채널로서는 가입자가 늘어나면서 미국의 HBO처럼 자체 제작한 콘텐츠로 공중파 방송사에 승부를 걸어볼 때가 되었다는 판단이다. 게다가 온미디어와 CJ미디어는 자본력도 튼튼하다. 온미디어측은 “굵직굵직한 해외 유명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런칭하면서 시청자들의 수요가 충분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고유 콘텐츠에 대한 시청자의 욕구가 분명히 있다”라고 말했다.

드라마 외주 제작사로서도 1천6백만 가입자가 있는 케이블 텔레비전 시장이 매력적이다. 게다가 최근 공중파 방송사의 드라마는 사극이나 홈 드라마를 제외하고는 5~6%를 기록하는 예가 많을 정도로 시청률이 떨어진 상황이다. SBS에서 방송된 <연애시대>를 제작해 호평을 받은 바 있는 옐로우필름의 이지향 홍보팀장은 “시청자 비율을 보면 공중파가 60%이고, 케이블이 40%이다. 그리고 케이블 톱5는 만화 채널 투니버스를 제외하면 주로 드라마 채널이 장악하고 있다. 케이블 텔레비전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외주 제작사에는 자신들이 제작할 수 있는 새로운 창구를 얻는 미디어 환경적 요인이 있다. 외주 제작사가 난립해 공중파 방송사에서 이 드라마를 소화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드라마가 주요 콘텐츠로 떠오른 이후다. 한 케이블 채널과 협의 중인 한 외주 제작사 관계자에 따르면, 아직 공중파 진입 장벽이 높다. “주 광고 타깃층인 20대는 새로운 소재, 새로운 드라마를 원하는데 공중파에서 이런 시도를 하기가 부담스럽다. 그래서 새로운 ‘윈도’를 필요로 하는데, 케이블과 DMB가 한 가지 대안으로 떠올랐다.” 그래서 앞으로 마니아들을 대상으로 한 장르 드라마가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케이블 방송이 공중파에 비해 ‘18금(18세 미만 시청 불가)’ 등 표현의 수위에서 자유롭고, 호러·수사물 등 장르물을 제작하는 데도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공중파 방송 PD들, 위기감 갖고 있다”

케이블 채널이 자체적으로 드라마를 기획·투자·방영하고, 외주 제작사가 공중파 방송사 대신 케이블 채널로 드라마를 방송하는 데는 부가 수입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도 한 몫 한다. 그동안 공중파 방송사와 드라마 외주 제작사 사이에 저작권을 둘러싼 분쟁이 많았다. 드라마가 한류의 주요 콘텐츠로 떠오르면서 해외 판권, DVD와 VOD 판권 등을 누가 가질 것인지 힘겨루기가 심했다. 드라마 비평 전문지 <드라마틱>의 박현정 편집장은 “드라마가 대박이 터질 것 같을수록 방송사와 외주사 사이에 분쟁이 많다. 외주제작사가 케이블로 시선을 돌린 것은 한 돌파구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케이블 채널이든, 외주 제작사이든 해외 판권 판매 등 부가 사업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예를 들어 OCN이 기획·투자·방영하는 <코마>의 경우, OCN은 브에나비스타인터내셔널에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 해외 판권을 팔았다. 일본은 OCN이 독자적으로 판매할 계획이다. CJ미디어도 자체 제작하는 <하이에나>에 대한 판권을 가진다. CJ미디어는 해외 판권을 판매하는 자체 팀을 운영하고 있는데, 해외 판매 경험이 풍부하다며 부가 사업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구체적인 계약조건을 밝히지는 않고 있지만, <썸데이>를 제작 중인 옐로우필름도 ‘판권 등 부가 수입에 대한 권리에서 공중파 방송사와 계약했을 때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OCN과 계약했다’.

 
이런 케이블 채널의 도전을 바라보는 공중파 방송가의 시선은 아직까지 ‘지켜보자’는 쪽이다. 김사현 MBC 드라마국장은 “공중파 방송사는 시청자층이 제한된 장르물이나 마니아성 드라마를 기획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케이블 드라마’ 출현이 긍정적이기는 하지만 저예산으로 드라마를 제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존 시장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또 아직까지 케이블 광고 등 수익성이 떨어지고 해외 판권료가 적기 때문에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면서도 ‘케이블 온리 드라마’는 공중파 방송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대상이다. 박현정 <드라마틱> 편집장은 “방송사 일선 PD들은 내부적으로 위기감을 갖고 있다. 케이블 채널이 자본력을 바탕으로 18금 장르 드라마 승부수를 던지면 승산이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HBO 등 미국의 케이블 채널도 ‘재방송 채널’이었다가 자체 제작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테이큰>(Taken) 등이 인기를 끌면서 위상이 확 달라졌다.

올해가 ‘한국판 HBO’가 탄생하는 원년이 될지, 케이블 채널의 도전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지는 미지수이다. <썸데이> <하이에나> 등 ‘케이블 온리 드라마’가 어떤 행보를 걸을지 방송가 사람들의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 물론 열쇠는 시청자가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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