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은 내과 병원, 속은 도박장
  • 소종섭 기자 · 김회권 인턴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6.08.1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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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한 달째 불법 PC방과 전쟁 벌여 1만7천명 입건…“다음 타깃은 성인오락실”

 

'싼 집, 맛있는 집 찾다가 열 받아서 차린 집’ ‘얼음막걸리, 조기+막걸리 1천원, 정구지 찌짐 5천원’
얼핏 봐서는 무슨 음식점 간판 같다. 대구 수성경찰서 범어지구대 경찰들이 눈여겨보지 않았다면 최소한 그랬다. 하지만 범어지구대 안용락 경사 등은 이미 첩보를 입수하고 이 ‘음식점 아닌 음식점’을 주목하고 있던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열려진 문 틈 사이로 컴퓨터 앞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 ‘막걸리집으로 위장한 PC방’은 지난 7월27일 경찰에 단속되었다.

경찰은 지난 7월5일부터 시작한 특별 단속을 통해 사행성 불법 PC방의 기세를 꺾었다고 보고 있다. 경찰청 생활질서과 손원진 경위는 “성인 PC방 이용객들이 줄고 수익 구조도 나빠졌다. 분위기는 잡았다”라고 현재 판세를 분석했다. 인터넷 PC문화협회 조광혁 사무국장도 “경찰이 강력하게 단속하면서 불법 PC방들이 다시 일반 PC방으로 돌아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많을 때는 전국에 7천여 개의 불법 PC방이 있었는데 지금은 4천개 정도라는 것이다.

경찰의 단속 의지는 전례 없는 ‘특진’을 내건 것에서도 읽힌다. 경찰청은 이번 단속과 관련해 경감 두 명, 경위 두 명, 경위 이하 네 명을 특진시키겠다고 밝혔다. 대구지방경찰청이 세 명을 특진시키겠다고 약속하는 등 지방청 차원에서도 별도의 특진을 내건 곳이 있다. 손원진 경위는 “이택순 경찰청장의 의지가 강력하다. 특진을 이만큼 내건 전례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사실 지난 한 달간 경찰은 성인 PC방과 ‘전쟁’을 벌였다. 대구지방경찰청이 70여 명의 형사들로 ‘허리케인 부대’를 발족한 것이 상징적이다. 일선 지구대 차원에서도 단속반을 둔 곳이 있을 정도다. 경찰들이 거리에 나가 홍보 전단지를 돌리는 가두 캠페인까지 벌였다. 전력투구한 만큼 실적도 두드러졌다. 한 달간 3천8백62건을 단속해 1만7천70명을 형사 입건했고, 이 가운데 8백12명을 구속했다. 압수한 컴퓨터가 8만7천여 대에 달해 일선 경찰서에서 이것을 쌓아놓는 데 어려움을 겪을 정도다.

강력한 단속이 이어지면서 겉으로 보이는 불법 PC방들은 실제로 많이 줄었다. 그러나 속단하기는 이르다. 경남 지역에서 불법 PC방을 운영하는 임 아무개씨(30)는 “단속 회오리 속에서도 불법 PC방이 성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경기도 수원 지역에서는 개업 기념으로 달러를 주는 이벤트까지 벌이며 호객한 사례도 보도되는 등 단속 와중에도 창업이 이어지는 ‘용감한 업주’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경찰도 불법 PC방들이 음성화·조직화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경기도 분당경찰서 생활질서계 박민철 경장은 “단속 여파로 폐업하거나 업종을 전환한 곳이 많다. 하지만 문을 닫아놓고 고정 고객만 출입시키거나 카페 등으로 위장해서 영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경북 대구 수성경찰서 생활질서계 이은주 순경도 “불법 PC방들이 점점 음성화하고 있기 때문에 단속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라고 말했다.

 

‘4인 1방’ 형태로 주택가까지 침투

쫓고 쫓기는 경찰과 불법 PC방 업주들의 ‘전쟁’은 그대로 한편의 첩보 영화다. 형태도 가지가지다. 지난 7월25일 경기도 분당경찰서 형사들은 성남 중원구에서 ‘Y클리닉’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영업하던 PC방을 적발했다. 상가 건물 2층 창문에 짙은 선팅을 한 채 외부에 ‘외과·내과·소아과’라고 써붙이고 영업하는 병원을 수상히 여긴 경찰의 확인 단속에 걸린 것이다. 이 업소는 낯선 사람의 접근을 막기 위해 출입문에 A4용지 크기의 ‘임대 문의’라는 쪽지를 붙여놓고 일명 ‘망지기’라고 불리는 무전기를 든 감시원이 항상 외부를 감시했다. 경찰 조사에서 업소 관계자는 병원이 나가면서 인테리어를 고치지 않은 상태에서 컴퓨터 30여 대를 들여놓고 영업을 시작했다고 진술했다.

수원 권선구에서는 정상적인 PC방을 운영하면서 지하에 불법 PC방을 따로 만들어 단골 손님들에게 도박을 하도록 한 업주가 적발되었다. 경찰이 압수한 장부에는 불법 PC방에서 하루 3백만원에서 6백만원까지 수입을 올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제주에서는 ‘위장 폐업’까지 등장했다. 점포 셔터를 내린 뒤 ‘점포 임대’를 알리는 쪽지를 붙여놓고 실제로는 가정집 대문과 연결되는 후문을 통해 비밀 통로를 만들어 영업을 하다가 첩보를 입수한 경찰에 적발되었다. 이 업소는 환전소를 없애고 손님이 환전을 요구할 경우 차량으로 이동하는 신종 수법인 ‘이동 환전상’도 운영했다.

 
경기도 남양주에서는 건설회사 간판을 달고 영업하던 업소가 적발되었고, 대구에서는 ‘00가라데’ 간판을 내건 체육관 일부를 빌려 영업하던 불법 PC방이 경찰의 단속에 걸렸다. 막걸리집, 인테리어 회사, 카페, 중고차판매업소, 부동산업소···, 온갖 형태의 ‘위장’이 등장하고 있다.

형태만 바뀐 것이 아니다. 내용도 변했다. ‘4인 1방’ 영업 방식이 유행하고 있다. 수십 대의 PC를 놓고 도박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방에 네 명 정도 수용하는 소규모 PC방으로 바뀌고 있다. 경찰청 생활질서과 손원진 경위는 “불법 PC방들이 음성화하면서 5~10대 규모로 축소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규모가 작아지다 보니 주택가로 침투하는 것 또한 당연한 수순이다.

최근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 ‘무점포 영업’이 등장했다. 고객이 통장에 돈을 넣으면 업주가 인터넷에 있는 아이템 거래소를 통해서 고유번호와 비밀번호를 전화로 불러준다. 그러면 고객이 도박 사이트에 접속해 이 번호들을 입력한 뒤 사이버머니를 받아 도박을 하는 형식이다. 굳이 PC방에 가지 않고서도 집에서 도박을 할 수 있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다.

한 불법 PC방 업주는 “단속이 강화되면서 무점포 영업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요즘에는 업주들이 인터넷 도박 카페 등에 홍보를 해 손님을 끌어들이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경찰이 단속에 애를 먹는 것은 당연하다. 겉으로만 보아서는 불법 PC방인지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대구지방경찰청 관계자는 “간판도 없이 영업하는 경우도 많아 첩보를 입수하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업주들은 왜 단속이 이처럼 세게 계속되는데도 위험을 감수하면서 영업을 계속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돈 때문이다. 운영하던 성인 오락실을 접고 최근 불법 PC방을 연 한 업주는 “성인 오락실을 하는 사람들이 PC방으로 이동하고 있다. 단속이 심해 위험부담이 있지만 적은 창업 비용으로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포털로 튄 불똥
일반 PC방 ‘죽을 맛’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사행성 불법 PC방을 규제하기 위한 대책 때문에 인터넷 포털 게임 업체들이 고민하고 있다.

지난 8월1일부터 국내 게임 아이템 거래 사이트들이 건전한 게임 문화 조성을 위해서 온라인 고스톱과 포커 게임 등과 관련한 사이버머니를 현금으로 거래하는 것을 중단했다. 과거에 고스톱 머니 1억원이 1만원 정도에 매매되었는데 이러한 거래가 사행성을 부추긴다는 지적 때문이다.

한게임을 운영하는 NHN 홍보실 관계자는 “밖에서 사이버머니가 거래되면서 환금성이 생긴 게 화근이다. 소수의 악용자가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다른 게임 포털 사이트의 관계자는 “공익적인 입장에서는 거래를 근절해야 하지만 그런 거래가 있어야 게임이 활성화해 회사 수익에 보탬이 된다”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하지만 가장 근심이 큰 사람은 건전한 PC방 업주들이다. PC방 업주들의 모임인 한국인터넷문화협회 조광혁 사무국장은 “사행성 불법 PC방과 정부, 양쪽 모두에게서 피해를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사행성 불법 PC방 때문에 건전한 PC방의 이미지도 같이 추락하고 있고 고스톱·포커 등의 사이버머니 거래가 중지되면서 고객들도 줄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 PC방 업주들의 가장 큰 걱정은 정부가 특단의 조치를 취할 경우 사행성 PC방 도매금으로 묶여 취급받게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이미 ‘PC방 등록제’를 시행하겠다는 정부의 발표에서 피해를 한 번 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성인 오락 기계인 ‘바다이야기’ 50대를 갖고 성인오락실을 창업할 경우 기계 한 대 값이 7백70만원쯤 들고, 기계 한 대당 2백장의 상품권을 사야 한다고 한다. 얼추 따져도 4억원 넘는 돈이 드는 셈이다. 하지만 PC방은 한 대당 60만원쯤인 컴퓨터와 테이블, 의자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4천만원 정도면 된다. 성인오락실 하나를 차리는 값이면 PC방 여러 개를 차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불법 PC방 업주들이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을 운영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PC방 사정에 밝은 인사에 따르면, 잘 되는 곳의 업주들은 하루에 5백만원 이상을 번다. 고객이 게임 아이템을 돈으로 환전할 때 받는 5~10%의 수수료, 이긴 사람이 내는 딜러비가 주된 수입원이다. 몇 개월만 영업을 해도 수 천만원에서 수 억원을 벌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업주들이 ‘모험’을 감행하는 것이다. 실제로 제주 지역에서 영업을 하다가 경찰에 적발된 한 PC방의 경우 개업 두 달 만에 무려 3억4천여 만원을 번 것으로 드러났다. 웬만한 카지노보다도 더 많이 번 것이다.

경찰은 업주나 환전소, 겉으로 내세운 책임자인 ‘바지 사장’은 구속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형법 제 247조에는 도박 장소를 제공하거나 도박장을 개설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벌금형에 그쳤던 처벌이 최근 들어 구속하는 쪽으로 강화되자 업주들은 바지 사장을 고용하는 형식으로 단속을 피하고 있다. 월 1천만원의 월급을 주더라도 바지 사장을 고용해 영업을 계속하는 것이 돈을 더 벌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판돈이 커질수록 본사나 업주가 가져가는 딜러비가 많기 때문에 수익을 더 올리기 위해 본사가 패를 조작하거나 상대방 패를 보며 게임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소문도 사실로 드러났다. 지난 8월4일 광주에서 검거된 이 아무개씨의 사례가 그것이다. 도박 프로그램인 ‘PC이야기’의 개발자인 그는 해킹 프로그램을 만들어 손님들의 패를 보면서 게임을 하는 방식으로 이득을 취했다. PC방에서 도박을 하다가 돈을 잃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복장이 터질 사건이다.

경찰은 앞으로 단속의 기본 축을 불법 PC방에서 성인 오락실로 옮길 계획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성인 오락실과 불법 PC방이 두 축이라면 지금까지는 불법 PC방을 단속하는 데 집중했다. 앞으로는 성인 오락실 쪽을 들여다볼 계획이다. 그렇다고 불법 PC방을 그냥 둘 수 없기 때문에 추가로 단속반을 투입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불법 PC방에 대한 단속은 지속적이면서도 치밀하게 계속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검·경과 국세청 등 관련 기관의 노력에 더해 지방 자치 단체들도 나서고 이들이 사용하는 불법 소프트웨어를 찾아내 금전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는 기관들까지 동참해 단속해야 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강원랜드에서 운영하는 한국도박중독예방치유센터 배봉구 센터장에 따르면 불법 PC방에서 이루어지는 도박과 관련한 상담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 센터에서는 도박과 관련해 지난해 모두 2천1백건을 상담했는데 이 가운데 불법 PC방과 관련한 상담은 7%였다. 하지만 올해에는 상반기에만 13.5%를 기록했다. 배센터장은 “불법 PC방이 더 창궐할지 여부는 정부의 의지에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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