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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잎 누런 인도네시아 민주화

비판적 중산층 없고, 군부 정치 개입 극심...야당도 제 구실 못해

박재권 기자 ㅣ 승인 2006.08.25(Fri) 17: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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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10배나 되는 넓이에 2억 인구가 사는 곳. 섬도 1만3천6백67개나 되고, 3백여 종족이 6천여 섬에 흩어져 사는 나라. 30년 군부 독재가 짓누르고 있는 인도네시아에도 민주화의 신새벽은 열릴 것인가.

1인당 국민소득 천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발생한 최근의 인도네시아 사태는 많은 사람에게 79년 당시의 한국 상황을 연상케 한다. 집권 세력의 분열 공작으로 야당 당수가 축출되었는가 하면, 이로 인해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동안 인도네시아의 이권 침해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미국 정부가 수하르토 정권에게 변화를 요구한 것도 79년 박정희 정권에 대한 카터 행정부의 압력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아주 흡사한 두 사건은 판이한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79년 박정희 유신 정권이 궁정동의 총성으로 마감된 반면, 인도네시아 사태는 일단 진정 국면으로 돌아서고 있다.

이번 사태의 주역인 인도네사아민주당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전 당수(49)는 8월9일 오전 자카르타 시내 한복판에 있는 경찰본부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다. 이로써 수하르토 정권을 최대 위기로 몰아넣었던 격렬한 투쟁은 사그러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번 반정부 시위 사태가 성공을 거두지 못한 까닭에 대해 신윤환 교수(서강대.정치학)는 “인도네시아는 한국과 다르다”라는 말로 대답했다. 최근 인도네시아 사태가 79년 한국 상황과 표면적으로 상당히 흡사하지만, 강력한 야당이 없고, 비판적 중산층이 형성되어 있지 않으며, 군부가 수하르토의 보호막 구실을 굳건히 한다는 점에서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메가와티, 마녀 사냥에 희생되는가

정치학자들은 일반적으로 군부 독재가 무너지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선 민주화운동의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는 강력한 야당이 있어야 하고, 민주화를 지지하는 비판적인 중산층이 두텁게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군부가 민주화운동을 지지하거나 최소한 중립을 지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독재 정권에 대한 국제적 압력, 특히 미국의 압력이 있어야 한다.

79년 유신 정권이 몰락한 것이나 86년 마르코스 대통령이 축출 당한 것도 모두 이런 요인들이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반대로 이런 조건이 성숙하지 못해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90년 미얀마 사태가 꼽힌다. 당시 아웅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전국민주동맹(NLD)은 총선에서 80^를 차지하고 압승을 거두었지만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군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군부가 즉각 선거 무효를 선언하고 권력을 장악하자, 민주화의 꿈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같은 전례에 비추어 보면, 인도네시아의 민주화 수준은 이에 걸음마 단계라는 것이 신교수의 지적이다. 첫째로, 인도네시아 야당은 모두 관제 야당이다. 수하르토 정권의 독재와 불법.부정에 대해 한마디 비판도 할 수 없으며, 대통령 선거에 후보 한번 내본 적이 없다. 정당의 최대 목적이 정권을 장악해서 정강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인도네시아 야당은 이미 정당이라고 부를 수 없는 지경인 셈이다.

이것은 메가와티가 이끌던 인도네시아민주당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가 없었다. 그는 한번도 98년 대선에 출마해 수하르토와 경쟁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 수하르토의 족벌 체제를 비판하건, 정권 타도를 외치는 것은 더더욱 상사할 수 없었다. 그러데도 그는 축출되었다. 인도네시아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 받는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의 딸로서 수하르토 체제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로부터 지지가 확산되자 집권층이 밀 싹을 잘라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로 인해 메가와티가 세계적 인물로 떠오르고, 수하르토의 장기 독재가 내외에 악명을 떨치게 되자, 인도네시아 당국은 마녀 사냥을 시작했다. 이번 사태가 공산주의자들의 소행이라고 몰아세우고, 인민민주당을 속죄양으로 삼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당국은 인민민주당이 66년 불법화된 인도네시아공산당의 잔존 세력과 연계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둘째로, 비판적 중산층이 두텁지 않다는 점도 지적된다.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중산층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관료.군인.회사원.교사 등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중산층이 민주화의 동력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그 수가 그리 많지 않을 분만 아니라, 급격한 변화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수하르토의 족벌 체제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현 체제가 급격히 무너질 경우 더 나쁜 재앙이 닥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셋째로, 수하르토 정권의 사병 노릇을 하는 군부도 민주화의 걸림돌로 지적된다. 현재 국회의원 5백명 가운데 군인 출신이 백명이나 되고, 27개 주 정부의 지사들도 모두 군인 출신이다. 각료는 말할 것도 없고, 외국에 나가 있는 대사도 군인 출신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수하르토 정권 아래에서 특권을 누리는 대신, 현 체제를 지키는 확실한 보호막 구실을 한다.

미국도 속수무책, 엄포만
마지막으로 관심을 끄는 것은 국제사회의 비판여론이다. 사실 그동안 인도네시아는 구제적인 인권 감시의 사각 지대에 놓여 있었다. 그 이유는 인도네시아가 태평양과 인도양을 연결한는 전력 요충에 놓여 있고, 비동맹권의 핵심 국가라는 점, 그리고 냉전 시절에는 공산주의 세력의 확장을 막는 보루였고, 90년대 들어서는 선진국들의 새로운 수출 시장 겸 투자 지역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는 자국의 이익을 고려해 인도네시아 사태에 눈을 감아 버렸다.

이것은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이나 이란.이라크.리비아.쿠바의 인권에 대해서는 혹독한 시어머니 노릇을 했지만, 인도네시아에 대해서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수하르토 정권의 야당 탄압이 노골화하자 수하르토 정권을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나섰다. 8월5일 리언 파네타 백악관 비서실장은 최근의 인도네시아 사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 “(자카르타에서)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경우 강력한 조처를 취할 것이다”라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외부 압력만으로 인도네시아에서 민주화가 진전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결국은 이도네시아에 비판적 중사능이 확대되고,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는 관행을 청산해야 한다. 이런 조건이 성숙하지 않고는 79년의 한국이나, 86년의 필리핀 사례를 따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동안 야당 당사와 도심에서 벌어졌던 인도네시아 당국과 민주화 세력 간의 투쟁은 이제 인도네시아 법정에서 벌어지게 되었다. 8월7일 메가와티가 민주당의 시임 당수로 선출된 수르야디를 자카르타 지방법원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그들 고발장에서 ‘수하야디가 주도한 당사 난입에 7월27일 발생한 폭동의 도화선이었다’라고 주장했다.

메가와티가 전개하고 있는 법적 투쟁이 과연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인가. 인도네시아 법원이 사하르토 정권의 하수인으로 낙인 찍혀 있는 상황에서, 메가와티가 승소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런데도 그가 법적인 투쟁을 전개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선 그는 국민한테 현재의 인도네시아 상황을 정확히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현 상황에서 군부와 직접 부딪쳐서는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는 재판을 통해 집권 세력과 수르야디측의 잘못을 내외에 알리고, 이를 내년 총선과 98년 대선에 연계한다는 전략이다.

따라서 단기간에 인도네시아에서 민주화의 신새벽이 열리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내년 총선과 98년 대선 결과 그리고 75세 고령인 수하르토의 건강 등 복합적인 요인이 어덯게 결말지어지는냐에 따라 인도네시아의 민주화 속도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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