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대학생들의 의문투성이 거리 모금
  • 신호철 기자 · 김민욱 인턴기사 (eco@sisapress.com)
  • 승인 2006.08.14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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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단체, 특정 종교와 연관 있는 듯... 자금 사용처 불분명

 
“잠시~만요. 저희들은 남미국제대학생자원봉사단~입니다.” 8월7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점심 시간을 맞아 몰려나온 직장인들에게 어눌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앳된 외국인 학생들이 말을 건다. 페루·콜롬비아·칠레·파라과이 출신 등 인종과 국적이 다양한 젊은이들이었다. 이들은 목에 신분증을 걸고, 소속 단체명과 연락처 및 활동 연혁 등이 적힌 팸플릿을 나눠주었다. 이들은 성금 모금을 위해 1장당 1만원짜리 손수건을 사달라고 부탁했다. 보통 잡상인 호객꾼은 냉정하게 물리치던 행인들도 어린 외국인 학생들의 부탁을 뿌리치기는 힘들어 보였다.

거리모금은 원래 성탄절 구세군부터 지하보도 걸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지만, 외국인 대학생 모금단 활동에는 이상한 구석이 있다. 이 젊은이들의 정체가 모호할 뿐만 아니라 모금단의 규모가 너무 방대하다는 점이다.

외국인 유학생 모금단은 출현빈도에서 이미 구세군 조직을 능가하고 있다. 적어도 2000년 이전부터 해마다 방학 기간만 되면 서울 광화문·명동·강남역 등지에서 어린 외국인 학생들이 모금을 해왔다. 이들은 국제학생봉사단(VOIS)이나 월드카프(WORLD CARP) 등 낯선 국제 봉사 단체 소속명을 내세우며 좋은 일에 쓸 테니 도와달라고 말해왔다. 버스나 지하철뿐만 아니라 커피숍·대학 연구실·회사·일반 가정집까지 방문해 모금을 호소했다. 1천~2천원 기부를 받는 모금 활동부터 양말이나 손수건을 비싼 값에 파는 경우도 있다.

대학생 김범래씨(25)씨는 “2년 전쯤 서울 강남역에서 동남아 유학생들이라며  국제 봉사 활동 한다기에 1천원을 준 적이 있다. 팸플렛을 보니 해외에서 좋은 일을 하는 것 같아 믿었다. 최근에도 같은 단체 소속 학생들이 지하철에서 모금하는 것을 보았다”라고 말했다.

 
서울에 사는 젊은 시민 가운데 이 외국인 학생 모금단과 마주치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그러나 이 학생들이 대부분 동일한 뿌리에서 나온 회원들이며 그 뒷 배경에 통일교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시민들이 학생들에게 선뜻 기부를 하는 까닭은 이들이 소속 단체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밝히기 때문이다. 8월7일 광화문에서 모금을 하던 학생들은 자신들을 ‘남미국제대학생자원봉사단’ 소속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공개한 사무실로 연락해 다음날 서울 아차산역의 한 카페에서 봉사단 담당자를 만났다. 남미국제대학생자원봉사단을 책임지고 있다고 밝힌 강인돈씨가 건넨 명함에는 ‘세르비시오 파라 라스 라티노스’의 디렉터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우리는 한국의 국제학생봉사단과는 관련이 없으며 남미 현지에서 봉사 활동을 펼치다가 한국에 들어왔다. 월드카프로부터는 학생들을 소개받아 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라고 말했다.

거리 모금 명백한 불법 활동

이들이 자신들의 홈페이지라고 공개한 주소(carpbrasil.org)로 접속해보면 브라질 월드카프의 홈페이지가 나오고, 이 사이트에서 강씨는 남미 대륙 월드카프 국장(디렉터)으로 사진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월드카프는 통일교 대학생 단체다. 1960년대 창립된 이후 세계적 조직으로 성장한 월드카프는 현재 문선명씨의 셋째 아들이 회장을 맡고 있다. 강인돈씨는 스스로 자신을 통일교 신자라고 밝혔다. 그러나 강씨는 “우리들이 하는 거리 모금 활동은 한국 월드카프에서도 모르는 사실이다”라고 주장했다.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에 있는 한국 월드카프 사무실에 연락해보았다. 8월10일 한국 월드카프의 조성일 국장은 “2~3년 전 일부 모금활동을 진행한 바 있지만 합법성·정당성의 문제 때문에 현재는 공식적으로 일체의 모금을 하지 않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 6월20일, 광화문 교보생명 빌딩 앞에서 거리 모금 활동을 하던 일본인 여학생 아라 치카코 씨가 소속 사무실이라며 공개한 주소와 전화번호는 ‘전국대학원리연구회’의 주소와 전화번호였다. 전국대학원리연구회는 각 대학에 동아리를 두고 있는 통일교 대학생 단체로 한국 월드카프의 다른 이름이다.

월드카프와 별도로, 거리 모금 외국 학생들이 내세우는 또 다른 봉사 단체 국제학생봉사단은 어떤 곳일까? 충남 천안시에 있는 국제학생봉사단 본부 관계자는 “해외 장기 봉사 활동을 나가는 회원을 대상으로 (거리) 모금 체험 학습을 진행하고 있으며 2000년부터 기수별로 열명 내외로 현재 27기까지 (거리) 모금 체험 학습을 진행했다”라고 시인했다. 최근에도 16명이 서울과 부산 등지에서 모금 체험 학습을 실시했지만 남미 학생은 없었다고 한다.

국제학생봉사단 역시 월드카프와 마찬가지로 통일교 산하의 봉사 단체로 볼 수 있는 정황이 적지 않다.   이 단체에서 활동하는 회원 중 많은 수가 통일교인이고, 통일교 단체인 월드카프나 서비스포피스 등과 함께 활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국제학생봉사단 이성효씨는 “1996년 설립 초기 핵심 멤버가 통일교 신자였던 것은 맞다. 그러나 당시 설립자들은 이미 물러났고 공식적으로 우리 단체는 통일교와 관련이 없다. 천안에 위치하다 보니 자연스레 선문대 한국어센터의 외국인 학생들이 많아 통일교 관련 단체라는 이야기를 듣지만 종교를 떠나 봉사 활동을 펼친다. 봉사단 단장(정준아)도 통일교 신자가 아닌 것으로 안다”라고 주장했다.

“과거에 거리 모금은 통일교 신도들의 자금 확보 수단”

실제 모금 활동을 벌이는 외국인 중에는 통일교가 아닌 학생들도 있다는 것이 국제학생봉사단이나 남미국제대학생자원봉사단측의 설명이다. 지난 8월7일 광화문 우체국 앞에서 모금 활동을 하던 남미국제대학생자원봉사단 소속 파라과이 출신 학생은 “통일교가 어떤 종교인지는 알지만 우리는 그 종교와 관련이 없다. 나는 기독교 신자다”라고 밝혔다.

 
이들이 주장하는 순수한 동기에도 불구하고, 거리 모금은 명백히 불법 활동이다. 기부금품 모집 규제법에 따르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기부금을 모집할 경우에는 행정자치부장관이나 지방 자치 단체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행정자치부와 서울특별시의 담당자는 국제학생봉사단이나 월드카프라는 단체가 모금 활동을 하도록 허가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신고되지 않은 모금 활동이기 때문에, 이들이 모으고 있는 자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자세한 활용 내역은 확인할 수 없다. 남미국제대학생자원봉사단의 강인돈씨는 “좋은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나 항공비와 생활비 조달이 힘들어 일부 비용을 체류 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남은 돈은 남미 현지 자선 사업에 쓰인다”라고 주장했다. 국제학생봉사단 이성효씨는 “시사저널이 원한다면 장부를 공개할 수 있다”라고 답했다.

거리 모금이 불법이라는 점을 배제한다 해도 기부를 요청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모금 주체의 정체성에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박준우씨(31·봉천동)는 “3~4년 전부터 국제학생봉사단 혹은 그 비슷한 이름을 쓰는 외국인 학생들에게 몇 천원씩 돈을 준 적이 있다. 나이 어린 학생들인 데다 외국인이라는 점, 뭔가 공익적인 성격이 있어 보여서 흔쾌히 기부했다. 하지만 통일교와 관련이 있는 단체인 줄 알았다면 돈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본인 여학생들이 대학원 연구실에 찾아와 자선 사업을 하는 데 도와달라며 양말을 판적이 있다는 박일현씨는 “목적은 순수하더라도 자신들이 속한 단체를 명확히 밝혀야 도움을 주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그 목적이나 투명성을 판단해 모금에 동참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교 대책협의회 사무총장 이영선씨는 “거리 모금은 오래전부터 통일교 신도들의 일반적인 자금 확보 수단이었다. 1975년 당시 통일교 신자였던 나는 귤·엿·찹쌀떡 등을 팔며 할당된 모금 액수를 채운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소속 단체를 국제승공연합이라고 밝혔다. 내가 모은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한편 광화문 거리 모금 외국인 유학생에 대해 <시사저널>이 취재에 들어가자 해당 학생들은 8월8일부터 돌연 광화문 거리 모금을 중단했다. 대신 8월10일 남미국제대학생자원봉사단 소속 단체 학생들이 압구정동에서 손수건을 파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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