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단속도 골치” 봅 돌, 대선길 아득
  • 김재일 특파원 ()
  • 승인 2006.08.25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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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통신
 
공화당 전당대회가 미국 각지에서 대의원.정치인.취재 기자 등 수천 명이 참석한 가운데, 8월12일부터 나흘간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화려하게 치러졌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30여 나라에서 온 내로라 하는 정치인과 언론인들도 미국 민주주의의 현장을 참관했다.

그러나 공화당 전당대회는 외적인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내용에는 극적인 요소가 없었다. 별나게 만든 모자를 쓴 대의원들이 연사들의 웅변조연설에 소리를 지르며 분위기를 한껏 부추기는 모습은 공화당의 분열상을 숨기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분열상이란 바로 낙태 문제를 둘러싼 ‘내전’이다. 정치 관측통들은 대회 전부터 낙태 문제를 놓고 드러날 공화당원들 간의 첨예한 대립에 관심을 기울였다.

낙태 문제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4년마다 공화당의 단결을 위협해온 쟁점이다. 낙태와 관련해 공화당 내에는 어떤 경우에도 이를 절대 반대하는 강경파와 다소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온건파가 있다. 보수파 기독교인들과 낙태 반대 행동주의자들이 주축인 강경파는, 만일 봅 돌 후보가 낙태를 확실하게 반대하지 않는 사람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할 경우 돌 후보를 거부하겠다며 압력을 넣어 왔다.

돌 후보는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면서 이 문제가 전당대회에서 논의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 문제를 놓고 강경파와 온건파 간에 공개적으로 전투가 벌어질 경우 지도자로서 그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낙태 문제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 입장은 강간 또는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이나 산모에게 위험한 경우를 제외한 모든 낙태에 반대하는 것이다.

낙태 문제와 관련해 92년 채택된 공화당 정강은 ‘우리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근본적으로 침해 당할 수 없는 개인의 생명권을 가진다고 믿는다’로 시작한다. 그 정강에서 특히 공화당원들을 짜증나게 하는 대목은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 생명 보호를 위한 헌법 수정을 지지한다’는 구절이다. 이 구절을 삭제할 것인가, 그대로 둘 것인가, 아니며 수정할 것인가는 가장 다루기 힘든 난제였다.

지난 7월 중순 돌 후보는 공화당 정강을 다음과 같이 수정하고자 제의했다. ‘우리는 우리 당원들이 낙태와 극형 같은 개인 양심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 우리는 이같은 견해의 다양성을 약점이 아니라 강점으로 본다.’ 이는 중간 입장을 취함으로써 많은 표를 얻으려는 선거 전략이고, 당의 정강을 낙태 권리 옹호자들이 받아들이기 쉽게 하려는 시도였다. 돌 후보측으로서는 공화당 예비선거때 출구 여론조사 결과 투표자의 55%가 당 강령의 낙태 반대 조항에 반대했다는 사실도 지나칠 수 없었다. 극우파인 패트릭 뷰캐넌 등 낙태 반대 강경 세력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들은 낙태를 개인 양심의 문제로 취급해서는 안된다며 돌 후보측을 강력하게 몰아붙였다.

유권자들 “우리는 늙은 대통령을 원하지 않는다”
결국 돌 후보측과 보수파 지도자들은 전당대회가 열리는 며칠 전 반대 견해를 허용하는 문구를 집어넣되 낙태를 명시하는 모든 용어는 빼기로 합의했다. 그들은 또 낙태를 금하는 수정 헌법을 지지하는 오랜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에 대해 이번에는 피터 월슨 캘리포니아 주지사들 위시한 온건파가 크게 반발해 대회장에서 문제 삼겠다며 돌 후보측을 위협하기도 했다.

이렇듯 전당대회는 정.부통령 후보를 공식으로 선출하는 것 외에 정당내 다양한 의견들 간에 합의를 도출하는 기능을 한다. 돌 후보는 전당대회에서 올린 기세를 몰아 지지율 상승 분위기를 탈 것이다. 그러나 그의 대권 고지는 너무 가팔라 보인다. 그에 대한 지지율은 클리턴 대통령과 비교해 20% 남짓 떨어진 지점에서 맴돌고 있다.

현재의 추세가 계속될 경우 올11월5일 선거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재선이 확실해 보인다. 칠순을 넘긴 돌 후보는 늙었을 뿐 아니라, 그의 선거운동은 너무 혼란스럽고 일관되지 않은 것으로 유권자들이 받아들이고 있다.

정치 관측통들은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보다도 어느 당이 의회를 장악하느냐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 서거와 동시에 치를 의원 선거에는 하원 전체인 4백35개 의석과 상원 3분의 1인 33개 의석이 걸려 있다. 현재 공화당의 상.하 양원 장악은 92년 94년 선거의 결과다. 그때 유권자들은 변화를 요구했고, 보수적인 공화당에 표를 던졌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지금 그때 공화당이 내걸었던 ‘미국과의 계약’이라는 미몽에서 깨어나고 있다는 명백한 조짐이 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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