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적 글로 보는 ‘지식 전장’의 풍경
  • 이문재 (시인) (cha@sisapress.com)
  • 승인 2006.08.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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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일의 책]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이 책을 두말 않고 집어든 까닭은 엮은이 때문이었다. 과학과 인문학이 악수를 한다는 제목도 제목이었지만, 이 책을 엮은 존 브록먼이 갖고 있는 전위성이 더 눈길을 끌었다. 브록먼은 웹 사이트 포럼 ‘엣지(www.edge.org)’를 설립해 운영하면서 ‘제3의 문화’를 이끄는 기수로 알려져왔다.

브록먼에 따르면 엣지는 “우리 시대의 날카로운 정신들이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투우장으로 끌고 나와 드센 도전을 기다리는” 장소이다. 그러나 엣지는 하나의 그룹이기보다는 하나의 관점이다.
엣지에는 문화인류학자, 진화생물학자, 물리학자, 음악가, 심리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와 예술가들이 참여하는데, 이들은 일찍이 CP 스노가 지적한 바 있는 ‘두 문화’의 시대, 즉 자연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단절을 비판한다. 이들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제3의 문화’를 지향한다.

제3의 문화를 실천하는 새로운 형태의 지식인이 ‘새로운 인문주의자’이다. 브록먼에 따르면 새로운 인문주의자는 실제 세계, 즉 탈산업 시대에 초점을 맞추고 논리적 일관성, 설득력, 경험적 사실들과 부합하는지 여부에 따라 자신의 생각을 검증한다.

과학에 무지한 인문주의자 신랄히 비판

이 책은 브록먼이 새로운 인문주의자들과 가진 인터뷰 및 대담을 짧은 에세이 형식으로 다듬어 엮은 것인데, 인간의 본성, 기계 인간, 진화하는 우주라는 세 개의 주제로 나뉘어, 지식의 최전선의 풍경을 속도감 있는 문체로 전개한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저마다 문제적이다. 그러나 가장 도발적인 글은 브록먼의 서문이다. 과학에 무지한 인문주의자들을 신랄하게 몰아붙인다. 경험 세계와 멀어진 인문주의자들은 문화적 비관론에 빠진 채 ‘고귀한 야만인’을 동경하며, 퇴행적 증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브록먼과, 브록먼이 선택한 새로운 인문주의자들의 아이디어와 사유,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물론 선구적이고 문제적이다. 가령 인간의 본성에 관한 스티븐 핑커의 혜안은 법이나 정책을 만들 때 반드시 숙고해야 할 ‘새로운 지식’이다. 핑커는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 성차가 분명 존재하는데도 여성 운동에 밀려 기계적 남녀 평등 정책, 결과적으로 여성과 남성에게 실제적 도움이 되지 않는 법령이 나오고 있다고 개탄한다.

그러나 새로운 인문주의자는 과학적 지식으로 무장한 인문주의자들이다. 브록먼과 엣지로 대표되는 제3의 문화는 자연과학이 주어와 동사이고, 인문학은 목적어의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문학이 자연과학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슬로건을 내걸었으면서도, 때로 인문학을 일방적으로 질타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이리라.

이 책을 읽는 괜찮은 방법이 있다. 서문을 읽은 다음,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에필로그부터 읽으시기를. 일종의 ‘댓글’ 모음인 에필로그에 브록먼의 주장과 관점, 방법론 등에 대한 관련 전문가들의 찬반론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런던 정경대와 뉴욕 뉴스쿨 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니컬러스 험프리는 과학적 발견들이 반드시 인류의 행복을 증진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쏘아붙인다. 대니얼 데닛은 “과학자들은 똑똑하지만 아는 것이 없다”라며 전통적 인문학을 공부하라고 권유한다. 지식의 최전선이라는 제3의 문화는 그야말로 지적 전장(戰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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