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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의 결단, 네 번의 승리

설기현, 중요한 때마다 승부사 기질 발휘해 프리미어리그 ‘안착’

김세훈 (경향신문 체육부 기자) ㅣ 승인 2006.08.28(Mon) 09:3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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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연합
설기현 선수(왼쪽)는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이후 두 게임 연속 공격 포인트를 올리며 박지성·이영표 선수보다 나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2006년 7월8일. 국내 축구 팬들에게 또 하나의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영표(토트넘 홋스퍼)에 이은 설기현(27)의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입성이었다. 설기현이 이적한 팀은 국내 팬들에게 많이 낯선 레딩 FC. 레딩은 창단 1백35년 만에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하면서 프리미어리그 잔류를 위한 히든카드로 설기현을 영입한 것이다. 그것도 구단 역사상 최고 이적료로 말이다.

설기현의 프리미어리그 입성은 그가 오랫동안 남모를 인고의 세월을 견디면서 얻어낸 것이기에 더욱 값지고 귀하다. 설기현은 유년 시절부터 무척 어려운 삶을 살았다. 4형제 중 둘째인 설기현은 아버지를 일찍 잃었다. 탄광에서 일하시던 아버지가 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당시 설기현은 겨우 여덟 살. 아버지를 여읜 충격은 어린 설기현에게 어린이다운 수다마저 앗아갔다.

남편을 먼저 보낸 어머니 김영자씨.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했다. 새벽 4시 일어나 과일 행상부터 공사판 막노동까지…. 효심이 지극했던 설기현은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올 때면 어김없이 마중을 나갔고 짐을 대신 들었다.

자신을 위해 고생하는 어머니를 보고 자란 설기현. 강릉 성덕초등학교 3년 때 축구를 시작한 그의 바람은 단 하나뿐이었다. ‘고생하신 어머니를 편안하게 모셔야 한다.’ 주문진중학교와 강릉상고를 거치면서 프로 선수의 꿈을 키운 설기현은 1998년 아시아청소년대회, 1999년 세계청소년대회에 잇달아 출전하면서 정상급 선수로 성장했다.

국내 프로 구단의 뜨거운 러브콜에 휩싸였던 2000년. 설기현은 선수 인생을 건 결단을 내린다. 국내 프로행을 뒤로하고 생면부지의 땅 벨기에행을 결심한 것이다. 세계 정상급 선수가 되려면 하루라도 빨리 외국으로 나가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고 때마침 대한축구협회가 유망주 육성 차원에서 그에게 벨기에 중위권 안트워프를 주선한 것이다.

안트워프 첫 시즌 성적은 25경기 출전에 10골. 성공적이었다. 노력한 만큼 소득을 얻었던 설기현은 벨기에 진출 1년 만에 또 다른 도약의 기회를 잡았다. 벨기에 안더레흐트로의 이적. 안더레흐트는 벨기에 프로축구 최고 팀. 당시 너무 강한 팀으로 가면서 출전 기회를 놓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있었지만 설기현은 한 가지만 생각했다. ‘벨기에 프로 리그 1위는 유럽 각국 최고 프로 팀이 겨루는 챔피언스리그 본선에 직행할 수 있다. 내가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 프리미어리그로 갈 수 있는 길이 빨리 열릴 거야.’

안더레트흐로 이적한 설기현. 초반 부진을 씻고 팀 적응을 마치더니 안더레흐트 간판으로 자리 잡았다. 공격수와 미드필더를 오가며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유럽챔피언스리그 예선에서 골을 터뜨리며 챔피언스리그 본선까지 밟았다.

프리미어리그 러브콜을 학수고대하며 안더레흐트에서 보낸 시간이 3년. 설기현은 두 갈래 길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안더레흐트에서 계속 뛰느냐, 아니면 잉글랜드 프로축구 챔피언십으로 이적하느냐. 장고를 거듭한 끝에 그는 후자를 택했다. ‘안더레흐트는 유럽챔피언스리그 32강이 한계다. 그 이상 오를 수 없다면 나도 프리미어리그 구단에 좋은 모습을 보여줄 기회를 잃고 만다. 챔피언십으로 가자. 거기에서 인생을 걸고 사력을 다하자.’

챔피언십은 프리미어리그 바로 아래 리그. 챔피언십 정상급 선수들은 프리미어리그로 이적하는 경우가 많다. 또 챔피언십에서 상위권에 오르는 팀은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할 수도 있다. 설기현에게는 프리미어리그 입성을 위한 마지막 승부수였다.

그렇게 해서 설기현이 새 둥지를 튼 곳은 울버햄프턴이었다. 울버햄프턴은 챔피언십 최고 구단 중 하나였고 설기현은 첫 시즌을 성공적으로 보냈다.

2005년 여름. 필자는 울버햄프턴 첫 시즌을 보내고 귀국한 설기현과 만났다. 당시 국내 축구판을 강타한 뉴스는 설기현이 아니었다. 한국인 1·2호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박지성과 이영표였다. 설기현은 당시 인터뷰에서 이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진심으로 축해주고 싶지만 솔직히 너무너무 부러워요. 제일 먼저는 아니더라도 나도 프리미어리거가 되고 싶었는데….”

순진하고 착하고 다정다감한 효자

   
 
ⓒ연합뉴스
지난 8월20일 레딩 FC의 설기현 선수가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을 치른 뒤 팬들에게 사인해주고 있다.
 
 
박지성·이영표에 대한 부러움 뒤로한 채 울버햄프턴에서 보낸 두 번째 시즌은 악몽과 같았다. 감독과의 갈등 및 잇단 부상 등으로 벤치를 지키기 일쑤였다. 27세 나이에 유럽 진출 6년 만에 처음으로 겪는 벤치 신세. 설기현도 실망할 수밖에 없었고 여기서 포기할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때마침 몇몇 국내 구단에서 K리그 최고 대우를 약속하며 국내 복귀를 종용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설기현은 다시 축구화 끈을 동여맸다. ‘프리미어리거가 되기 위해 참아왔던 6년의 세월을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설기현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왔다. 레딩에서 영입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설기현은 바로 결심했다. ‘이제 모든 것을 걸어야 할 때가 왔다.’ 이 순간을 위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많은 시련을 참아왔던가.

설기현
출생=1979년 1월8일
신체조건=1백84cm·78kg
출생지=강원도 정선
학력=성덕초등학교→주문진중학교→강릉상업고등학교→광운대학교
프로 선수 경력=벨기에 안트워프(2000년·25경기 10골)→벨기에 안더레흐트(2001년 7월~2004년 7월·72경기 18골)→잉글랜드 울버햄프턴(2004년 8월~2006년 7월·69경기 8골)→잉글랜드 레딩(2006년 7월~현재)
대표팀 경력=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국가대표(1998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국가대표(1999년), 시드니올림픽대표(2000년), 아시안컵국가대표(2000·2004년) 월드컵 국가대표(2002·2006년)
A매치 경력=69경기 13골
수상 내역=체육훈장 맹호장(2002년)
가족=아내 윤미씨, 아들 인웅(4), 딸 여진(1)
설기현은 8월20일 프리미어리그 데뷔전부터 6년간 한을 한꺼번에 풀어냈다. 미들즈브러를 맞아 0-2로 뒤지다가 추격골을 어시스트했고 3-2 역전 결승골로 연결되는 결정적 크로스까지 찔러줬다. 믿기 어려운 3-2 역전승의 1등 공신은 바로 설기현이었다. 설기현은 잉글랜드 스포츠 전문 채널 ‘스카이스포츠’로부터 양 팀 최고 평점 9를 받았고 전체 프리미어리그 20개 구단 선수들 대상으로 뽑은 ‘주간 베스트 11’에도 이름을 올렸다.

설기현은 무척 고맙고도 다정다감한 선수다. 처음에는 무뚝뚝한 것 같지만 자꾸 이야기를 해보면 순진하고 착하다. 또 바쁜 연말연시에 인터뷰와 사진 취재를 요청하면 그는 마치 그라운드에서 뛰는 것마냥 최선을 다해 도와준다(설기현은 2003년 양띠 해를 앞두고 ‘양띠 스타를 섭외해 사진을 찍고 인터뷰하라’는 데스크의 지시를 받은 필자의 부탁을 듣고 바쁘디 바쁜 2002년 12월24일, 함박눈이 퍼붓는 대관령 양떼목장에서 1시간 동안 양들과 씨름해줬다.)

좀 떴다 싶으면 고개가 뻣뻣해지면서 우쭐해지는 게 스타들의 습성. 아무리 스포츠 기자라고 해도 그들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 전화번호도 극비다. 하지만 설기현은 다르다. 자신에게 잘 해주는 사람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말을 아끼지 않고 일면식이라도 있는 사람을 만나면 먼저 인사말을 건넨다. 물론 그의 영국 휴대폰 번호는 웬만한 기자라면 대부분 알고 있다.

이제 프리미어리거로 첫발을 내딛인 설기현. 축구 기자, 아니 축구 팬의 한사람으로서 그가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 박지성·이영표 못지 않게,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 이상으로 성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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