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 출자 ‘고리’를 끊어라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6.08.14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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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총제 대안으로 검토…실시되면 현대차가 가장 큰 부담
 
현재 공정거래위원회가 문제 삼는 것은 주로 환상형 순환 출자이다. 순환 출자 직접 규제안은 A->B->C->A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환상형 출자의 고리 가운데 하나만 끊어내자는 것이다. 대안은 오는 10월 이후에야 마련될 예정이지만, 재계는 일치감치 순환 출자 직접 규제로 가닥이 잡힐 것이라는 예상 아래 대응 논리를 개발하고 있다.

재계가 격렬하게 반발하는 순환 출자 직접 규제안의 내용은 어떤 얼개로 마련될까. 서울대 박상인 교수가 한국경쟁법학회 심포지엄에서 공개한 논문을 통해 현재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지목’되고 있는 순환 출자 직접 규제의 얼개를 파악해볼 수 있다.

그는 지난 7월 ‘출자총액제한제도의 대안 연구 - 순환출자금지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주요 9개 그룹의 순환 출자 현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고리를 끊어내도록 유인할 경우 기업에 어느 정도의 부담이 돌아갈지 시뮬레이션한 결과를 내놓았다.

박교수는 현재 공정거래위원회 의뢰로 연구 보고서를 작성 중이기도 하다. 공정거래위는 “아직 중간 보고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제출이 되더라도 공개 여부는 미정이다”라고 밝혔다. 박교수는 “용역 보고서가 더 자세하고, 몇 가지 분석 요소가 추가되겠지만, 큰 얼개는 유사하다”라고 밝혔다.

순환 출자 규제시 현대자동차가 가장 부담 커

그의 순환 출자 해소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가장 부담이 큰 그룹은 현대자동차 그룹이다. 현대자동차 그룹이 (자신이 사례로 든) 순환 출자 해소의 시나리오를 채택할 경우에는 총수 일가 지분율이 높은 INI스틸의 주식과 현대모비스 주식의 상호 교환을 한시적, 예외적으로 인정해줄 필요가 있을 수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박교수는 “경영권이 위협받는다거나, 심지어 재벌 해체를 꾀하는 것이냐는 반발을 납득하기 힘들다”라고 잘라 말했다. 현대차 그룹을 제외한 다른 기업은 큰 부담 없이 순환 출자 구조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 박교수의 주장이다. 지배 주주가 보유 주식을 매각해 재원을 조달하는 식으로 자신의 자산을 이동시키면 되는 문제이고, 주식 매각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금 정도가 추가 비용으로 산정된다는 것이다. 이것도 순환 출자 해소를 위한 매각 행위라면 정책적으로 세제 혜택 등을 주어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출자총액제한제도가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데에는 정책 목표와 수단이 아귀가 맞지 않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출자총액제한 등의 방법으로 순환 출자를 간접 규제하려고 한 데에는 경쟁 당국이 대규모 기업 집단의 상호 출자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던 이유도 있다는 것. 그는 대규모 기업 집단의 출자 구조를 보여주는 출자 행렬 정보가 2004년부터 공개되므로 순환 출자의 부작용은, 순환 출자 금지라는 단순하고 명료한 조처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건희 회장, 0.29% 지분율로 그룹 장악

2004년부터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 집단의 소유 구조를 공개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상호 출자 제한 집단을 대상으로 총수와 총수 일가가 개별 회사에 어느 정도 지분을 갖고 있는지, 계열사의 내부 지분율이 어느 정도인지를 낱낱이 밝히고 있다. 그 자체가 규제는 아니지만, 당국이 이 정보를 누구나 보기 쉽게 공개하는 것은 재계로서는 달가운 일은 아니다. 이 방침이 결정된 후 전경련은 과도한 정보 공개라며 반발한 바 있다.

공정위 최근 자료에 따르면 제왕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삼성 그룹 이건희 회장의 지분율은 0.29%. 재벌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이다. 총수 일가로 범위를 확대해도 지분율은 0.85%에 불과하다.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낮은 그룹으로는 삼성에 이어, SK(1.05) 하이트맥주(1.60) 현대(2.18) 한화(2.52) 등이 꼽혔다. 또 삼성 그룹에는 여섯 개의 주요 순환 고리가 있다. 현대차 그룹의 순환 고리는 세 개. 동부에는 다섯 개, 한화에는 세 개의 주요 순환 고리가 있다.

순환 출자는 왜 문제가 되는가. 또 금지함으로써 어떤 효과를 거둘 수 있는가. 박교수는 가장 기대되는 효과로 대주주의 불법 또는 편법적인 지배권 승계를 어렵게 한다는 점을 꼽았다. 종래 그룹에서 지배 주주는 후계자의 지분이 많은 회사를 중심으로 출자 구조를 변경하여 새로운 순환 출자 구조를 만들어 기존 순환 출자 구조에서 핵심 연결 고리 기업의 주식 취득이나 증여를 거치지 않고서도 그룹의 지배권을 쉽게 승계할 수 있었다. 삼성이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카드를 중심으로 순환 출자 구조를 변경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삼성 그룹의 지배권 승계 과정에서 주당 8만5천원에 거래되던 계열사 전환사채를 총수 자녀에게 7천7백원에 넘겨 회사에 약 1천억원의 손해를 발생시킨 사례가 있고, 현대차 그룹의 글로비스와 SK 그룹의 SK C&C 등과 같은 가족 기업을 세운 뒤 그룹 계열사가 그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상장하여 기업을 키우는 방법으로 계열사에 돌아가야 할 이익을 총수 일가에 돌린 사례도 있다.

 
환상형 순환 출자는 기업 내 외부에서 통제할 수 있는 길을 막고 있기도 하다. 즉 상법상 소송이 가능하려면 회사의 모자 관계가 분명해야 하는데 순환 출자는 그 관계 자체가 모호해 외부에서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순환 출자에서 핵심 고리 역할을 하는 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마땅할 만큼 경영 실적이 부진한 경우에도, 가외의 효용 때문에 지배 주주가 사재를 털어 기업을 지원하는 사례도 발견된다고 지적한다. 삼성 그룹의 삼성카드에 대한 지원이 그 사례라는 것.

하지만 순환 출자 직접 규제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정책 믹스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즉 순환 출자 금지와 기업 집단의 총출자비율 제한이라는 두 정책을 병행하면, 현행 출총제처럼 개별 기업의 출자 행위에 직접 제약을 가하지 않고서도 원하는 정책 목표를 거둘 수 있다고 보았다.

한편 제도가 채택될 경우 기업별로 명암이 갈린다. 자산 6조원 이상의 총수가 있는 기업 집단으로 대상을 정한다면, 순환 출자 규제의 대상이 되는 기업은 삼성, 현대차, SK, 롯데, 한진, 현대중공업, 한화, 두산, 동부, 현대, 대림 등으로 압축된다. 일치감치 지주회사로 전환한 LG와 GS는 법적으로 환상형 출자가 불가능한 구조이므로, 아예 고민할 필요조차 없다. 하이트와 금호, CJ는 환상형 출자 구조가 형성되지 않아 규제 적용 대상에서 빠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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